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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차전지 회사들이 실적 부진에 빠지자 ‘전기차 캐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전기차 수요가 일시적으로 줄었고, 그로 인해 2차전지 회사의 매출이 줄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국내 2차전지 회사들의 공장 가동률이 하락했고, 전기차 캐즘이라는 용어는 1년 내내 2차전지업계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영국 컨설팅업체 로모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제외) 판매량은1710만대로 전년 대비 25% 늘었다고 합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도 지난해 1~11월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이 약 1559만대로 전년 대비 25.9%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글로벌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의 지난해 전기차 판매 실적이 개선된 것으로 발표되고 있습니다. 국내 메이커인 현대차와 기아 역시 2차전지가 들어가는 친환경차 매출액이 전년보다 증가했습니다.
◇ 전기차 캐즘은 허구였나?
지난달 세계 최대 2차전지 업체인 중국의 CATL은 2024년 연간 매출액이 3560억 ~ 366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11.20% ~ 8.71%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CATL의 지난해 3분기까지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습니다. 일본의 2차전지 업체인 파나소닉의 2차전지 매출액은 3~12월간 9.0%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6% 증가했습니다. 양극재 등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배터리 가격도 하락해 매출이 줄었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좋아졌습니다.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의 실적은 충격적입니다. 매출은 해외 경쟁사들에 비해 더 감소했고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전년보다 무려 70% 이상 감소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SK온의 실적은 참혹한 수준입니다. 급히 추진된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합병효과를 제외할 경우 매출액은 6조2666억원으로 전년 12조8000억원에서 반 토막이 났고 영업손실은 1조원을 넘겼습니다. 수주잔고가 400조원에 이른다며 하반기에는 영업이익이 손익분기를 달성할 것이라고 했던 호언장담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 SK온의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공장 절반이 멈추었다.
SK온의 생산능력은 헝가리 3공장이 부분가동을 시작하면서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연간 76.5GWh로 늘었습니다. 합작법인인 중국 창저우공장과 후이저후 공장의 생산능력을 뺀 수치입니다. 여기에 포드와 합작한 미국 생산법인 블루오벌SK(BlueOval SK, LLC) 공장들이 본격 가동되면 생산능력은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공장가동률은 연초부터 뚝 떨어졌고 당연히 생산량도 급감했습니다. 처음엔 그러려니 할 수 있었습니다. 전기차 캐즘으로 출하량이 감소할 것이 예상되었으니 공장을 덜 돌리고 재고를 소진하는데 주력한다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상반기 매출이 3조2000억원대로, 전년 동기의 7조원에서 급감했지만 전기차 캐즘과 원자재값 하락의 영향 탓으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반기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내외에 산재한 SK온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1분기 69.5%, 상반기 53%, 3분기까지 46.2%로 계속 하락했습니다. 2023년 3분기까지 약 18만셀(cell)에 달했던 생산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9만셀로 줄었습니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전기차 판매가 전년보다 늘어났다는 발표를 하고 있었고, 세계 최대 2차전지 업체인 CATL은 창사이래 최대 분기 순이익 달성 소식을 전했습니다.
전기차 캐즘은 연초 잠깐 나타났다 이내 사라졌지만, SK온의 배터리 매출은 1분기 1조6800억원, 2분기 1조5500억원, 3분기 1조4300억원으로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전기차 캐즘은 더 이상 핑계가 될 수 없었고, CATL이나 파나소닉처럼 매출액 감소의 이유를 원재료가격 하락에서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SK온의 판매량 자체가 줄었던 것이니까요.

매출이 살아나지 않으니 공장을 더 돌릴 수 없었고, 배터리 생산을 위한 원재료 매입액도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2023년 원재료 매입액은 약 8조2000억원에 달했는데요. 지난해에는 3분기까지 2조5000억원이 되지 않았고, 1분기 약 1조원, 2분기 약 8000억원, 3분기 약 6400억원으로 계속 줄었습니다. 구매, 생산, 판매 등 일련의 영업활동에서 SK온은 전년의 반쪽이 되었던 셈입니다.
