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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이후 지루한 내리막길을 걷던 씨비아이(CBI)의 주가가 최근 다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텅스텐 광산인 쌍전광산 광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구보에 지분투자를 하면서 호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광산의 최대 가치가 3조6000억원에 달한다거나, 상업생산을 본격화했다거나 하는 호재성 뉴스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구보의 광업권 환수가 자원주권 회복의 신호탄이라는 국뽕(?) 가득한 기사까지 나옵니다.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수 주원의 가치가 있는 광산의 개발권이 왜 아직도 방치되고 있는지, 정부와 대기업은 왜 손을 놓고 있었는지, 광업권을 확보했다는 구보는 어떤 회사인지(처음 들어봅니다). 구보는 어떻게 그 엄청난 가치의 광업권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 CBI는 어떻게 구보와 연결이 되었는지 말이죠.


이 모든 의문을 공시나 재무제표를 통해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자세한 정보를 회사에서 알아서 제공해 주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조각 정보를 모아 보면 실체적 진실에 조금은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보도에 따르면 CBI가 구보의 지분 46.88%를 취득하며 100억원을 투자했고, 그 덕분에 국내 2위 텅스텐 광산인 쌍전광산의 광업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CBI는 지난달 11일 이사회를 열어 구보의 주식 10만주를 주당 10만원씩 총 100억원에 취득하기로 의결합니다.



그런데 현금을 주고 취득한 게 아닙니다. 만기전 취득한 9회차 전환사채 100억원어치를 구보에 재매각했습니다. 취득한 주식도 보통주가 아닙니다.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고 원하면 3년 이내에 상환도 받을 수 있는 전환상환우선주(이하 RCPS)입니다. 현금이 오간 거래가 아니라 전환사채와 전환상환우선주를 맞바꾼 셈입니다.


구보가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는 만기가 3년이지만 3개월마다 상환청구가 가능하고, 특정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자도 연복리 2%씩 붙습니다. 이런 우선주는 회계상으로 자본이 아닌 차입금에 해당합니다. 실질적으로 전환사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구보의 광업권 확보에 CBI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CBI와 구보가 손을 잡은 것 자체가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는 것이죠. CBI가 투자한 100억원이 광업권 확보의 재원이 된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보는 CBI와 계약 전까지 서울시 서초동에 주소를 둔 업체로 신발도매업을 하던 자본금 1억원짜리 소기업이었습니다. 성열욱이라는 분이 대표이사이고 최대주주였을 것입니다. 가족기업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1억8500만원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자산총계는 89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사실상 영업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껍데기 회사였던 모양입니다. 물론 광산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으로 추정되죠.


그랬던 회사가 올해 4월 18일부터 큰 변화를 겪습니다. 3333만원의 증자가 이루어지고 김용우라는 분이 공동 대표이사에 취임합니다. 정관변경이 이루어져 텅스텐, 몰르브덴 등 금속광업이 목적사업에 추가됩니다. 신발도매업체 구보가 광산업체 구보로 변신하게 된 것이죠.


이후 여러 차례 증자가 추가로 이루어지면서 7월에는 자본금이 5억6661만원, 발행주식 수는 2만주에서 13만3322주로 늘어납니다. 최대주주가 바뀝니다. 83%로 추정되던 지분율은 14.7%로 내려앉고 ㈜현민이라는 곳이 29.4%로 최대주주가 됩니다. 4월 이후 증자에 참여했을 업체이고, 새로 대표이사가 된 김용우씨와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분율로 보건데,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증자에 참여한 곳은 ㈜현민 말고도 더 있습니다.



10월11일 CBI와 구보가 전환사채와 전환상환우선주를 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그리고 성열욱 대표이사가 사임하고, 사내이사에 이호준 CBI 사장 겸 그로우스앤밸류디벨로프먼트 대표이사가 선임됩니다. 회사의 주소는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지식산업센터 빌딩으로 옮깁니다.


쌍전광산의 광업권과 개발권은 독일 크로니메트(Cronimet)와 싱가포르계 크리트민(Critmin)이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구보가 모두 되찾아왔다고 합니다. 자본금 1억원짜리에 영업활동이 전혀 없던 소기업이 무슨 수단이 있어 3조원이 넘는 쌍전광산의 광업권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모든 건 김용우씨가 등장한 4월18일 이후 벌어진 일일 것입니다. CBI가 투자할 때 이미 광업권이 있었다고 하니 광업권 확보의 비밀은 김용우씨가 열쇠를 쥐고 있을 것입니다.


