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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위기에 빠진 SK이노베이션이 그룹의 우량 자산인 SK이엔에스(SK E&S)와 합병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보도대로 두 회사가 합병한다면 SK이노베이션 주가에는 호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차세대 먹거리인 배터리사업의 부실을 해결하고 부족한 현금흐름을 채울 수 있는 확실한 카드가 생긴 셈이니까요.


SK온은 최근 몇 년동안 막대한 투자자금이 투입되고 있지만, 그룹에서 약속한 흑자전환 시기가 계속 늦어지면서 막대한 결손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결손이 단순히 재무제표 상의 문제가 아니라 대대적인 현금유출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배터리 시장에서 생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당분간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재무적으로 부실이 커지다보니 외부자금을 유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마저 휘청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 SK이엔에스는 SK이노베이션에게 보약이 될 것인가?


SK이엔에스는 연간 10조원 이상의 매출(연결기준)을 올리고 있고, 1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안정적으로 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합병대상이 된다면 SK이노베이션이 적자전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올해 1분기 976억원 적자). 뿐만 아니라 우량 자산들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외부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SK온에 대한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지원능력이 커지게 되죠.


SK이엔에스는 전력 및 집단에너지사업, 도시가스업, LNG사업, 재생에너지사업, 에너지솔루션사업, 수소사업 등 다양한 사업부문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부분 매출은 전력 및 집단에너지사업과 도시가스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7개 자회사로 구성된 도시가스업은 전국적인 공급권역을 확보하고 있고 시장점유율 22.7%에 달하는 국내 최대규모이죠.


SK이엔에스가 현금이 넘쳐나는 회사는아닙니다. 안정적인 수익기반에도 불구하고 매년 투자규모가 적지 않고 무엇보다 모회사인 SK㈜에 대한 배당금 부담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전력사업과 도시가스업 자회사들은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추고 있고 일부 자회사를 제외하면 SK이엔에스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SK이엔에스 자회사들은 기업공개(IPO)용으로는 매력이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최대 과반 미만의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수혈할 수 있는 수단은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 주가 보다 더 중요한 신용등급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글로벌 신용등급 강등의 쓴 맛을 보았습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올해 3월 BBB-등급에서 BB+등급으로 1노치 떨어뜨렸습니다.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수요는 둔화되고 있는데, 설비투자 부담은 커서 수익창출 대비 차입금이 너무 많다는 이유였습니다. S&P는 SK이노베이션의 재무위험이 상당한(significant) 수준을 넘어 공격적(aggressive)이라고 평가했습니다.


SK온을 물적분할 할 당시 청사진대로면 SK온은 이미 돈 버는 회사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흑자전환 약속을 번번히 지키지 못했죠. 지난해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 역시 빌 공(空)자 공약이 되고 말았습니다. SK이노베이션측은 올해 하반기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S&P에 믿음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S&P는 SK온의 적자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사업을 하는 SK에너지, 윤할기유를 판매하는 SK엔무브 등 자회사 덕분에 영업활동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습니다만, SK온을 중심으로 한 배터리부문의 엄청난 투자자금 때문에 매년 대규모 현금부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현금을 채우기 위해 매년 프리IPO 성격의 유상증자나 금융기관 차입, 회사채 발행 등 자금조달 부담이 최대 과제입니다.



그런 와중에 SK이노베이션의 글로벌 신용등급 하락은 큰 악재입니다. BB+로의 강등은 SK이노베이션이 투자적격기업이 아니라 투기등급 기업이 됐다는 뜻이 됩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투자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이 외화자금조달에 나설 때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차입조건도 훨씬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자금조달능력 약화는 자회사들의 자금조달 능력이 동반 약화됨을 의미합니다. 투자자들은 SK이노베이션의 신용을 보고 자회사들에게 돈을 빌려주기 때문이죠. 지속적인 투자자금 조달이 필요한 SK온 역시 마찬가지 사정이 됩니다. SK이노베이션이 직접 발행한 외화사채는 없지만 연결기준으로는 4차례에 걸쳐 약 3조원에 달하는 그린본드를 발행했고 외화차입금도 7조5600억원(명목금액 기준)에 달합니다. SK온과 SK온의 자회사인 SK배터리 아메리카가 발행한 외화채이고, 금융기관 차입금입니다. 그린본드의 경우 KB국민은행 보증으로 발행되었지만, SK이노베이션이 신용등급 하락이 KB국민은행과의 보증계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주가 측면의 호재로 SK이엔에스와 합병을 바라보지만, 실질적으로는 추락한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과 현금흐름 측면의 효과가 더욱 클 수 있습니다. 단순히 주가가 오른다는 것 만으로 SK이노베이션이나 SK온의 자금사정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유상증자에 유리해지기는 하지만, SK이노베이션 같은 대기업에게 유상증자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지난해 기습적인 1조원대의 대규모 유상증자로 SK이노베이션은 시장의 큰 원망을 샀습니다.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을 밥먹듯이 하는 상장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이 갑자기 대규모 유상증자를 한다는 건 재무상황이 많이 여의치 않다는 신호이고, 경영실패의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주주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래서 차입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특히 SK이노베이션처럼 해외 비중이 높은 배터리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는 글로벌 신용등급이 상당히 중요한 이슈일 수밖에 없습니다.


