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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밥캣은 지난 2021년 7월 1일 두산에너빌리티(구, 두산중공업)의 종속회사가 되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투자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한 뒤 두산중공업이 흡수합병하면서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하던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중공업의 소유가 되었죠. 두산인프라코어를 HD현대그룹으로 매각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습니다.
당시의 거래 구조는 올해 두산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의 분할합병과 꼭 닮아 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계열사 등의 지분을 두산에너빌리티에 직접 매각하지 않고, 인적분할한 뒤 합병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나, 인적분할되는 핵심 자산이 두산밥캣인 것까지 말이죠. 그렇습니다. 두산그룹은 계열사간 분할합병으로 두산에너빌리티 종속회사가 된 두산밥캣을 올해 또 한번의 계열사간 분할합병으로 두산로보틱스의 종속회사로 만들 생각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매각을 앞둔 처지였습니다. 두산그룹과 HD현대그룹은 두산밥캣과 몇 개 계열사 주식을 빼고 거래하기로 합의했죠. 두산인프라는 두산밥캣 지분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산인프라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두산밥캣 등의 자산을 직접 현금을 받고 매각하거나, 그 자산들을 묶어 회사를 만들어 파는 것이었죠. 결과적으로 인적분할 후 두산중공업이 신주를 발행해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두산밥캣 지분 등을 두산중공업이 아닌 제3자에게 매각했으면, 훨씬 비싼 값에 팔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산밥캣은 매출과 이익이 성장 중이었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유일하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는 건설기계 회사였거든요. 그런 회사의 경영권 지분에는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게 마련입니다.
두산밥캣 지분 등을 현금 매각했다면 두산인프라코어에는 막대한 현금이 생겼겠죠. 그 만큼 더 비싸게 팔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두산인프라코어는 알짜 자산인 두산밥캣 등의 지분을 인적분할한 뒤에 팔렸고, 주주들은 인적분할 회사의 주식을 두산중공업 주식으로 교환받아야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약 65%에 달하는 두산인프라코어 일반 주주들에게 선택권이 있었을까요?
두산인프라코어는 약 0.69의 비율로 분할되었고, 분할신설회사는 1주당 본질가치를 7803원으로평가받아 약 0.68의 비율로 두산중공업과 합병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주주는 1주당 두산중공업 주식 약 0.47주(0.69×0.68)를 받게 된 셈입니다.
분할신설회사의 자산총액은 장부가액 기준으로 약 2조1200억원이었는데, 지분율 51.05%에 달하는 두산밥캣 주식이 1조5215억원으로 70%가 넘었습니다. D20 Capital, Doosan Infracore North America, 두산큐벡스, 디비씨 등 다른 종속기업과 관계기업 주식의 장부가액은 2000억원이 채 되지 않았죠. 약 3325억원은 현금(2274억원), 토지 등 유형자산(1242억원) 등 다른 자산이 분할대상에 포함되었지만 핵심은 역시 두산밥캣이었습니다.
분할신설회사의 주식 수는 1억9653만주였습니다. 1주당 7803원으로 평가되었으니, 두산중공업이 신주로 교부한 합병대가는 1조5335억원입니다. 신설회사에는 약 1조원의 차입금이 있었으니 전체 자산의 가치는 대략 2조5000억원 정도로 평가된 셈이었죠.
두산밥캣 지분은 자산가치로는 1조5215억원(장부가액)으로 평가되었고, 수익가치로는 주가를 반영해 1조8069억원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 대 1.5로 가중평균하는 본질가치로 따지자면 두산중공업은 두산밥캣을 약 1조7000억원에 인수한 꼴입니다. 당시 두산밥캣 시가총액의 절반이 안되는 수준이었습니다.
두산그룹이 처음 계획한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의 분할합병은 2021년 두산인프라코어의 분할합병의 재판입니다. 거래 구조가 같을 뿐만 아니라 핵심자산인 두산밥캣 지분 값의 평가까지도 거의 같습니다. 분할신설회사가 가진 주식 값으로만 평가했죠. 조금 다른 게 있다면 2021년에는 두산밥캣 지분의 자산가치를 장부가액으로만 인정했다면, 올해에는 시장가격을 자산가치로 평가했다는 정도입니다.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두산밥캣을 넘겨받은 그 방식 그대로, 달라진 주가만 반영해서 두산로보틱스에 넘기려고 했던 겁니다. 금융감독원의 지속적인 수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분할합병 방식을 고수하고, 핵심자산인 두산밥캣 지분을 주가로만 평가하려는 이유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던 겁니다.
두산그룹은 지난 21일 정정공시를 통해 두산밥캣 주식의 주당가치를 43.7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7만2729원으로 평가했습니다. 그 결과 두산로보틱스와 합병비율이 0.1275에서 0.3740으로 크게 개선되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두산에너빌리티 1주당 받게 되는 두산로보틱스 주식(분할합병비율)은 0.03주에서 0.04주가 되어서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분할합병비율은 분할비율과 합병비율의 곱으로 결정되는데, 분할비율을 장부상 순자산 기준에서 기준주가 기준으로 바꾸면서 0.247에서 0.115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에게 불리해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두산밥캣은 두산인프라코어에게 단지 주식이 아니었죠. 두산밥캣의 글로벌 건설기계사업은 두산인프라코어에게도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두산밥캣 지분은 단지 주식이 아니라 ‘사업’이며 ‘기업’이었던 것이죠.
두산에너빌리티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두산밥캣은 가장 중요한 연결 종속회사입니다. 종속회사라는 것은 두산밥캣의 중요한 경영의사결정을 두산에너빌리티가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죠.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밥캣 지분을 소유했다기 보다는 두산밥캣을 경영해 왔던 셈이죠.
두산중공업, 지금의 두산에너빌리티에 인수된 후 두산밥캣의 실적은 매년 좋아졌습니다. 2020년 기준 약 4조3000억원(연결 기준)이었던 매출액은 지난해 9조7589억원으로 10조원에 육박했습니다. 4000억원 수준이던 영업이익은 2년 연속 1조원을 넘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연결 기준)의 지난해 매출은 약 17조6000억원, 두산밥캣의 비중은 50%가 넘습니다. 영업이익은 무려 95%에 이릅니다. 물론 내부거래를 제거하면 비중이 조금 낮아질 수 있지만 두산에너빌리티 연결실체에서 두산밥캣이 막대한 비중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두산에너빌리티 연결실체의 현금흐름은 대부분 두산밥캣에서 나옵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개별 재무제표와 연결 재무제표의 현금흐름은 매우 큰 차이가 나는데, 두산밥캣이 아니면 그 차이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막대한 현금이 필요한 두산에너빌리티에게 두산밥캣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두산밥캣 지분을 인적분할하면 두산에너빌리트는 두산밥캣이라는 캐시카우를 잃습니다. 반대급부로 현금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두산 외의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두산밥캣 지분 값으로 두산로보틱스 주주가 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영진은 정말 회사의 미래를 위해 분할합병을 결정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일반주주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결정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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