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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7월17일 작성되었으나 착오로 인해 무료 공개가 지연되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SK그룹이 결국 17일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의 합병을 결정했습니다. 2차전지 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부담과 수익창출에 대한 어두워진 전망으로 위기에 빠진 SK이노베이션을 구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입니다. SK그룹은 합병의 목적에 대해 에너지산업 밸류체인 전반을 아우루는 사업구조 구축, 미래 에너지사업의 성장동력 확보 등 미사여구를 동원했지만 방점은 '안정적인 수익구조' '회사의 지속 가능성'에 찍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합병의 결정적 계기는 지난 3월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로부터 날아 들어온 투기등급(BB+)으로의 충격적인 강등 소식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S&P는 "SK이노베이션의 차입부담이 예상보다 더 크고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SK이노베이션의 재무위험도를 '상당한(significant)' 수준에서 '공격적(aggressive)' 수준으로 조정했습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자회사 SK온 때문입니다. SK이노베이션 연결법인은 2022년에 7조원, 지난해 무려 11조5000억원을 설비투자에 쏟아부었습니다. 지분출자도 지난해 1조원이 넘습니다. 그 많은 자금을 대기 위해 2022년에 9조원의 순차입과 1조7000억원의 유상증자가 이루어졌고, 지난해에도 3조원 이상의 순차입과 6조6000억원 이상의 유상증자를 해야 했습니다. SK그룹의 계획 대로라면 2018년 이후 배터리 및 소재사업 설비투자 계획 41조원 중 올해 3월까지 26조원이 지출됐으니 약 14조원 정도를 더 해야 하는데, S&P는 더 많은 자금을 더 오래 투자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신용등급의 하락, 그것도 투기등급으로의 강등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SK온 등의 자회사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조건이 까다로워진 것은 물론 조달 가능성 자체가 낮아졌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기존 차입금의 연장도 어려워집니다. 투기등급으로의 강등은 대부분 설비투자가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대단히 큰 악재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의 시황 약화는 일시적인 상황이고, SK온의 수익성이 올해 하반기부터 개선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S&P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신용평가사는 경기사이클 내에서의 시황 하락을 이유로 신용등급을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경기사이클 전체를 감안해 등급을 매깁니다. 이걸 'through the cycle'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용등급을 발표하기 전에 SK이노베이션측의 의견을 청취했겠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그대로 발표가 된 겁니다.


합병 가능성이 높아지자 두 회사의 합병비율이 어느 쪽에 유리하게 결정될 것이냐를 놓고 언론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SK㈜가 90%의 지분(나머지 10%의 지분에 대해 총수익스왑(TRS) 계약을 맺고 있으니 사실상 100%로 볼 수 있음)을 갖고 있는 SK이엔에스의 가치는 높게, 일반 주주가 더 많은 SK이노베이션의 가치는 낮게 평가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 같습니다.


SK그룹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합병이 아니라 SK이노베이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합병을 결정한 것이니, 그룹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병의 성사입니다. 합병 후 SK㈜가 보유할 지분율을 조금 더 높이자고 SK이엔에스의 가치를 부풀리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은 최근 1개월의 주가를 근거로 보통주 1주당 11만2396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1개월 종가의 거래량 가중 산술평균, 최근 1주일 종가의 거래량 가중 산술평균, 최근일(7월16일) 종가, 이 세 가격의 평균값입니다. SK이엔에스의 합병가액은 자산가치(주당 8만2475원)의 40%와 수익가치(주당 16만8262원)의 60%를 더한 주당 13만3947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른바 본질가치법이라는 가치평가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의 합병비율이 약 1:1.19로 결정되었습니다. 합병비율에 따라 SK이엔에스의 최대주주인 SK㈜가 SK이엔에스 1주당 SK이노베이션 신주 1.19주를 받게 됩니다.


SK그룹은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원칙적인 방법을 선택해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의 기업가치를 산출했습니다. 자본시장법시행령 제176조의 5는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이 합병할 때, 상장법인은 기준시가를, 비상장법인은 본질가치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원칙적인 방법을 선택했다고 해서 가치평가가 적정하게 이루어졌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기준시가야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니 토를 달 게 없고, 비상장사인 SK이엔에스의 자산가치도 구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으니 의도적인 개입으로 크게 달라질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합병가액의 60%를 차지하는 수익가치는 수많은 가정과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전망을 근거로 산출하기 때문에 어떻게 가정하고 어떻게 전망했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외부 전문기관인 회계법인에서 실시한 평가결과이니 일단은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그런데 아주 민감한 이슈가 몇 가지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을 기준시가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원칙대로' 평가한 가액이기는 하지만, 자본시장법이 허용한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의 기준시가가 자산가치보다 낮을 때는 자산가치로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외부평가를 맡은 회계법인은 다수의 시장참여자들에 의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어 형성된 시가를 기초로 산정된 기준시가가 기업의 실질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말합니다. SK이노베이션의 영업 불확실성이나 자회사의 영업성과를 반영하지 않은 자산가치를 적용하면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 그리고 그 주주들의 이익을 균형적인 시각에서 합리적으로 고려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공정가액을 대표하는 시가로 평가하는 게 균형적이고 합리적이라면, 비상장사인 SK이엔에스의 합병가액도 장부상 순자산을 기초로 한 자산가치를 반영한 본질가치법을 써서는 안되고, 상장사의 주가와 비교가 가능한 평가방법을 채택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상장사의 주가와 비상장사에 적용되는 본질가치법은 서로 비교가 불가능한 완전히 다른 평가방법이고, 같은 회사를 두 방법대로 각각 평가할 경우 평가의 결과 또한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기준시가와 자산가치가 전혀 다른 것처럼 말이죠.


