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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지난해 역대급 잠정 실적을 공개하면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162조원의 매출(이하 연결기준)을 기록하며 전년비 14.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5조원으로 무려 54%나 늘었죠. 기아 역시 매출이 99.8조원으로 15.3% 증가했고, 11조원의 영업이익을 얻어 60.5%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사실 두 완성차업체의 4분기 실적은 살짝 주춤한 감이 있습니다. 상반기 매출 증가율은 두 업체 모두 20% 이상을 기록했고, 3분기까지 영업이익 증가율은 각각 80.4%(현대차), 98.4%(기아)에 달했습니다. 4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에 비해서는 증가했지만, 전분기에 비하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비교적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으니, 자동차부품업체 실적도 개선되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의 협력업체들에게 훈풍이 불었을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지난해 잠정실적을 발표한 상장 자동차부품업체는 29일 현재 모비스뿐입니다. 모비스는 지난해 59조원의 매출과 2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각각 14.16%와 13.26%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실적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완성차업체인 현대차와 기아만큼의 서프라이즈는 아닙니다.


3분기까지 자동차부품업체들의 실적은 어땠을까요? 현대차나 기아처럼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면, 연간 실적 역시 전년보다 크게 개선되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적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개선 폭이 미미하다면, 서프라이즈를 예상하기는 어렵겠죠.


상장 자동차부품업체를 현대차와 기아의 1차 협력업체와 그 외 업체들로 나누어 3분기까지 실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1차 협력업체는 표준산업분류상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현대차나 기아를 직접 고객으로 둔 곳으로 정의했고, 기존에 공개된 협력업체와 각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대상으로 유추했습니다. 분류가 잘못된 업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별도로 산업분류가 다른 한온시스템, 대유에이텍 추가했고, 타이어업체는 별도로 다루어 볼 생각입니다.


연결재무제표를 대상으로 할 경우 자동차부품업 외 실적이 포함되는 노이즈를 피하기 위해 개별 재무제표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총 94개 업체(2023년 9월 현재 기준) 중 평화홀딩스와 우리산업홀딩스는 지주회사라서, 신규 상장업체인 신성에스티는 분기 실적을 공시하지 않아 각각 제거했습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모비스와 현대위아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상장 자동차부품업체의 지난해 3분기까지 실적은 예상대로 좋아졌습니다. 자동차부품업체 실적은 2020년 바닥을 치고 2021년부터 개선되기 시작했는데요. 2022년에도 13%가량 매출이 늘었었죠. 그런데 지난해에는 89개 상장 자동차부품업체의 매출이 3분기까지 16%의 매출증가율을 보였습니다. 매출이 호조를 보이자 영업이익은 훨씬 더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2022년에 41% 증가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에는 3분기까지 113% 늘었죠.


현대차나 기아의 1차 협력업체와 그 외 부품업체의 실적 개선 정도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1차 협력사의 3분기까지 매출 증가율은 16%, 그 외 부품업체의 매출 증가율은 15%였고, 영업이익 증가율은 각각 111%와 124%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차와 기아의 1차 협력사는 그 외 회사들과 확실한 규모의 우위를 보입니다. 1차 협력사의 3분기까지 평균 매출은 4424억원에 달하지만 그 외 회사들의 평균 매출은 1373억원으로 크게 감소합니다. 영업이익 역시 182억원 대 61억원으로 3배 차이를 보입니다.


손익계산서 계정인 매출액이나 영업이익보다 더 눈에 띄는 건 현금흐름입니다. 2022년의 경우 자동차부품업체들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부진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영업이익보다는 많습니다. 특히 유형자산이 많은 제조업체일수록 차이가 커지죠. 현금이 나가지 않는 감가상각비 규모가 상대적으로 커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2022년 3분기까지 현대차와 기아의 1차 협력업체 평균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90억원으로 평균 영업이익 89억원과 거의 차이가 없었고, 1차 협력업체 외 부품업체들의 평균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고작 7억원으로 평균 영업이익 27억원보다 훨씬 적었죠.


예정된 투자를 늦출 수 없었던 자동차부품업체들은 영업으로 유입되는 현금보다 큰 규모의 설비투자 지출로 현금흐름 부족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보유 현금이 줄어들거나 급하게 차입에 나서야 했습니다. 이런 자금사정은 연말에 가서야 풀렸습니다.


2022년 자동차부품업체의 현금흐름은 1차 협력업체나 아니거나 관계없이 악화됐는데, 주요 원인은 매출채권 증가에 있었습니다. 1차 협력업체의 매출채권은 평균 211억원, 그 외 업체는 평균 67억원 늘었는데요. 전년에 비해 각각 4배 이상, 7배 이상이었습니다. 이들에게서 외상으로 부품을 사간 주요 업체에는 당연히 현대차와 기아 등 완성차업체가 포함됩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부품업체들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평균 172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거의 3배에 가깝습니다. 그로 인해 평균 119억원으로 설비투자를 늘리고도 남는 현금흐름 잉여를 보였습니다. 현금 사정이 상당히 좋아진 겁니다.


당연히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한 것이 첫번째 이유이지만, 매출채권이 2022년처럼 늘지 않은 것도 한몫 했습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부품업체들의 매출채권은 평균 79억원 늘었는데,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억원 가까이 줄어든 겁니다.


현대차와 기아의 매입채무는 이 같은 부품업체들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2022년 현대차와 기아의 매입채무는 전년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특히 기아의 경우 2021년 1000억원대이던 매입채무 증가액이 2022년에는 1조원을 훌쩍 넘어섭니다. 부품업체들에 대한 자금결제가 늦춰진 정황이죠.



그러나 올해 두 완성차업체의 매입채무가 줄었습니다. 3분기까지 현대차는 1350억원, 기아차는 3119억원 줄었죠. 올 들어 부품 매입액보다 매입대금 결제액이 더 컸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현대차와 기아의 실적 호조가 자동차부품업체들의 실적 개선은 물론이고 현금사정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죠.


국내 자동차부품업체들은 매출처 다변화가 잘 이루어진 곳을 손에 꼽을 정도죠. 대표적인 글로벌 자동차부품업체 한온시스템조차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대한 매출 비중이 48.4%(2023년 3분기 현재)에 이를 정도니까요. 세종공업, 모베이스전자, 세원물산, 오리엔트정공, 에코플라스틱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매출의 전부를 현대차그룹에 의존하는 자동차부품업체도 상당히 많습니다. 비가 제때 오면 풍년이고, 가뭄이면 흉년이 되는 천수답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