과거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2019년 6월에 지역 언론 등에서 쌍전광산 영업 재개에 대한 보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있더라고요. 채광물의 대규모 유실로 심각한 환경오염을 빚고 있는 쌍전광산 개발이 그해 4월 허가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산 개발을 맡은 업체는 서울의 한 회사이고, 이 회사는 버려진 쌍전광산의 채굴권을 사들여 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광업등룩사무소의 채굴원부 기록에 따르면 이 회사는 서울 강동구 길동에 있는 주식회사 동보자원일 겁니다. 이태우라는 분이 대표이사이고 광산개발 등을 목적사업으로 하는 자본금 200만원인 소기업으로 외감기업인 인천시 소재 현대제철 협력사 동보자원과는 다른 회사입니다. 동보자원은 2018년 9월 채굴권(2038년 9월까지) 등록을 하고, 2019년에 산지사용허가와 채굴계획변경인가를 받아내며 광산 재개발을 추진했던 모양입니다.


지역의 반대 때문이었던 것인지, 소기업이 진행하기에는 너무 큰 프로젝트여서인지 쌍전광산 재개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동보자원은 쌍전광산의 광업권을 외국계인 크리트민코리아로 2020년 5월에 매각했는데, 그걸 올해 10월에 구보가 다시 매입한 것입니다.


크리트민코리아는 자본금 1억원으로 싱가포르인 여쭈이 페이(Yeo Zhui Pei)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인데 2020년 1월 설립됐습니다. 쌍전광산 광업권을 목적으로 설립된 모양이예요. 싱가포르에는 크리트민 홀딩스라는 회사가 있는데, 여기도 그리 대단한 회사 같지는 않습니다. 2019년 11월에 설립됐고 직원이 3명인 유한회사입니다. 자본금은 2800SGD(싱가포르달러)이더라고요. 원화로 273만원쯤 됩니다.



쌍전광산의 광업권 소유자들의 면면이 모두 영세기업이네요. 버려지다시피한 광업권을 확보했다는 동보자원은 자본금 200만원, 크리트민코리아는 자본금 1억원이고 그 모회사로 추정되는 크리트민홀딩스는 273만원, 구보는 증자가 이루어진 후에도 5억6661만원. 도대체 쌍전광산 광업권은 얼마짜리였던 걸까요?


구보의 김용우 신임 대표이사의 주소지는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입니다. 국내 최대 텅스텐 광산인 상동광산이 있는 곳입니다. 상동광산은 대한민국 최고기업이었던 대한중석이 소유했던 광산인데, 대한중석이 민영화되면서 거평그룹에 팔렸고, 상동광산은 1994년 폐광되었죠.


상동광산에는 쌍전광산과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 품질의 최대 5800만톤 이상의 텅스텐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폐광 이후에도 채굴 재개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진척이 없었습니다.


2006년에 캐나다 울프 마이닝(Woulfe Mining. Corp.)이 상동광산의 광업권을 인수한 뒤 7차 시추조사까지 완료되었고 2012년에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800억원을 투자한다는 발표가 나옵니다. 워렌 버핏이 소유한 네델란드의 IMC그룹과 텅스텐 투자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보도가 나오기도 했죠. IMC그룹은 대한중속의 초경사업부를 인수해 설립된 대구텍(구, 대한중속초경회사)의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입니다. 워렌 버핏이 100% 지분을 가진 국내 유일의 회사가 대구텍이라고 하네요.


현재 상동광산의 광업권은 알몬티 인더스트리(Almonty Industries.)이 소유하고 있고, 국내 자회사인 알몬티 코리아(알몬티대한중석)가 광산 재개발을 추진 중입니다. 워렌 버핏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독일 국책은행인 KfW(한국의 산업은행과 비슷함) 등으로부터 7510만 캐나다달러(약 800억원)의 대출확약을 맺고 이르면 2024년부터 텅스텐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답니다.