애초에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사인 SK이엔에스의 가치를 평가해서 합병비율을 결정하는 마당에,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을 기준시가로 선택했다고 해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균형적인 시각에서 합리적으로 고려했다고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기준시가로 할 것이냐, 자산가치로 할 것이냐는 것은 오롯이 선택의 문제일 뿐입니다.


SK이노베이션의 자산가치는 보통주 1주당 24만5405원이고, 자산가치를 합병가액으로 선택했다면 합병비율은 1:0.545가 되었을 것입니다.  SK㈜는 SK이엔에스 1주를 SK이노베이션 약 0.55주로 교환했어야 했겠죠.



1:1.19의 합병비율로 합병이 이루어질 경우 SK㈜의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지분율은 현재 36.2%에서 55.9%(예상)로 상승하게 되는데요.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을 자산가치로 책정했다면 47.5%까지만 상승했을 것입니다. SK㈜ 외 주주의 입장에서는 합병가액이 기준시가로 결정되는 바람에 8.4%의 지분을 SK㈜에게 양보한 셈이 되었습니다.


자본시장법이 허용하는 융통성은 하나 더 있습니다. 기준시가로 합병가액을 결정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조정을 할 수 있는데요. 비계열사와 합병이면 30%, 계열사간 합병이면 10%의 할증 또는 할인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의 기준시가에 대해 최대 10%의 할인 또는 할증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원칙대로 한 것이지만, 일반주주들 입장에서는 서운하게 됐죠. 만약 일반주주를 고려해 10%의 할증을 적용했다면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은 12만3636원이 되었을 것이고, 합병 후 SK이노베이션에 대한 SK㈜의 지분율은 54.7%가 되었을 것입니다. 일반 주주의 몫이 되었을 수도 있는 1.2%의 지분이 SK㈜의 몫이 된 셈입니다.



SK이엔에스 가치평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한 처리입니다. 보통주 전환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보통주식 수에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이는 매우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판단입니다. 자본시장법은 우선주의 전환가능성이 확실할 경우에만 보통주로 환산하도록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회계법인은 이 상환우선주가 현금 상환이 아닌 현물 상환을 가정해 보통주에 배정될 자산가치에서 차감했습니다. 상환우선주 발행액은 3조1350억원인데요. 상환 대상인 현물은 강원도시가스 등 100% 자회사인 도시가스 7개사의 지분이고, 7개사의 장부상 순자산은 1조4602억원입니다.


실제 상환가능 시기가 도래했을 때 상환가액은 3조1350억원이 아니라 그 보다 상당히 커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자본시장법이 (매우 비상식적이게도) 비상장사의 자산가치를 공정가치가 아닌 장부산 순자산을 기준으로 조정하도록 하고 있으니 따지지 않기로 하더라도 SK그룹이 현물상환을 하는 게 유리하고, 현물상환을 할 것으로 단정지은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현금상환과 현물상환의 유∙불리를 따지려면, 현금상환액과 비교할 대상은 상환대상 현물의 공정가액일 것입니다. 7개 도시가스 자회사의 장부상 순자산이 1조4602억원이지만, 7개 자회사를 통째로 넘기는 것인데 그 가치가 현금상환액인 3조135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근거를 제시했어야 마땅할 텐데, 외부평가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설마 상환우선주 발행액 3조1350억원과 7개 도시가스의 장부상 순자산인 1조4602억원을 비교한 것일까요? 7개 도시가스회사는 SK이엔에스의 핵심사업인 도시가스사업 그 자체이고, 캐시카우입니다. 매년 2700억원 수준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창출하고 있죠.


물론 7개 도시가스 회사의 실제 가치가 장부상 순자산보다 낮을 수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3조1350억원보다 훨씬 높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7개 도시가스회사를 포기한다는 것은 SK이엔에스가 도시가스사업 그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SK그룹이 내부적으로 상환전환우선주 상환을 위해 도시가스사업을 내놓기로 방침을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면, 장부상 순자산은 전혀 판단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의 절반이 되지 않지만, 앞으로 주가가 올라 장부상 순자산보다 커지면, SK그룹은 그 차익을 얻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을 그 주가에 파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나요?



만약 현물상환이 아니라 현금상환을 가정했다면 SK이엔에스의 순자산은 1조6747억원이 줄어들게 되고 보통주 1주당 자산가치는 8만2475원이 아닌 5만1005원이 됩니다. 본질가치는 자산가치의 40%를 반영하니, 이는 합병가액에 1만2588원의 차이를 만듭니다. 수익가치를 추가로 반영하지 않더라도 그것 만으로도 합병비율은 1:19가 아닌 1:1.079가 되었을 것이고, 합병 후 SK이노베이션에 대한 SK㈜의 지분율은 54.6%가 될 것입니다.


설마, SK그룹은 상환전환우선주를 갚기 위해 도시가스사업을 포기하기로 내부 결정을 했나요? 정말 그렇다면 빅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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