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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의 계층도는 국내 대기업집단 중에서 매우 단촐(?)한 편에 속합니다. 계열사도 23개사로 다른 재벌그룹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고,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기업도 별로 없습니다. 두산건설의 부실, 두산밥캣 인수 후유증, 원전사업의 부진 등으로 많은 자회사들이 그룹의 품을 떠났기 때문이죠. 두산그룹의 위상은 밥캣 인수 이후 길고 긴 내리막길을 걸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10위권 안팎이던 재계 서열은 한진, 카카오, 엘에스에도 밀리며 지난해 기준 17위로 내려앉았죠.
두산그룹의 중심이 되는 회사는 두산에너빌리티(구, 두산중공업)입니다. OB맥주를 만들던 두산그룹을 중후장대산업 중심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것이 과거 한국중공업 인수였죠. 두산그룹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지금은 두산그룹을 떠난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두산엔진, 두산메카텍 등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였습니다. 지주회사인 ㈜두산 역시 자회사 중 하나인 네오플럭스(현 신한벤처투자)와 두산캐피탈을 매각하고 두타몰, 두산타워, 두산모트롤 등을 흡수합병하며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만, 두산그룹이 현재의 위치라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두산에너빌리티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두산그룹의 딜레마는 두산에너빌리티 외에는 내세울만한 간판기업이 없다는 것이죠. ㈜두산은 자체사업으로 인쇄회로기판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 생산, 계열사 등에 IT인프라 구축 및 운영을 담당하는 IT솔루션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연간 매출액이 1조원 남짓 됩니다. 그룹의 총 매출은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19조원 안팎인데, 대부분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등의 자회사들이 만들어낸 실적입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사업이 핵심인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그룹의 과거와 현재이지만 미래까지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는 어렵죠. 원자력발전사업이 최근 1~2년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만, 세계 원자력발전시장은 축소되고 있거든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2023년 4월19일 현재 전세계 32개국에서 436기의 원자로를 운영 중에 있습니다. 국가별 원자로 수는 미국이 93기로 가장 많고 프랑스 56기, 중국 56기, 러시아 37기, 일본 33기, 한국 25기 순입니다. 국토의 면적에 비해 한국의 순위가 매우 높습니다.
2018년 세계 원자로 수는 449기에 달했습니다. 지나 2022년을 제외하고 매년 감소해 지난해 4월 436기가 된 겁니다. 폐쇄되는 원자로 수만큼 새로 가동되는 원자로가 늘지 않고 있죠. 2023년 4월 현재 건설 중인 원자로는 18개국에서 56기입니다. 중국이 19기, 인도가 9기, 튀르키예와 러시아가 각 4기, 한국이 3기입니다. 원전 발전 비중이 높은 미국과 프랑스는 각 1기의 원자로를 건설 중입니다.
독일(33기), 이탈리아(4기), 리투아니아(2기), 카자흐스탄(1기)은 운영하던 원전을 전부 폐쇄하고 건설 중인 원전도 없습니다. 스폐인은 2018년 장기간 가동 중인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별도의 계속운전 시행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죠. 2020년에는 에너지 및 기후정책을 통해 2035년까지 총 7기의 원전 폐지를 명시했는데, 그렇게 되면 스페인은 독일 등과 함께 탈원전국이 됩니다. 스위스와 벨기에도 탈원전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은 나라들입니다.
원전 시장에 온통 빨간 불만 켜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과 일본이 원자력발전에 대한 지원정책을 수행하고 있고, 프랑스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발전 의존도를 기존 75%에서 2025년까지 50%로 축소하기로 했는데, 현 정부는 그 시기를 2025년에서 2035년으로 늘려 잡았죠. 지난해 3월 프랑스 의회는 원자력 발전비중 50% 감축 목표를 철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제1차 법안심의(first reading)에서 통과켰다고 하네요. 스웨덴은 우파연정이 정권을 잡은 이후 단계적 원전 폐지를 철회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답니다. 이렇게 유럽의 선진국들도 정권이 바뀌면 원전 정책이 바뀌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전 발전 비중의 축소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진행 중이고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죠. 원자력 발전 시장에 등락이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두산그룹의 미래를 맡기기에는 불안합니다.
두산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이라고 할만한 게 협동로봇을 만드는 두산로보틱스입니다. 지난해 10월 기업공개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가 된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시장에서 글로벌 4위 기업입니다. 글로벌 조사분석기관인 Markets and Markets에 따르면 협동로봇은 전체 로봇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지만 향후 성장성은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올해 예상 시장 규모가 16억달러인데 2030년에는 99억달러의 시장이 될 거랍니다. 대략 13조원 정도이니 엄청 큰 시장은 아닌데 유럽과 북미지역이 주요 시장이라고 합니다.