# SK이엔에스는 사실상 SK㈜의 100% 자회사, 합병 결림돌이 없다


SK이엔에스가 합병 대상으로 검토될 수 있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SK㈜가 최대주주인 비상장사라는 점입니다. SK㈜가 90% 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지분 10%를 엠디프라임제일차와 엠디프라임제이차라는 요상한 이름의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데요. 둘 다 미래에셋증권에서 만들어 준 장부상회사(SPC)입니다. 이 장부상회사들은 SK㈜와 총수익스왑(Total Return Swap)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SPC는 SK이엔에스 주식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손실 일체를 SK㈜에게 이전하고, SK㈜는 그 대가로 고정 수수료(91일물 CD금리+1.8%)를 분기마다 지급합니다.



그렇다면 SPC가 갖고 있는 보통주 10%의 의결권을 실제로 누가 행사할까요? 그 어떤 수익과 손실로부터 자유롭고 고정 수수료만 받을 뿐인 SPC가 자신의 의지를 갖고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리가 없죠. SK㈜의 뜻에 따라 기계적인 권리 행사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실상 SPC가 소유한 10%의 지분은 SK㈜가 차명보유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SK이엔에스는 실질상 SK㈜의 100% 자회사인 셈입니다. SK이엔에스의 주주 입장에서 SK이노베이션과 합병이 불만일 수 있지만, SK이엔에스에는 그런 주주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대할 주주가 없으니 반대 주주에 대한 주식매수 부담도 없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주주 입장은 어떨까요? 이해의 측면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SK이엔에스는 SK온 또는 SK이노베이션을 구하기 위해 처방된 보약인 셈인데, 왜 반대를 하겠습니까? 물론 경영을 잘해서 다른 계열사와 합병할 상황을 만들지 않았어야 한다고 경영진을 비난할 수도 있고, 한때 30만원을 넘던 SK이노베이션의 주가가 3분의 1토막이 된 상태에서 합병을 하면, 합병 신주를 적게 받게 되니 그게 불만일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과거 일뿐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재무적인 문제 해결과 배터리사업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 유상증자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 유상증자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죠. 합병에 반대한다면 유상증자에 대한 실질적이 부담과 주가희석 가능성까지 감당해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SK이엔에스와 합병으로 그런 짐을 지지 않을 수 있고, 주가마저 오른다면 운이 좋은 거죠.


#지주회사 SK㈜에게는 기회의 득실이 모두 있다.


최대주주인 SK㈜로서는 기회측면에서 득실이 있습니다. 지주회사 입장에서 자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재무적 곤경을 해결해야 하는 면에서는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입니다. 사실 개별회사 SK㈜는 역시 최근 3년간 재무적인 건강이 나빠져 왔습니다. 부채비율이 2020년말 59%에서 올해 3월말 79.8%까지 상승했습니다. 총차입금에서 현금과 금융상품을 차감한 순차입금이 2020년과 비교하면 3년만에 50% 늘었고, 그로 인해 전체 자산 대비 차입금 비중을 의미하는 차입금의존도가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40%를 넘어섰습니다. 최근 2년간 영업이익에 비해 당기순이익이 매우 적은데, 그런 재무적인 문제가 중요한 원인입니다. 올해 1분기 실적도 지난해 동기에 크게 미달하는 수준이죠.



더 큰 문제는 역시 돈입니다. 지주회사인 SK는 직접적인 설비투자 부담이 없지만, 계열사 지분취득에 들어가는 자금이 상당합니다. 2021년 SK바이오팜 지분을 블록딜로 매각하는 등 최근 3년간 약 1조4700억원의 종속 또는 관계회사 지분 매각이 있었지만, 같은 기간 종속 또는 관계회사 지분 취득에 들어간 자금은 4조1000억원에 달합니다. 2021년 합병한 SK머티리얼즈가 있지만 SK㈜의 대부분 현금흐름은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회사 배당금만으로는 SK㈜의 투자본능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는 수준이라 차입금이 빠르게 늘었던 것이죠.


SK온을 비롯한 SK이노베이션의 재무적인 문제를 외부의 도움 없이 해결하려면 결국 SK㈜의 지원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그럴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SK하이닉스가 약진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자체적인 증설 부담이 있어서 도움을 기대하기 좀 애매합니다. 결국 SK㈜가 유상증자를 해서 자금을 마련해 SK이노베이션에 쏴줘야 한다는 얘기인데, SK㈜ 주주들이 좋아할 리 없습니다. 게다가 17.73%의 지분을 보유한 최태원 회장의 출자 부담은 또 어쩔 겁니까?


SK(주)는 SK이엔에스를 기업공개(IPO)하면서 구주매각으로 상당한 현금을 손에 쥘 기회가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과 합병을 하게 되면  그 기회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합병 후 받게 되는 SK이노베이션의 상장주식을 매각하는 기회로 바뀌기 때문이죠.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는 건 정부의 정책방향인 지배구조 선진화에 역행하는 것이라 바람직하지 않지만, 주력 상장자회사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 보다는 100% 자회사를 상장하면서 구주를 매각하는 것이 훨씬 부담이 없습니다.


SK이엔에스의 기업공개를 선택할 것인가, SK이노베이션과 합병할 것인가의 결정에는 또 하나의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아까 언급한 10% 주주인 장부상 회사들과 SK㈜가 맺은 TRS계약입니다. 이건 다음 편에서 이어가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