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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그룹과 한미그룹이 기업 역사상 유례없는 그룹 통합에 나섰습니다. 재벌그룹끼리 계열사를 주고받는 빅딜은 어쩌다가 한번씩 있지만, 동일 업종간 합병도 거의 없는 게 국내 기업의 풍토인 점을 생각하면 그룹 통합은 정말이지 매우 쇼킹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러가지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과연 순조롭게 통합이 이루어질까 싶기도 하고, 통합이라고 칭할 수 있나 싶기도 합니다. 거래 당사자들이 '통합'이라고 부르니, 언론들도 그렇게 쓰고 있기는 합니다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이니 미리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겠습니다. 천천히 따라가 보기로 하죠.
우선 거래 구조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진실이 숨어 있게 마련이거든요. 단순해 보이지만, 의외로 복잡합니다. 거래는 한미사이언스의 송영숙 회장 모녀 등의 지분을 OCI홀딩스가 현금과 신주발행으로 취득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추가로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에 2400억원을 출자할 예정인데, 덤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거래를 쪼개 보면, 첫째로 OCI홀딩스가 송영숙 회장과 가현문화재단이 보유한 744만주를 2,775억원에 현금 인수합니다. 송회장과 가현문화재단이 각각 몇주를 매각하는지는 공시에 밝히지 않았습니다. 당초 송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자녀인 김원세, 김지우의 지분을 묶어 매각하려다가 외손주들의 지분을 가현문화재단 지분으로 교체했습니다. 가현문화재단(구 한미문화예술재단)은 송영숙 회장이 2002년 설립해 2020년 2월까지 이사장을 역임한 곳입니다. 가현문화재단의 첫 사업이 한미사진미술관 개관이고, 송 회장이 이 곳의 관장입니다. 가현문화재단의 지분은 사실상 송영숙 회장의 몫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송영숙 회장의 일부 지분과 임주현 사장의 대부분 지분은 OCI홀딩스가 신주를 발행해 인수합니다. OCI홀딩스의 신주와 한미사이언스 구주가 교환되는 주식스왑거래인 셈입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528억원에 달합니다. OCI홀딩스는 주당 11만300원으로, 한미사이언스는 주당 3만7300원으로 계산됐습니다. 위 한미사이언스 주식 현금 매입의 거래가격도 당연히 같습니다.
이 거래를 위해 OCI홀딩스는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어 유상증자 결의를 했는데요. 납입일(송영숙, 임주현의 현물출자일)을 6월 30일로 잡았습니다. 같은 날 송영숙 회장과 가현문화재단 지분에 대한 현금 매입도 완료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구주 거래가 이루어지면 송영숙 회장(가현문화재단 포함)은 2,775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되고,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은 OCI홀딩스의 지분 10.37%를 갖게 됩니다.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17.29%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올라섭니다.
통합 거래의 남은 조각은 OCI홀딩스의 한미사이언스에 대한 2,400억원 현금출자입니다. 한미사이언스가 발행할 신주를 OCI홀딩스가 인수하는 겁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덤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선결 조건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주 거래의 완료 예정일은 6월말이지만, 현금 출자의 완료 예정일은 두달 빠른 4월30일입니다.
OCI홀딩스로의 구주 매각은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 개인 의지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OCI홀딩스의 현금출자는 두 사람의 뜻만으로 부족합니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의 결정이 필요하고, 통합에 반대하는 다른 주주들이 소송 제기와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통해 막을 수 있습니다. 이미 송 회장의 두 아들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은 17일 공동으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했습니다.
현금 출자를 하지 않아도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습니다. 한미사이언스가 단기차입금이 1800억원 규모로 적지 않지만, 부채비율이 46.42%로 낮고, 지주회사라서 설비투자 등에 들어갈 큰 돈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든든한 자회사 한미약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액의 현금 출자는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주 거래는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 2명의 뜻이지만, 현금 출자는 지주회사 대 지주회사의 거래입니다. 무리없이 진행된다면 한미사이언스의 이사회는 물론이고 대부분 주주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는 명분을 확보하게 됩니다. 2,400억원의 현금은 회사와 모든 주주가 받게 되는 실질적인 혜택이라는 명분이기도 합니다. 결국 한미사이언스 유상증자는 그룹 통합거래에 '정당성'이 부여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OCI그룹 입장에서는 명분 이상의 필요가 있습니다. 지주회사 체제로의 성공적인 전환이 달려 있습니다. OCI그룹은 지난해 5월 OCI 인적분할을 시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추진 중입니다. 그 일환으로 OCI China 등 자회사 지분을 OCI에 현물출자해 33.25%인 현재 지분율을 44.78%까지 끌어올릴 예정입니다.
통합 후 OCI 홀딩스는 상장 자회사가 되는 한미사이언스에 대한 지분을 향후 2년 내에 30% 이상 확보해야 합니다. 추가 출자 없이 통합이 이루어질 경우 통합그룹의 지주회사인 OCI홀딩스의 한미사이언스에 대한 지분은 20.32%에 머물지만, 한미사이언스의 유상증자 후에는 27.03%까지 올라갑니다. 규제 지분율인 30%에 거의 근접하게 됩니다.
한미사이언스는 유상증자 대금 2,400억원 중 1,000억원을 차입금 상환에 사용할 예정입니다. 한미사이언스의 차입금(2023년 9월말 현재 1900억원) 이 전체 자산 대비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90% 이상 단기성차입금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1,000억원의 차입금 상환은 한미사이언스의 재무안정성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나머지 1,400억원은 향후 그룹의 체제 전환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제약•바이오사업이 한미사이언스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은데, OCI그룹내 부광약품을 한미사이언스 자회사로 편입하거나, 외부의 제약 또는 바이오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는 종잣돈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부광약품을 한미사이언스 자회사로 이전한다면, OCI홀딩스는 부광약품 지분을 한미사이언스에 현물출자하고 한미사이언스의 추가 지분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자회사 지분율 하한인 30%를 쉽게 넘어설 수 있겠죠. 또 부광약품에 대한 지분율이 30%에 한참 모자란 10.90%에 불과한데, 나머지 약 19.10%의 지분을 채우는 부담을 한미사이언스로 넘길 수 있습니다. 2,400억원이 전혀 아깝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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