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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소속 홈쇼핑업체인 우리홈쇼핑이 지난달 약 2000억원가량의 부동산 매입을 결정했습니다. 매입 대상은 본사가 세들어 살고 있는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 사옥인데, 롯데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 롯데지주와 롯데웰푸드(구, 롯데제과)가 공동 소유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롯데지주가 64.6%, 롯데웰푸드가 35.4%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홈쇼핑과 롯데웰푸드가 양평사옥을 본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우리홈쇼핑의 양평사옥 매입 결정에 2대 주주인 태광산업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옥을 매입하기로 한 건 롯데지주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지, 회사의 필요에 의한 게 아니라는 것이죠. 또 사옥 매입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매입가격도 부풀려졌다고 태광산업은 주장합니다.


어쩌면 이번 사옥 매입이 우리홈쇼핑의 주주간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태광산업이 우리홈쇼핑 경영진의 배임을 주장하고 있고, 매입을 저지하기 위해 법적 조치까지도 불사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홈쇼핑의 최대주주는 롯데쇼핑(53.49%)이고, 태광산업과 그 계열사들은 44.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태광산업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여러 게열사가 자금 문제를 안고 있죠. 계열사의 재무를 총괄하고 있고, 계열사의 배당금 등으로 운영되고 있는 롯데지주 역시 자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양평사옥 매각으로 1317억원의 목돈이 들어오면 어느 정도 유동성 해갈이 될 것입니다.


우리홈쇼핑은 지난 2018년 3월 롯데지주와 15년 6개월간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138억5500만원의 보증금에 연 55억4200만원의 임차료를 내고 있죠. 임차기간이 아직 7년이 남아 있는데 임대차 계약을 중도해지하고 돌연 매입에 나선 것입니다. 그것도 45%에 달하는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 태광그룹의 뜻에 반해서 말이죠. 아무리 이사회를 롯데그룹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상당히 무리가 따를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롯데지주는 별도 사업이 없는 순수 지주회사입니다. 순수 지주회사의 수익은 보통 자회사로부터의 배당수익, 상표권 사용수익, 임대수익, 경영지원 용역에 대한 수수료 등으로부터 나오고 롯데지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를 예로 들면 롯데지주의 영업수익(매출액)은 3291억원인데, 배당수익이 1470억원으로 제일 많고, 상표권 사용수익, 경영지원수익 등의 순입니다. 그리고 임대수익도 165억원가량 됩니다.


롯데지주가 지난해 우리홈쇼핑에서 얻은 영업수익이 126억원입니다. 우리홈쇼핑 입장에서는 대부분 리스료였습니다. 롯데지주의 임대수익은 대부분 양평사옥에 세든 우리홈쇼핑에서 발생한 셈입니다. 롯데지주는 매년 100억원이 넘는 임대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양평사옥 매각으로 1300억원가량의 현금을 손에 쥔 것이고요.


우리홈쇼핑은 매출이 1조원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지만 롯데그룹 계열사 중에서 최근 안정적으로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몇 안되는 회사 중 하나입니다. 2년 연속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순유출(-)를 기록하고 있지만 자산 규모에 비해 현금 보유액이 많은 편입니다. 게다가 지난 2021년에는 대만 홈쇼핑업체인 모모닷컴 주식 380만주를 2925억원에 팔아 현금보유액을 늘렸습니다. 매각대금은 지난해 입금되었습니다.



우리홈쇼핑의 풍부한 현금은 회사가 아닌 계열사를 위해 쓰였습니다. 롯데건설이 ABCP 문제로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롯데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구원에 나섰는데, 한때 계열사 중 현금 부자로 통하던 롯데쇼핑 대신 롯데쇼핑의 자회사인 우리홈쇼핑이 1000억원을 긴급 지원했죠.


반면 롯데지주는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에 자금지원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호텔롯데와 롯데케미칼 등이 긴급 자금을 지원했고, 메리츠증권에 1조5000억원 규모의 ABCP 매각계약을 체결할 때도 롯데물산, 롯데정밀화학, 호텔롯데의 자금보충약정을 받았죠.


롯데지주의 가장 큰 현금줄은 주력 계열사의 배당금인데,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등 대표적인 자회사 중 자산 규모가 1,2위인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의 사정이 녹록치가 않습니다. 롯데쇼핑은 최근 5년 중 2021년을 제외하고 적자 행진 중이고,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적자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흑자반전에 실패했습니다. 더구나 1조2000억원대의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 등 대규모 투자를 위해 1조원 이상의 유상증자를 하는 등 유동성 확보에 부산했습니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미국법인과 인도네시아법인의 차입금과 관련해 수출입은행 등 대주단과 맺은 재무약정을 지난해말과 올해 반기말 모두 충족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대주단의 동의를 얻어 올해 말까지 웨이버(waiver)를 취득했지만, 재무약정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금융과 관련해서도 같은 수준의 재무약정을 맺고 있습니다. 또 2조5000억원 수준의 회사채에 대해서도 5배 이상의 EBITDA/이자비용(3년 평균) 등 약정을 맺고 있죠. 재무약정을 충족하지 못하면 만기연장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고, 롯데케미칼은 이에 대비한 상환자금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주력 계열사들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롯데지주 역시 재무정책에 보수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당수익 감소와 자회사 유상증자 등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해야 하고, 차입금을 줄여 이자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죠.



롯데지주는 계열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이 거의 전부 주주에 대한 배당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배당금 수익이 영업활동 현금흐름의 대부분인데, 주주 배당으로 유출되면 사내에 남는 현금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자회사 유상증자 참여 등 지분 취득에 매년 수 천억원씩 나가고 있죠.


그로 인해 부족한 자금은 차입금으로 채워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2조원 이상을 순차입했죠. 그로 인해 6월말 현재 7000억원가량의 현금과 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총차입금은 그보다 6배나 많은 4조1100억원에 달합니다. 그 중 약 1조7000억원이 1년내 갚아야 할 단기성 차입금이죠. 롯데지주는 올해 상반기에만 2조1000억원 이상의 단기차입금을   상환했고 이를 위해 2조3000억원 이상의 단기차입을 해야 했습니다.


대규모 자금을 단기에 갚고 상환하기를 반복해야 하는 입장인데요. 자칫 자금흐름이 삐끗하면 상환자금이 부족해질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대비한 현금확보의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