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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현금성자산은 100조원(연결기준)에 이릅니다. 자산이나 매출의 규모도 그렇지만 현금 보유면에서도 국내 모든 상장사를 압도합니다. 실제로 지난해말 기준 현금성자산(현금및예금과 금융상품 포함) 보유 상위 10개 기업(금융업종 제외)은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현대자동차, SK, 포스코홀딩스, 기아, SK이노베이션, HMM, LG화학, SK하이닉스이고, 이들 기업이 보유한 총 현금성자산이 230조원입니다. 삼성전자가 그 중 40%를 갖고 있죠.
그런 삼성전자가 4만원대까지 추락한 주가부양을 위해 10조원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습니다. 10조원이라니…… 삼성전자가 아니라면 국내 어느 상장사에서도 나올 수 없는 선언일 것입니다. 2위인 현대자동차가 10조원을 자사주매입에 쓰려면, 현금성자산 40%를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분은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듣고 ‘10조원의 플렉스!’라고 감탄하시더군요.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삼성전자는 지난해 충격적인 어닝쇼크를 겪었고, 올들어 다소 개선된 실적을 발표하고 있지만, 시장의 기대를 밑돌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현금흐름에 큰 구멍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여전히 10조원의 플렉스를 과시할만큼 현금사정에 여유가 있는 걸까요?
100조원의 현금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국내외 종속회사 모두가 보유한 금액의 합계입니다. 자사주 매입을 엄연히 별개 법인인 종속회사 돈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삼성전자 개별실체만의 돈으로 해야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삼성전자 개별실체의 현금사정은 놀라울 정도로 좋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의 보유 현금성자산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30조원 안팎을 넘나들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3조원대, 지난해 6조원초로 떨어졌다가 올해 늘어나 9월말 현재 16조원대가 되었습니다. 과거 8년간 보여주었던 30조원의 절반 수준이고 12년 전인 2012년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삼성전자 개별실체의 매출은 지난해 100조원대로 떨어졌지만, 2021년 199조원, 2022년 211조를 기록했고 올해 9월까지 160조원을 달성했으니 연간으로는 200조원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금성자산은 연간 매출액이 120조원에서 140조원이었던 12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 있죠.
16조원의 현금성자산은 삼성전자에게 10조원의 플렉스를 보여줄 만큼 풍부하거나 적정한 수준일까요? 업종이나 기업의 경영환경에 따라 적정한 현금의 수준은 다를 테니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 중에서 현금이 많은 기업으로 꼽히지는 않습니다.
통상 기업은 3개월 정도의 운영자금을 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운영자금을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의 합계로 보았을 때 삼성전자의 연간 운영자금은 약 180조원에 달하고, 3개월치면 45조원 정도가 됩니다. 또 재무학에서는 1회전 운전자본이라고 기업의 적정 현금보유 수준을 추정하는 식이 있는데, 일평균 매출액×현금회수기간(매출채권회수기간+재고자산보유기간-매입채무지급기간)으로 구합니다. 삼성전자의 연 매출액을 200조원이라고 보았을 때, 일평균 매출액은 5556억원이고, 매출채권회수기간은 약 50.7일, 재고자산보유기간은 약 60.6일, 매입채무지급기간은 약 17.7일 정도로 계산이 됩니다. 이를 식에 대입해 보면 적정한 보유현금의 수준은 약 50조원으로 추정이 됩니다.
3개월 정도의 운영자금이니, 1회전 운전자본이니 하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지만, 기준점의 역할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을텐데요. 아무리 좋게 보아도 과거 30조원의 현금은 적정 수준에 비벼볼 수 있을 지 몰라도, 2022년 이후 보유 현금은 삼성전자에게 턱없이 부족합니다. 삼성전자는 적정 수준에 턱없이 모자란 16조원의 60%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장은 현금이 좀 모자라더라도 열심히 벌어서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자사주 매입에 10조원을 털어 넣어도 문제가 없겠죠. 10조원이 1년간 쓸 돈이니, 영업활동에서 벌어서 꼭 필요한 투자와 배당 등을 하고도 10조원이 남으면 삼성전자의 보유 현금은 다시 16조원이 될테고, 20조원이 남으면 26조원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앞으로 1년 동안 삼성전자의 돈벌이에 정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2022년 이후 지금까지 보여주는 모습으로는 자사주 매입도 하면서 보유 현금을 적정한 수준으로 늘리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시나리오입니다.

