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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26일 두산로보틱스 증권신고서에 대해 두 번째 정정요구를 하면서 그 배경에 대한 설명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보완할 것을 요구했는데 첫째는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분할해 두산로보틱스에 합병하는 구조개편에 대해 회사가 논의한 시점, 검토한 내역, 그간의 진행과정, 거래시점을 결정한 경위, 구체적인 시너지 효과 등을 기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왜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티에서 떼서 두산로보틱스에 붙이려고 하는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포괄적 주식교환 및 이전 거래는 양사에서 어떤 논의를 거쳤는가, 두산로보틱스 뿐 아니라 두산에너빌리티 이사회에서 이 거래에 대해 어떤 의견이 오고 갔는가, 그리고 왜 지금인가 등 거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었죠.
두 번째 정정요구를 받은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하기 위한 포괄적 주식교환 및 이전 계약을 해제했습니다. ‘주주 및 시장의 부정적 의견이 강한 상황으로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에 따른 승인절차 등 포괄적 주식교환의 종결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두산로보틱스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계약 해제 이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분할된 신설법인을 흡수합병해 두산밥캣의 상장을 유지한 채 자회사로 두는 것까지는 진행합니다. 100% 자회사로 만드는 건 언제든지 다시 추진할 수 있죠. 목적지까지 가지는 못해도 갈 수 있는 데 까지는 가겠다는 의중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두산그룹은 양사의 시너지 방안을 검토한 뒤 시장과의 소통 및 제도개선 내용에 따라 향후 구조개편을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두산로보틱스는 아직 제대로 된 실적이 나지 않는 회사입니다. 두산그룹 내 최고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현금을 들이지 않는 분할합병 방식으로 자회사로 둘 수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격이겠죠. 하지만 시장에서 궁금한 것은 이 거래가 두산에너빌리티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두산에너빌리티 이사회의 결정 과정에 어떤 논의들이 오갔는지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밝힌 두산밥캣 지분 등의 분할 목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차입금 감소 등 재무건전성을 강화하고 친환경 중심 에너지사업의 역량 집중과 경영 효율성을 증대하여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제고한다는 것입니다. 즉 두산밥캣을 떼내면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에너지사업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어서 기업가치가 올라간다고 보는 것이죠.
두산밥캣 지분은 원치 않는 취득이었다고 합니다. 2021년 두산인프라코어 매각대상에서 제외되어 당시 두산인프라코어 모회사였던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이 떠안을 수 밖에 없었던 비영업자산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두산밥캣을 떼내면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밥캣 배당에서 얻던 수익보다 높은 투자가치 창출이 가능하고, 주주들도 두산에너빌리티 주식과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모두 보유할 수 있고, 두사밥캣과 시너지로 두산로보틱스 기업가치가 높아질 테니 더 좋다는 겁니다.
그런데요. 과거 두산인프라코어가 두산밥캣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전신인 두산중공업이 재정적으로 또한 신용으로 지원을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군인공제회 등 재무적 투자자들과 함꼐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해 두산인프라코어로 만든 것도 두산중공업이었고, 대규모 차입금을 동원해 밥캣을 인수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도 두산중공업이었죠.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 사이에는 직접적인 매출∙매입 거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올해 상반기 두산에너빌리티의 두산밥캣향 매출이 369억원 정도지요. 하지만 종속기업 중 두산에너빌리티의 베트남 자회사를 빼면 가장 많습니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력 발전설비, 해수담수화 플랜트 등을 제작 및 시공하는 전문기업이죠. 건설기계 전문업체인 두산밥캣이 두산에너빌리티가 아니라 아직 제대로 매출이 발생하지도 않는 협동로봇업체인 두산로보틱스와 더 시너지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두산밥캣을 분할함으로써 차입금 감소 등 재무건전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은 어불성설입니다. 두산밥캣 지분(46.11%)에 대해 두산로보틱스가 정정한 평가액은 주당 7만2729원으로 계산해 3조3584억원입니다.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평가받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 가격으로 지분을 매각하기만 해도 관련 차입금 약 7000억원을 갚고 2조 5000억원 이상의 현금이 남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친환경 에너지사업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더할 나위없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재원이죠. 하지만 두산밥캣 지분과 관련 차입금을 인적분할하면 두산에너빌리티의 순자산은 2조 5000억원 이상 줄어들게 됩니다.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됩니다.
결국 두산밥캣 지분의 직접 매각이 아닌 인적분할을 선택했다는 건 회사를 위한 결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주를 위한 결정이어야 할텐데요. 그 주주가 최대주주인 ㈜두산일까요, 소액 주주들 전부를 포함한 주주일반일까요?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서 두산로보틱스에 붙였을 때가 그렇지 안을 때와 비교해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모두의 기업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확실한 근거를 과연 갖고 있을까요?
두산밥캣 분할합병과 관련해 두산에너빌리티에서는 7월 11일, 9월 25일, 10월 21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놀랍게도 세 차례 이사회에서 반대 의사를 밝힌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회사가 공시한 이사록에는 각 이사들이 어떤 의견을 주고 받았는지 관련 발언을 전혀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사들이 어떤 논리로 찬성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박지원 회장이 대표이사(CEO)를 맡고 있고 동시에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현재 ㈜두산의 부회장이기도 하죠. 정연인 부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전무 출신이고, 박상현 사장은 두산밥캣 대표이사 출신입니다. 사외이사 중 이준호씨와 최태현씨는 법무법인 김앤장의 변호사와 고문이고, 이은형 사외이사는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이은항 사외이사는 올해 3월 신규 선임된 세무사입니다. 최태현, 이은형, 이은항씨는 다른 회사에서도 사외이사를 하고 있더군요.
이사회의 독립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이사회의장이 대표이사와 분리되어 있는지입니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이 최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지도 중요한 지표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대주주인 ㈜두산의 부회장이자 오너 일가인 박지원 회장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이사회가 회사와 일반주주의 이익에 충실할 것이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일반주주나 회사가 아니라 최대주주가 아니라 최대주주와 오너 일가에게 충성할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받을 만한 이사회 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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