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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오버넷은 약 1년 간에 걸쳐 여러 명의의 계좌를 통해 대한통운 지분을 매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명의가 '엘로우통신' '푸른컨셜팅' '메가샷' 등일 것으로 짐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노출되지 않은 다른 명의가 더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알려진 정보들이 시간의 흐름과 맞지 않습니다. 오버넷이 엘로우통신 등과 처음 자금대여 계약을 체결한 건 2004년 12월 24일입니다. 아래 보이는 2004년 감사보고서에는 계약 시기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 나온2005년 감사보고서에는 정확히 '2004년 12월 24일'로 적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004년 감사보고서에는 자금대여 담보로 받은 주식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2005년 감사보고서에는 '대한통운' 지분이라고 공개하고 있습니다. 자금 대여의 목적은 대한통운 지분의 취득이란 것을 알 수 있지요.


대한통운 매집 시기와 주체가 불분명합니다.


대한통운 지분 매집의 실제 주체가 브로드밴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말 자금 대여 계약에는 브로드밴드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단지 자금 대여자인 오버넷과 차입자인 엘로우통신 등 3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버넷이 245억원을 엘로우통신 등에 빌려 주었고, 상환을 위한 담보로 278억원어치의 대한통운 주식을 받았지요.


대한통운 주식 매집이 1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게 사실이고, 매수자가 엘로우통신 등이라면, 엘로우통신은 오버넷에서 빌린 돈이 아니라 다른 돈으로 대한통운 지분을 샀어야 합니다. 그리고 2004년말에 오버넷에서 245억원을 받아 그걸 대체한 것이어야 말이 되지요.


보도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12월24일 하루에 모든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죠. 오버넷이 자금을 대여하고, 엘로우통신 등이 누군가(또는 누구들인가)에게서 대한통운 지분을 통째로 산 것이죠. 278억원어치의 주식을 32억원 싸게 샀거나, 아니면 다른 출처의 돈 32억원을 보태서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보자면, 1년간의 매집도 사실이고, 12월 24일 엘로우통신 등이 통째로 산 것도 사실인 경우가 있겠습니다. 이게 성립하려면, 1년간 매집한 주체가 따로 있어야 할 테고요. 흠……


대한통운 투자이익은 오버넷 몫이 아니었습니다.



2005년 오버넷 감사보고서에 나오는 계약 내용입니다. 첫 계약 당시 대한통운에서 올린 투자수익은 오버넷에 귀속되는 것이었습니다. 투자수익이 9%에 미달하거나 투자손실이 발생하면 오버넷은 9%의 이자를 받고, 투자수익이 9%를 넘어서면 투자수익을 오버넷이 먹기로 했습니다.


해가 바뀌자 마자 브르드밴드가 개입하면서 계약이 바뀝니다. 계획된 계약 변경인지, 문제가 발견돼서 계약을 수정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브로드밴드의 투자 원금 및 수익을 회수하는 방법과 관련이 되어 있을 것은 거의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처음 계약이 유지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브로드밴드가 투자원금과 투자수익을 회수하려면 오버넷이 유상감자를 하거나 브로드밴드의 지분을 자기주식으로 매입해야 합니다. 어떤 방식을 쓰든 다른 주주들과 수익을 나누어야 합니다. 지분율은 신창호 대표 등 창업자그룹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계약을 바꾸면서 대한통운 투자수익은 오버넷에 귀속되지 않게 됩니다. 오롯이 브로드밴드 몫이 됩니다. 결국 오버넷 역시 다른 세 회사와 마찬가지로 이름만 빌려준 것이었네요. 오버넷이 이름을 빌려 준 대가는 245억원의 대여금 이자 9%와 자기 명의로 산 1.4%의 대한통운 지분에서 올린 투자수익이었습니다.


어쩌면 5년을 기다린 투자였는지도 모릅니다.


소름 돋는 것은 어쩌면 대한통운을 노린 이 거래가 자그마치 5년 전인 2000년부터 준비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한통운 지분 거래의 숨은 주역인 브로드밴드는 다름 아닌 파마그룹(PAMA Group)입니다. 파마그룹은 미국계 보험사인 푸르덴셜의 자회사였다가 분리돼 나온 홍콩의 투자회사로 당시 메리츠증권 최대주주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관심이 많았죠.



