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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입인수(LBO, Leveraged Buyout)와 관련해 잘 알려진 두개의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 2001년 재미교포 실업가 김춘환씨가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 중이던 건설사 신한을 에스앤드케이월드코리아라는 자본금 3억원짜리 장부상회사(SPC)를 설립해 인수했습니다.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양종금에서 350억원, 한미은행에서 320억원 등 총 670억원을 차입해 260억원은 신주인수대금으로 사용했고, 382억원은 채권단이 보유한 기존 주식과 정리채권을 인수하는데 썼습니다. 김준환씨는 동양종금에서 자금을 차입하면서 신한이 소유한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했고, 한미은행에는 신한 소유의 정기예금 채권에 근질권을 설정해 주었습니다. 2006년 대법원은 김춘환씨가 신한에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신한의 재산을 담보로 제공한 것은 신한에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것으로 인정해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최대주주인 에스앤드케이월드코리아는 차입금 상환을 위해 보유주식과 정리채권 등을 담보로 신한에게서 연리 9~11%로 총 410억원을 대여받기도 했습니다. 김춘환씨가 대표이사에 취임하고 1년 만에 신한은 76억원의 흑자로 돌아섰고 부채비율이 100% 아래로 떨어지는 등 수익성과 재무구조가 개선되었죠. 하지만 2008년부터 이루어진 장기간의 분식회계가 발각되고 에스앤드월드코리아의 주주인 김춘환씨와 조경선씨의 횡령, 감사의견 거절 등으로 지난 2020년 6월 상장폐지되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에스앤드케이월드코리아는 신한과 끝까지 합병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합병을 했다면, 에스앤드케이월드코리아가 신한을 인수하기 위해 차입한 670억원은 신한이 떠안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에스앤드케이월드코리아는 지금도 신한의 지분 53.85%를 소유한 최대주주이고, 2023년말 현재 순자산이 마이너스(-) 204억원인 자본잠식 상태입니다. 인수차입금을 조달하기 위해 설립된 SPC가 신한과 합병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김춘환씨 등 인수자가 차입금을 상환하지 않을 경우 담보와 연대보증을 제공한 신한이 채무를 상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다른 소액주주나 채권자 등 신한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와 기타 이해관계자들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위험을 초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해석했습니다.
2007년 1월 지금은 사라진 동양그룹의 지주회사격이던 동양메이저는 장부상회사인 동양메이저산업을 설립한 후, 동양생명보험, 동양매직, 동양레저 등과 함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법정관리 중이던 한일합섬 주식 1760만주를 인수하고 칸서스에스비제일차유동화전문회사 등이 갖고 있던 잔여주식 약 583만주도 장외매수해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동양메이저는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한일합섬 주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4667억원가량을 차입했고, 인수가 완료된 후 동양메이저가 동양메이저산업과 한일합섬을 차례로 흡수합병했습니다.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인수차입금 4667억원은 당연히 합병법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2008년 7월 검찰은 한일합섬 인수를 주도한 동양메이저 건설부문 대표 등을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했습니다. 한일합섬을 인수할 충분한 자금이 없었던 동양메이저가 한일합섬에 현금 1700억원이 유보되어 있음을 알고, 외부차입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한일합섬을 인수한 후 곧바로 흡수합병해 한일합섬의 현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한 것은 한일합섬에 그 만큼의 손해를 가한 것이므로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검찰의 기소 내용이었습니다. 인수대상회사인 한일합섬의 자산을 직접적으로 담보로 제공하지 않았지만, 인수 후 합병으로 결국 한일합섬의 현금으로 인수차입금을 상환했으니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M&A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국내 대부분의 대형 M&A가 대부분 인수대상 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식으로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유진그룹의 하이마트 인수, 이랜드그룹의 한국까르푸 인수 등이 대표적으로 한일합섬 인수방식과 비슷한 LBO였습니다. 특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 대우건설을 인수한 뒤 2008년까지 팔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대우건설이 본사로 쓰고 있던 대우센터빌딩(현 서울스퀘어)을 9600억원에 매각하고 유상감자를 통해 재무적 투자자의 회수에 사용했죠. 이로 인해 불법 LBO 논란이 일었지만 법의 제재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2009년 6월 부산고등법원은 동양메이저의 한일합섬 LBO에 대한 배임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수대상 회사의 자산을 이용해 차입금을 변제할 의도가 있다고 해도, 합병이 법률적으로 유효한 이상에는 합병으로 합체된 재산을 이용해 차입금을 상환하는 것은 자율적인 경영판단사항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또한 동양메이저가 직접적으로 한일합섬 자산을 인수차입금에 대한 담보로 제공하지 않았고, 한일합섬 인수를 위해 1,000억원 가까운 자기자금을 투자했고, 동양메이저의 경제력이 한일합섬보다 우월한 상황에서 합병이 이루어져, 한일합섬에 경제적으로 불리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신한과 동양메이저의 사례로 합법적 LBO와 불법적 LBO의 경계선이 분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수대상 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사용하고, 어느 정도의 자기자본이 투입이 된다면 불법 LBO로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M&A업계, 특히 사모펀드업계에 확산시키기는 충분했죠. 동양메이저 LBO 사건 이후 사모펀드에 의한 인수합병은 거의 예외없이 대상회사 주식을 담보로 한 인수차입금 조달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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