◇ 현금 순유출이 줄어든 건 재고조정 때문이었다
소득이 전혀 없었던 거은 아닙니다. 연초 언급했던 재고조정이 실제로 이루어졌죠. 2023년말 약 3조6700억원(원가 기준)에 달했던 재고는 지난해 9월말 약 2조5300억원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완제품 재고가 약 5700억원, 원재료 재고가 약 4800억원어치 줄었습니다. 매출이 크게 줄었으니 외상매출도 줄었을테고, 기존의 외상매출에서는 회수가 이루어져 총 매출채권도 전년말 1조2500억원에서 7100억원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전년에 인식했던 재고자산평가손실 중 1140억원어치가 환입된 것도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재고자산과 매출채권 감소는 SK온의 현금사정 악화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해 3분기까지 SK온의 영업손실은 9787억원에 달했는데,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3787억원의 순유출에 그쳤습니다. 전년 동기의 1조5358억원에 비해 순유출이 크게 줄었죠. 재고조정과 매출채권 회수는 연말까지 지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니 현금유출은 더 줄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기적처럼 순유입을 기록할 수도 있겠죠. 만약 재고자산 감소와 매출채권 순회수가 없었다면, 영업활동으로 빠져나간 현금은 3분기까지 2조원이 넘었을 겁니다. SK온이 지난해 9월말까지 순차입과 유상증자로 외부조달한 현금이 6조6000억원이었는데, 그 규모가 훨씬 커졌을 겁니다.
◇ 더욱 커보이는 차입금 20조원… 설비투자 괜히 서둘렀나?
SK온이 2021년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될 때 현금 3조원가량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9월말까지 영업활동으로 나간 돈이 약 4조9000억원입니다. 설비투자에는 23조3000억원을 썼습니다. 관계기업 지분을 매입하는데도 약 1조5700억원을 지출했습니다. 그렇게 약 30조원이 회사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SK온은 빠져나가는 현금을 차입과 유상증자로 다시 채웠습니다. 설비투자가 끝나고 매출이 늘면 흑자달성이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로 지난해 9월까지 순차입으로 15조6000억원, 유상증자로 12조2000억원을 조달했습니다. 현금은 지난해 9월말 현재 약 2조1000억원 정도 남았습니다.

지난해 매출이 반 토막이 되고 보니, 무게감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무려 20조원에 달하는 차입금입니다. 매출이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면, 벌어서 갚을 날이 요원합니다. 연간 6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자를 내는 일도 버거워 보입니다.
SK온이 SK이노베이션의 일부였던 2011년 이후 배터리 설비투자에 투자한 자금은 지난해 9월말까지 28조원이 넘습니다. 아직 약 10조원 정도의 투자계획이 남아 있습니다. 만들기만 하면 잘 팔릴 줄 알았던 배터리 매출이 반토막이 되니 돌리지도 못할 공장을 왜 그렇게 많이 세웠나 싶습니다.
지난해 해외 경쟁사들의 매출감소가 소폭에 그치고 이익은 거꾸로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국내 배터리 3인방은 현타가 왔을 것 같습니다. 국내 배터리 품질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며 시장경쟁력을 과대평가해 왔던 것은 아닐까요? 특히 SK온은 배터리 시장에서 자신들의 판매능력을 과신하고 설비투자를 너무 서둘렀던 것은 아닐까요?
SK온은 결국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지난해 절반에 못 미치는 3조5000억원으로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포드와 합작한 블루오벌SK의 켄터키 2공장이 2026년 준공 예정이었는데, 투자계획이 수정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켄터키 1공장은 올해 2분기부터 순차적으로 가동될 예정인데 가동시점과 생산계획이 손질되었을 수 있습니다. 올해 예정됐던 블루오벌SK의 테네시공장의 상업가동은 2026년으로 공식 연기되었습니다.
◇ IPO 준비해야 하는 SK온, 특단의 대책은?
투자를 줄이면 빚이 늘어나는 걸 다소 늦출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올해 매출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지만, 실제로 판매가 늘어날지,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매우 큰 폭으로 늘어나지 않으면 또 다시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고, 설비투자와 차입금의 이자를 내기 위해 또 다시 증자를 하거나 차입을 늘려야 할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SK온 보통주와 우선주를 인수한 재무적 투자자들과 2026년 정해진 주가 이상으로 기업공개(Qualified IPO)를 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지키지 못하면 재무적 투자자들이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지분까지 함께 팔 수 있는 권리(드래그얼롱)가 발동되고, 최악의 경우 보유 지분을 매입해 달라는 풋옵션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SK온에게는 설비투자로 인한 현금소요를 최소화하는 것과 함께 기업공개의 전제조건인 흑자달성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지난해말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합병과 함께 SK온이 취한 놀라운 조치가 있습니다. 바로 포드와 합작공장인 생산법인 블루오벌SK의 유상감자입니다. 공장건설을 위해 투자한 자본을 포드와 SK온의 미국 자회사이자 블루오벌SK의 모회사인 SK배터리 아메리카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이죠. 블루오벌에 자금이 남아돌아서는 절대로 아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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