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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의 배터리업체 SK온의 주식가치는 얼마일까? 가장 최근 나온 보도로는 2024년 11월 32조 2000억원입니다. 당시 SK온은 미래에셋증권과 SK이노베이션의 주가수익스왑(PRS) 방식으로 5000억원의 신주를 발행했고, 이를 근거로 매겨진 기업가치입니다. 신주 발행가격인 5만 5459원을 기존의 보통주와 우선주에 모두 적용했을 때 나오는 값입니다. 지난해 10월에는 1조원의 유상증자를 하면서 기업가치가 28조원으로 평가되었죠. 역시 신주발행가인 5만 5459원을 발행주식 수에 곱해 나온 값입니다.


SK온의 신주발행은 기업공개 이전에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받는 Pre-IPO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신주가 주당 5만 5459원에 발행되었다는 건 시장에서 SK온의 기업가치를 지난해 11월 32조 2000억원, 지난해 10월에는 28조원으로 확인받았다는 근거가 됩니다. 32조 3000억원은 지난해 11월 시점에서 시장에서 인정받은 기업가치가 되는 셈이죠.



지난해 7월 SK온은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과 합병을 결의했습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합병기일은 11월 1일, SK엔텀과 합병기일은 올해 2월 1일이었죠. 비상장주식인 SK온의 주식가치는 미래 현금흐름 할인법에 의해 평가되었고, 그 평가액이 5만 5459원이었습니다. 10월과 11월의 신주 발행가액은 이때 평가액을 쓴 셈입니다. 기업가치가 1조 4000억원이라는 SK엔텀을 지난달 합병했으니, SK온의 주당가치가 여전히 5만 5459원이라면, 주식가치는 33조 6000억원이 되었겠네요.


지난해 11월 유상증자 때 언론 보도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합병이 완료되기도 전에 이미 기업가치에 반영되었다’, ‘PRS는 주가가 오를 것으로 전망할 때 사용하는 투자방식이고, SK온의 미래 성장과 기업 가치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PRS 방식을 실행한 것’이라고요. 그런데 이것은 SK그룹의 입장을 언론이 전달한 것이지 객관적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PRS 방식의 주체는 통상 증권사와 대주주인데, 대주주가 주가상승을 확신하고 자금도 충분하다면 보통주를 직접 취득하지 증권사에 높은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 PRS를 활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PRS는 대주주에게 증자자금을 댈 여유가 없거나, 외부 투자자 유치가 여의치 않을 때 주로 쓰이는 방식입니다. 외부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가 오르거나 내리거나에 관계없이 사실상 고리의 이자와 마찬가지인 수수료를 받고 자금을 빌려주는 셈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적습니다. 형식은 파생거래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식담보대출과 비슷한 게 PRS입니다.


PRS계약을 택한 것은 오히려 유상증자 가격인 5만 5459원에 대해 의심이 갖게 만듭니다. 그 가격에는 흔쾌히 에쿼티 자금을 집행할 투자자를 찾기 어려워서 부득이 SK이노베이션이 미래에셋증권과 PRS계약을 맺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이죠.


지난해 7월 SK온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등과 합병결의를 할 때 SK이노베이션도 SK이엔에스와 합병을 결정했습니다.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의 시가총액은 약 11조 4000억원이었고, 순자산가액은 23조 7000억원이었습니다. 89.5% 지분을 보유한 SK온의 기업가치는 27조원으로 평가되었는데 말이죠.


SK온의 기업가치는 미래 현금흐름 할인법으로 평가를 했고, SK이노베이션은 시장가치법과 순자산가치법을 사용해 서로 평가방법이 다르니 어느 정도 아귀가 맞지 않아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만, 두 회사의 평가가치 차이는 심해도 너무 심합니다.



SK이노베이션의 연결기준 차입금은 대략 34조원이었고, 그 중 20조원 정도는 SK온과 그 자회사들의 것이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연결 부채비율은 160%였는데 SK온과 그 자회사들의 부채 때문이었고 SK이노베이션 자체의 부채비율은 15%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 지분 89.5%를 대부분 자기자본으로 취득했다는 뜻이고, 산술적으로만 보자면 27조원의 SK온 주식가치 대부분이 SK이노베이션의 주식가치로 반영되어야 논리가 맞습니다.


그런데 SK에너지, SK엔무브,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등 알짜 자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의 가치가 시장가치로는 SK온의 절반도 되지 않고, 순자산가치로 따져도 SK온의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 평가와 SK온의 기업가치 평가가 완전히 따로 놀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두 회사 각각의 가치평가는 자본시장법에 따른 규정이나 시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관행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어느 한쪽의 결과만을 놓고는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기 어렵죠.


SK온은 기업가치 평가를 삼일회계법인에 맡겼습니다. 사실 비상장사간 합병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외부평가기관의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합병비율의 객관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회계법인에 평가를 맡겼겠죠. 하지만 SK온은 외부평가기관의 평가의견서를 공시하지 않았습니다. 삼일회계법인이 SK온의 기업가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구체적인 내용, 즉 향후 매출액과 이익이 얼마나 발생하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의 현금흐름을 창출할 것인지, 그 현금흐름을 얼마나 할인해 현재가치를 구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SK온은 2022년과 2023년에도 대규모 유상증자를 했습니다. 2023년에는 1월에 보통주로 2조원, 3월에 우선주로 3757억원, 6월에는우선주로 1조 6000억원을 조달했습니다. 2022년에는 12월에 우선주로 8243억원을 증자했죠. 그런데 신주 발행가는 모두 5만 5000원으로 같았습니다. 지난해 7월 외부평가를 받은 주당가치, 10월과 11월 신주 발행가와 고작 459원의 차이가 날 뿐입니다. 사실상 2022년 이후 주당 가치가 모두 같았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건 상당히 어색합니다. SK온의 매출액(연결)은 2022년에 7조 6000원, 2023년에 12조 9000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3조 2000억원대로 급감했습니다. 영업이익은 2022년과 2023년 1조원 내외였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9420억원에 달했죠. 실적이 롤러코스트처럼 급변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 영업환경은 매우 비관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주발행가는 물론이고 외부평가기관이 평가한 가격까지 모두 같다는 걸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