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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지주의 수익과 현금흐름은 계열사의 배당금 지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당금 수입에 비해 주주들에 대한 배당금 지급이 커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만약 계열사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배당금이 늘었다면 역전현상은 나타나지 않았겠죠. 배당금 역전이 발생한 이유를 주력 계열사들의 배당여력이 늘지 않은 것에서 찾을 수도 있는 겁니다.



실제로 롯데지주의 배당금 수입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1470억원의 배당을 계열사들로부터 받았는데, 올해는 1043억원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주력 계열사들의 사정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죠. 대표적으로 롯데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이 그렇습니다. 롯데케미칼은 화학부문의 부진과 함께 대규모 M&A와 투자확대로 자금사정이 매우 빡빡한 상황이고, 롯데쇼핑은 지난 2017년부터 6년 연속 적자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롯데지주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계열사 유상증자 등에 자금을 투입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이렇다할 자회사 유상증자가 없었습니다만, 2021년에 롯데자산개발이 2339억원을 증자했고, 신주 인수 책임은 대부분 롯데지주의 몫이었습니다. 2022년에는 롯데바이오로직스가 미국 시라큐스 플랜트를 인수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106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했는데, 80%의 지분을 가진 롯데지주가 1685억원을 부담해야 했죠.


올해 자회사 유상증자 부담은 더욱 커졌습니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지난 3월에 2125억원의 추가 증자를 결정했는데, 롯데지주가 약 1700억원을 부담했고요. 롯데케미칼은 1월에 1조 2155억원에 달하는 초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습니다. 일진머티리얼즈를 1조2000억원에 인수한 롯데케미칼이 이와 비슷한 규모의 자본을 확충한 것인데요. 롯데지주가 24.0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니 약 3000억원 정도를 부담했죠. 그 밖에도 롯데리아 인도네시아 법인에 123억원가량의 증자를 해준 후 전액 손상처리한 일도 있었고, 싱가포르 소재의 롯데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 싱가포르에 119억원을 현금출자했습니다.


돈 나올 구멍은 늘지 않았는데 돈 나갈 일이 많아지니 롯데지주는 자금을 확보할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이 외부차입이고 이번에 우리홈쇼핑에 양평사옥을 판 것처럼 자산매각도 수단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중 롯데지주가 투자자산을 매각해 확보한 현금이 1400억원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차입금은 더 늘리기 곤란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 이후 3조원이 늘어 총차입금이 4조원을 넘어섰습니다. 그로 인해 각종 재무비율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2020년말 58%에서 올해 6월말 현재 94%로 높아진 부채비율은 공정거래법 기준인 200%까지 많은 여유가 있지만, 전체 자산 중 차입금에 의존한 비율(총차입금/자산총계, 차입금의존도)은 43.67%로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또 수익을 창출해 차입금을 상환할 능력을 나타내는 순차입금/EBITDA 비율은 2020년말 9.79배에서 올해 6월말 13.29배로 높아졌습니다. 영업활동에서 번 돈을 모두 차입금 상환에 쓰더라도 전부 갚는데 13년 이상 걸린다는 셈이 나옵니다. 순차입금/EBITDA는 금융기관이나 신용평가사에서 채무자의 신용을 평가할 때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입니다.


롯데지주가 현금흐름과 재무구조 악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요 계열사들의 경영상황이 호전되어야 할 텐데요. 그 중에서도 롯데케미칼의 실적이 좋아지고, 대규모 투자지출이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롯데케미칼이 롯데지주의 가장 큰 자금줄이거든요.