국내 협동로봇 회사로는 대기업인 두산로보틱스 외에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뉴로메카가 있습니다. 3회사 모두 매출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최근 5년간 영업이익이 흑자는 2022년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딱 한차례 달성했을 뿐입니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530억원의 매출에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죠.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상장당시 2만6000원을 공모가로 총 4212억원을 조달했는데요. 당시 공모가는 밴드의 상단이었습니다. 수요예측에서 인기가 높았기 때문인데, 이를 입증하듯 상장 당일 종가는 5만1800원까지 상승했고 지난해 12월에는 12만원을 넘어서기도 했죠.
그런데 지난해 상장 당시 공모가격 산출을 위해 평가를 받을 때 내놓았던 두산로보틱스의 매출 및 이익의 전망치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당시 두산로보틱스는 2026년 당기순이익을 942억원으로 전망하고 이걸 현재가치로 할인한 다음 주당순이익(891원)에 비교기업의 평균 PER를 적용해 주당 평가가액을 3만4136원으로 산출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정해진 희망 공모가액 밴드 상한이 2만6000원이었죠.
두산로보틱스는 2023년 매출을 670억원, 2024년 매출을 1172억원으로 예상했습니다. 2025년에는 2642억원, 2026년에는 4673억원으로 거의 폭발적인 매출증가를 전망했죠.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7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겠으나, 올해 37억원으로 영업흑자를 달성하고 2025년에는 544억원, 2026년에는 1137억원, 2027년에 2133억원으로 매년 거의 100%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죠.
하지만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이 530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실 192억원을 기록했죠. 상장일이 10월 5일로 연말까지는 불과 3개월 정도 남은 시점이었는데, 매출은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고, 영업손실은 예상보다 2배 이상 컸을 뿐 아니라 창사 이래 최대 규모였습니다.
지난해 10월 추정한 대로 올해 매출이 1172억원 근처라도 가고 영업흑자를 달성하려면 1분기부터 무언가 조짐이 있어야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매출은 109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에 비해 3억원 정도 증가하는데 그쳤고, 영업적자는 45억원에서 69억원으로 오히려 더 커졌습니다. 물론 1분기 실적만으로 연간 실적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두산로보틱스의 실적이 특정 분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계절성은 목격되지 않습니다.
두산로보틱스가 상장 당시에 장밋빛 전망을 근거로 공모가액을 산출했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장 후 실적이 전망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은 틀림없습니다. 만약 향후 실적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고 흑자달성의 시기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이 바뀌었다면 그룹의 수뇌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두산로보틱스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인수한 뒤 합병하게 되면, 합병 후 즉시 흑자 회사로 바뀌게 됩니다. 재무적으로도 매우 좋아지죠. 두산밥캣은 올해 상반기에 4억1905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두산에너빌리티의 최고 효자 자회사이거든요. 지난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조4600억원 수준인데, 두산밥캣의 영업이익이 1조원에 달했을 정도입니다.
두산로보틱스가 당장의 운영자금이나 투자자금이 없어서 두산밥캣과 합병을 추진하는 건 분명히 아닙니다. 두산로보틱스의 향후 투자계획은 약 300억원 정도가 잡혀 있는데 지난 3월말 현재 현금및현금성자산은 3000억원이 넘고, 금융상품을 포함하면 3700억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두산로보틱스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72억원의 적자입니다. 지난해 수준의 현금흐름 적자가 10년을 지속해도 3000억원이 되지 않죠.
두산그룹은 두산밥캣과 합병을 통해 두산로보틱스가 스마트머신 분야의 중간지주회사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스마트머신 분야를 키우는데는 장기적으로 활용 가능한 재원이 필요했을 테고, 그룹 내에서 그런 정도의 재원은 두산에너빌리티 또는 두산에너빌리티 안에 있는 두산밥캣 뿐입니다.
협동로봇 시장의 성장세를 감안하더라도 두산로보틱스의 자연 성장(?)으로는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먹거리를 기대하기 역부족이고, 두산로보틱스의 성장 전망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다면 그룹의 수뇌부는 스마트머신 분야를 활활 타오르게 할 땔감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과거 두산중공업, 현재의 두산에너빌리티가 늘 해왔던 역할이기도 하죠. 이번에도 어김없이 두산에너빌리티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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