캐나다 알몬티는 스페인, 포르투갈, 캐나다에 4개 광산을 소유한 글로벌 자원개발회사라고는 하지만 그리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시가총액이 1억1400만 캐나다달러(한화 약 1080억원) 정도의 회사입니다. 올해 매출액은 9월까지 1709만 캐나다달러(한화 약 163억원)이고, 57억 캐나다달러(약 5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도 약 123억원 적자였습니다. 총자산은 183억원 정도에 불과하고 부채비율이 500%에 육박해 재무구조도 좋지 않습니다.


알몬티대한중석의 전신은 2006년 설립된 상동마이닝코퍼레이션이고 울프마이닝의 100% 자회사였습니다. 울프 마이닝이 캐나다 알몬티로 인수합병되면서 자연스롭게 알몬티코리아가 된 것이죠. 2012년 워렌 버핏의 투자설이 나오면서 상동광산 본격 개발을 외부적으로 발표할 당시, 상동읍 주민들 앞에서 친환경 광산개발과 지역 상생경영을 약속하는 설명회를 가진 인물이 있는데, 바로 김용우 상동마이닝 대표였습니다. (2013년 6월 12일 뉴시스 보도)


보도에 따르면 김용우 대표는 2013년 1월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중도 사퇴하고 캐나다 출신 사장(브라이언스텐리웨슨)이 부임했다고 합니다. 상암마이닝 감사보고서에는 김용우씨가 대표이사였던 흔적이 없습니다. 공시된 감사보고서에 기재된 대표이사는 전부 외국인이고, 알몬티에 인수된 이후부터는 캐나다 본사인 알몬티 인더스트리 대표이사인 루이스 블랙씨가 대표를 맡고 있거든요.


알몬티가 KfW의 대출을 유지하고 상동광산의 본격적인 개발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2019년부터 김용우 대표가 국내 언론에 다시 등장합니다. 알몬티대한중석의 대표로 말이죠. 알고 봤더니 2015년부터 알몬티코리아 대표를 맡았다고 합니다. 상동마이닝을 특별한 이유없이 사임한 후 알몬티가 상동마이닝을 인수할 때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보도로 확인된 김용우 대표의 이력은 이렇습니다. 모건스탠리, 살로먼, 씨티그룹 그리고 국내 KB증권에서 투자은행(IB)업무를 25년간 했다고 하고, 2010~2013년에는 상동광업(상동마이닝) 대표, 2015년부터 알몬티코리아 대표를 역임했다고 합니다.


광산개발 전문가이기 앞서 파이낸싱 전문가로 보이는 김용우 대표는 이제 CBI가 쌍전광산 개발을 위해 투자한 구보의 대표이사가 되었습니다. 구보의 전 최대주주는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고 소수 주주로 물러나고 말이죠. CBI와 구보의 거래는, 일방적인 투자가 아니라 김용우 대표의 구보가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와 CBI의 전환사채를 교환한 거래이니 CBI와 김용우씨의 의기투합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구보의 전환상환우선주와 교환된 CBI의 9회차 전환사채는 2022년 8월에 발행된 것으로 CBI가 8월23일 콜옵션을 행사해 만기전 취득한 것입니다. CBI는 9회차 전환사채 취득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3회차 전환사채(100억원)를 발행해 바로저축은행에 인수시켰고, 인천시의 공장을 담보로 맡겼죠.



9회차 전환사채는 10월 13일 구보의 전환상환우선주와 교환돼 넘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즉시 주당 1731원에 전액 주식으로 전환청구가 이루어졌습니다. 10월 13일 CBI의 주식은 134만주 이상 대량거래가 이루어지며 15.5% 급등해 2415원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전환청구로 구보가 받게 되는 주식은 10월 30일이 상장예정일이었습니다. 그날은 주가가 1683원으로 주저앉았고 거래도 부진했습니다.


구보가 전환청구로 확보하게 되는 주식 수는 약 578만주에 달합니다. 현재 상장주식 수의 14.2%에 해당하는 지분으로, 최대주주인 그로우스앤밸류와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한 342만여주(9월말 기준 지분율 11.13%)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최대주주 변경 공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공개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김용우 대표를 연결고리로 하는 알몬티-구보-CBI의 관계도 그렇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