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SK온은 올해 꼭 흑자전환에 성공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지난 2022~2023년 전환우선주를 발행해 약 2조 8000억원을 조달하면서 투자자들에게 2026년 상장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2차전지업체인 SK온이 특례상장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SK그룹의 중요한 계열사로서 코스닥시장이 아닌 코스피시장 입성을 노리고 있을 테니, 내년 상장을 위해서는 올해 흑자를 기록해야 합니다.
SK온의 약속은 이른바 적격상장(Qualified IPO)입니다. 쉽게 말해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가격 이상으로 기업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약속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주주간 계약과 부속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2026년말까지 적격상장이 완료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동반매도요구권(Drag-along) 행사가 가능해집니다. 최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양도할 경우 동일한 조건으로 투자자 보유 주식을 동반매각할 권리인 동반매도청구권(Tag-along)과 달리 동반매도요구권은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각하고자 할때 최대주주 보유 주식을 함께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전환상환우선주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주식과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SK온의 주식을 함께 팔 수 있다는 뜻입니다.

SK온이 2022년 이후 발행한 주식이 발행가 5만5000원(2024년에는 5만5459원)에 고정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적격상장을 약속한 투자자들에게 주당 5만5000원에 발행했으니, 그 이후 유상증자를 할 때도 더 낮은 가격으로 발행할 수는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가격은 내부수익률(IRR) 7.5% 이상을 충족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2년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를 기준으로 할 경우 대략 7만3450원 이상이 되어야 IRR 7.5%를 충족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과는 미국 달러화로 계약을 맺었을 테니 적격상장 주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SK온의 고의와 중과실로 적격상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투자자는 SK이노베이션에게 풋옵션(Put option)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때 행사가격이 공시되지 않았지만, 적격상장 조건은 IRR 7.5%와 같은 수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주 발행시기가 달라도 행사가격은 동일하다고 본다면, 2조 8000억원 규모의 우선주를 매입하는데 총 3조7400억원가량 들 것으로 보입니다.

SK온이 고의나 중과실로 상장에 실패할 수 있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죠. 결국 2026년에 주당 7만 4350원 이상으로 기업공개를 하거나, 투자자들이 동반매도요구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될 것입니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지분율 90%에 육박하는 SK이노베이션 보유 주식을 팔 수 있을까요? 이게 가능하다면 SK그룹은 SK온을 잃게 되겠지만, 수십 조원에 달하는 지분을 선뜻 살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매수자를 찾는다고 해도 적격상장에 실패한 SK온에 그 이상의 웃돈을 받고 팔기는 어렵겠죠. 투자자들에게 실익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동반매도요구 권리를 행사하려는 투자자들에게 SK이노베이션이 ‘팔 수 있으면 팔아 봐라’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경영권을 뺏기지는 않더라도 위협을 받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게 되고 그룹 전체에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 뻔합니다.
이 경우를 대비해 SK이노베이션은 투자자들이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투자자들의 지분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동반매도요구권을 무기로 SK이노베이션에게 콜옵션을 행사하도록 압박을 가할 수 있겠죠. 콜옵션 행사가격도 역시 IRR 7.5% 이상이라고 본다면, SK온이 적격상장에 실패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이 콜옵션을 행사해 전환우선주 전부를 매입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3조74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지는 셈입니다.

다행히도 투자자의 동반매도요구권은 1년씩 2차례 연장이 가능한 모양입니다. 2026년 상장에 실패하더라도 2028년까지는 기회가 남아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러려면 투자자들과 주주간 계약을 다시 맺어야 할텐데, 투자자들이 연장의 대가로 추가적인 요구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Pre-IPO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SK온의 기업공개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크다는 얘기는 언론을 통해서 전해진 바 있습니다. 지난해 7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을 SK온이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할 때도 투자자들이 기업공개에 도임이 되는 조치라는 걸 전제로 합병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의 합병은 올해 SK온의 흑자전환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2026년 기업공개 추진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승부수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역시 SK온 배터리사업 자체의 흑자전환이라고 할 수 있죠.
돌아가는 상황이 SK온에게 썩 우호적이지는 않습니다. 2차전지 업계가 지난해 부진에서 벗어나 실적이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은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펴고 있고, 2차전지 업체에 대한 보조금을 감축하거나 아예 없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마치 전 세계를 향한 것 같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수 있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하를 늦출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전기차 업계와 2차 전지 업계에는 모두 악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SK온의 기업공개가 2026년을 넘어 2027년 이후로 늦어지면 또 하나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해 보통주 유상증자를 하면서 맺은 주가수익스왑계약(PRS)의 정산입니다. PRS계약의 만기는 각각 2027년 10월과 11월인데, 이때까지 상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지 못한 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정산일에 SK이노베이션이 되사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발행가 기준으로 1조 5000억원 규모이고,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PRS 수수료는 별도입니다.
다행인 것은 SK온의 설비투자가 올해를 기점으로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죠. 포드와 합작법인인 블루오벌SK가 미국 에너지부와 96억 달러(원화 약 14조원 상당)의 ATVM 대출계약을 맺고, 이를 계기로 유상감자를 실시해 SK온이 투자자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는 것도, 남은 설비투자를 ATVM 대출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제작하는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DRCR(주)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