삼성전자는 2021~2022년 40조원 중반 또는 50조원 초의 현금을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34조원을 벌어들이는데 그쳤죠. 그런데 종속회사 등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수입을 제외하면 실제 영업에서 벌어들인 건 채 5조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는 연간 40조원 이상을 자본적 지출(유형자산 및 무형자산 취득)에 쓰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벌어들인 돈이 5조원도 되지 않았으니 턱도 없이 부족했죠. 게다가 2022년에서 넘어온 현금은 3조9000억원밖에 되지 않았으니, 보유하고 있던 현금에다 벌어들인 것까지 전부 쏟아 부어도 연간 투자액의 25%도 채우지 못할 형편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례적인 결정을 하게 되었죠. 국내 종속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2조원을 긴급 차입하고, 종속회사 등으로부터의 29조원의 배당금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배당금은 해외 종속회사로부터 거두어 들였습니다. 삼성전자가 배당금과 순차입으로 확보한 현금은 총 54조5768억원에 이릅니다. 그렇게 겨우 유형 및 무형자산 취득에 47조원, 주주에게 지급할 배당금 약 9조8000억원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9월까지 약 41조원의 현금을 벌었습니다. 2022년 이전보다는 못하지만 지난해보다는 훨씬 나아졌죠. 하지만 그 안에는 약 9조4000억원의 배당금 수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29조원에서 크게 줄었죠. 하지만 예년 평균(2018~2022년 평균 3조1292억원)의 3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여전히 종속회사로부터 배당금으로 부족한 현금을 채우고 있다는 얘기죠.
올해 역시 종속회사 등으로부터 들어온 배당금이 없었다면, 삼성전자는 자본적지출과 주주에게 지급할 배당금을 충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배당수입을 제외하고 벌어들인 현금은 31조원, 자본적지출과 배당금 지급에 들어간 돈은 35조원이니 말이죠. 삼성전자의 보유 현금이 16조원 정도로 그나마 늘어난 것은 종속회사 등이 지급한 9조4000억원의 배당금과 매출채권을 우리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차입한 4조원 덕분입니다.
4분기에는 배당금 수입이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앞선 분기 평균 수준에서 현금흐름이 발생한다면, 올해 연간 삼성전자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약 50조원에 턱걸이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정도로는 삼성전자의 투자와 배당을 충당하는데도 부족합니다. 연내 시설투자 예상금액이 반도체사업부문만 47조9000억원이라고 하거든요. 추가 차입이 없다면 보유 현금이 지금보다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부족한 현금은 무차입기업 삼성전자를 순차입기업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2020년말만 해도 삼성전자는 현금성자산이 차입금보다 무려 17조원 많았지만, 올해 9월말 현재 차입금이 현금성자산보다 16조원 많습니다. 삼성전자의 차입금은 약 32조7000억원인데, 대부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빌린 22조원과 우리은행에서 빌린 9조5000억원이 차지하고, 둘다 향후 1년 이내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입니다.
반도체 부문의 떨어진 경쟁력을 생각하면, 삼성전자의 내년 시설투자 규모가 올해보다 줄어든다고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자기주식 매입한다고 설마 배당금을 줄이지도 않겠죠. 게다가 31조원의 차입금이 상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은행 차입금이야 만기를 연장한다고 치더라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비린 차입금은 형님된 도리로 갚아주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삼성전자 연결실체에서 SDC사업부문을 맡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의 매출도 줄어들고 있고, 스마트폰 패널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하락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업체들의 추격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작년 2조4000억원이던 시설투자 규모를 올해 5조6000억원으로 크게 늘렸습니다. 한푼이 아쉬운 상황일텐데, 형님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폐를 끼치는 건 좀 그렇잖아요.

삼성전자 개별실체가 내년 매출이 과거 사상 최고이던 2022년의 218억원을 넘어서고, 그로 인해 발생한 현금흐름이 역내 최고인 51조원을 넘어 60조원을 기록한다고 가정해 보죠. 거기에 올해와 비슷한 48조원의 시설투자와 9조8000억원의 배당금 지급을 한다면 그 외 다른 지출(자회사 출자 등)을 전혀 하지 않아도 현금 보유량은 2~3조원밖에 늘지 않습니다.
그런데 10조원을 자기주식 매입에 사용한다면, 되레 보유 현금은 크게 줄어들게 되죠. 당연히 삼성디스플레이와 우리은행 차입금을 상환할 자금은 없습니다. 연장을 하거나 다른 채무를 동원해 차환해야겠죠. 삼성전자는 여전히 보유 현금이 적정 수준을 크게 밑도는 기업으로 남을 것이고 무차입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되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질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도 10조원의 플렉스를 보였다면 정말이지 담대한(?) 결정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혹시 다시 한번 종속회사로부터 대규모 배당과 차입을 계획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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