롯데지주의 수입 중 가장 큰 게 배당금 수입이고, 배당금 수입에 크게 기여하는 대표적인 회사가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입니다. 이 4개 회사가 롯데지주의 배당금 수입에 기여하는 비중이 지난해 86%, 올해 88%에 이릅니다. 그 중에서도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 중 한 회사가 배당을 하지 못하는 사정이 생기면, 그 외 다른 계열사들이 그 빈 자리를 메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롯데쇼핑의 경우 실적 부진의 여파로 최근 몇 년간 배당금 지급 규모가 줄었지만, 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 같습니다. 6년 연속 적자행진을 했지만 적자 규모가 줄었고 올해 상반기 흑자를 기록했죠. 설사 적자를 끊지 못한다고 해도 배당을 크게 축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롯데쇼핑은 적자를 기록하는 중에도 늘 현금흐름에서 잉여가 발생한 기업이거든요.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현금으로 설비투자와 배당을 하고도 늘 현금이 남았다는 얘깁니다.



롯데쇼핑이 적자를 기록한 이유는 영업에서 손실이 발생해서가 아니라 유•무형자산에서 대규모 손상차손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유형자산, 무형자산, 영업권, 사용권자산, 투자부동산에서 발생한 손상차손이 무려 7200억원에 달합니다. 2021년에도 5520억원의 손상차손을 인식했었죠.


가장 큰 손상차손이 발생한 곳은 롯데하이마트의 영업권입니다. 롯데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하면서 대규모 영업권이 생겼는데, 하이마트의 실적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손상차손을 인식해야 하는 처지인데요. 지난해 롯데하이마트 영업권 손상차손이 3000억원에 육박합니다. 롯데하이마트의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영업권 손상차손은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영업권을 포함한 자산의 손상차손은 당연히 손실이기는 하지만 현금유출을 발생시키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롯데쇼핑이 손익계산서상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현금흐름으로는 흑자일 수 있는 것이죠. 현금흐름이 흑자라면 보유 현금이 늘어나게 되고, 배당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롯데케미칼입니다. 그룹이 가장 큰 캐시카우인 롯데케미칼 등 화학사업부문은 업황 침체로 실적이 매우 부진합니다. 급기야 지난해 롯데케미칼이 7626억원(연결)의 대규모 영업적자를 내고 말았죠. 롯데케미칼이 영업적자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도 비록 약간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지만 영업에서는 흑자였을 정도니까요. 적자를 낸 것뿐 아니라 현금흐름도 악화됐습니다. 2017년 이전에는 최소 2~3조원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만들어 냈는데, 최근 몇 년 1조원대로 줄더니 지난해에는 소폭이지만 1675억원의 순유출로 돌아섰죠.


게다가 2차전지 소재, 국내외 석유화학 설비에 대한 투자가 막대한데다 지난해 유동성 위기를 겪은 롯데건설 역시 롯데케미칼이 최대주주이죠. 목돈 들어갈 곳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버는 돈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해서 매년 대규모 외부차입을 하는 입장이고 급기야 올해에는 1조2000억원대의 증자를 하면서 롯데지주 등 주주에게 손을 벌렸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예년 수준의 배당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그래서겠죠. 롯데케미칼은 올해 주주에게 지급한 현금배당을 지난해 절반 이하로 줄였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배당을 예년 수준으로 되돌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올해 상반기 흑자를 기록한 것에서 보듯 실적이 다소 개선되고 있지만, 여의도 증권가와 신용평가사들은 개선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흑자를 기록하더라도 현금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상반기에도 1조2000억원대의 현금부족이 발생했습니다. 종속기업이나 관계기업 지분취득과 설비 확충에 3조60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 들어갔거든요. 현금 부족은 보통 차입금 증가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롯데케미칼은 유상증자 외에도 올해 상반기에만 2조1500억원가량의 순차입을 했습니다.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의 사정이 좋아질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할 입장입니다. 롯데케미칼 외다른 계열사에서 배당금을 더 걷고, 우리홈쇼핑처럼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현금여유가 있는 계열사에 사옥을 팔면서 말이죠. 롯데쇼핑이 호전되고 있고 롯데웰푸드와 롯데칠성음료 등 음식료 사업부문이 견조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자회사 중 상황이 좋지 않은 코리아세븐이나 투자가 지속되고 있는 또 하나의 계열사 롯데바이오로직스 등에 대한 증자 등 자금지원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면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