파마그룹이 오버넷의 주주가 된 건 2000년 3월, 그러니까 산업은행과 산은캐피탈이 오버넷의 주주가 된 지 5개월 뒤입니다. 그리고 파마그룹을 오버넷에 소개한 주선자는 삼성증권입니다.


오버넷은 파마그룹(270억원)과 삼성증권(10억원)을 상대로 280억원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합니다. 오버넷이 당시에 얼마나 전도유망했는지 모르겠지만, 자본금 26억5000만원에, 약간의 결손 상태였던 벤처기업에 무려 270억원을 출자하면서 받아간 지분율이 고작 28%였습니다. 1주당 12만7000원을 주고 사거든요. 기업가치를 거의 1000억원에 가깝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오버넷은 2005년 대한통운 지분을 살 때까지 파마그룹이 투자한 돈을 거의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처음 2년 간은 유형자산에 투자하고 차입금을 조달하고 상환하는 조금 활발한 거래를 하지만, 결국엔 280억원의 유상증자는 비슷한 금액의 현금성자산과 금융상품 보유를 가능하게 합니다. 위 차트에서 기타유동자산은 거의 전액 엘로우통신 등 3사에 대한 대여금으로 보시면 됩니다


대한통운 대박 직후 파마그룹은 오버넷에서 철수합니다.



창업 초기 오버넷에 출자했던 산업은행과 산은캐피탈은 2005년의 어느 시점에 투자를 회수합니다. 그 시기가 대한통운 투자 전인지 후인지는 공시로 알 수 없습니다. 삼성증권도 일부 지분을 2005년말 전에 회수합니다.


산업은행과 산은캐피탈의 투자원금은 5억7600만원 정도였습니다. 삼성증권은 10억원 정도를 투입해 그 중 3분의 1을 오버넷에 되팔았습니다. 산업은행, 산은캐피탈, 삼성증권 지분을 사는데 오버넷은 약 49억원을 씁니다.



그리고 해를 넘긴 2006년 파마그룹이 오버넷의 주주명단에서 사라집니다. 대한통운 투자가 종료된 다음, 보유 주식 전부를 오버넷에 되팔고 떠납니다. 270억을 오버넷에 투자했던 파마그룹은 되팔 때는 200억원만 받습니다. 대한통운 투자로 오버넷도 꽤 짭짤한 이익을 냈는데 오히려 원금 중 70억원을 이별 선물인양 두고 갑니다.


오버넷 임직원이 큰 돈을 쓸 일이 있었나 봅니다.


사족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버넷의 감사보고서에서 조금 특이한 걸 발견했습니다. 오버넷이 2004년에(대한통운 주식을 매집한 그 시기) 임직원 아무개(또는 아무개들)에게 245억원을 꿔주었다가 돌려 받은 일이 있더군요. 공교롭게도 엘로우통신 등에게 빌려 준 금액과 일치합니다.



245억원이면 오버넷이 가진 현금 전부를 다 빌려 준 거나 마찬가집니다. 아마도 임직원에게 돌려 받아서 엘로우통신 등에게 대여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정이겠죠. 그 정도 거금을 내어 줄 임직원이면 오버넷에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가 봅니다. 그리고 그 임직원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었나 봅니다. 회사에 있는 돈을 몽땅 꿔 갈 정도로 아주 크고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나 저나 오버넷이 대한통운 지분을 매입한 시기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엘로우통신 등이 그런 큰 돈이 원래 있었다면 오버넷에 이름만 빌려 주는 자금대여 계약을 할 이유가 없고, 그 돈을 브로드밴드에서 미리 대줬다면 오버넷과 삼각 거래를 할 필요가 없는데……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가 더 있었다면 퍼즐이 좀 맞춰질 것 같긴 합니다. 정체 불명의 누군가가 먼저 매집을 하고, 그 지분을 엘로우통신 등 3사에 넘겨주는 시나리오라면 1년에 걸친 매집시기와 2004년 12월24일 오버넷과 엘로우통신 등의 자금대여 계약을 연결 지을 수 있겠습니다.


물론 단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아무 근거 없는 재읽사의 허무맹랑한 상상입니다.


그나저나 임직원 아무개 씨는 245억원씩이나 되는 돈을 어디에 쓴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