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김재섭 회장 부부는 제넥셀세인을 2009년 4~5월 한국기술산업에 매각했습니다. 제넥셀세인이 슈넬생명과학(전 한국슈넬제약, 현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을 인수한 지 1년 후의 일입니다. 그 1년새 슈넬생명과학은 무한투자 지분과 경기도 안산시 소재 공장을 매각하고, 제넥셀세인과 함께 청계제약 지분 100%를 인수했습니다. 한국기술산업이 제넥셀세인을 인수하는 자금의 연결고리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김재섭 회장이 제넥셀세인에서 탈출해 슈넬생명과학으로 이동하는 것과 관련이 깊습니다.


김재섭 회장은 제넥셀세인을 한국기술산업에 매각하기 전에 먼저 비상장사인 크라제인터내셔날과 경영권 지분 양수도계약을 맺었습니다. 동시에 제넥셀세인이 90% 무상감자를 하고 크라제인터내셔날을 흡수합병하기로 하죠. 크라제인터내셔날은 소멸하고, 제넥셀세인은 크라제주식회사로 개명할 계획이었습니다. 일종의 백도어 리스팅(Back-door Listing), 우회상장을 시도한 셈입니다.


2009년 1월에 체결된 계약은 크라제인터내셔날이 김재섭 회장에게 잔급을 지급하지 않는 바람에 그해 3월 31일자로 해지됩니다. 그런데 마치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불과 1주일만에 한국기술산업과 다시 경영권 지분 양수도계약을 맺죠. 양수도 가격도 크라제인터내셔날과 약속했던 220억원으로 같았습니다.


한국기술산업은 4월 30일 100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고, 5월 7일 무보증사채 70억원을 발행해 인수자금을 마련합니다. 대주주의 개인회사였던 케이티아이글로벌홀딩스를 상대로도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지원받았는데, 이 자금 중 일부도 인수자금에 쓰였을 수 있습니다.



한국기술산업이 발행한 170억원의 사채를 인수한 곳은 놀랍게도 제넥셀세인의 자회사 슈넬생명과학(당시 한국슈넬제약)이었습니다. 인수할 회사의 자회사로부터 인수자금을 조달한 셈입니다. 슈넬생명과학은 그 돈이 어디에서 났을까요? 한국기술산업과 정확히 같은 날 각각 100억원과 70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습니다. 슈넬생명과학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한 회사는 팝인베스트먼트라는 자본금 5000만원짜리 신설회사였습니다.


사채를 발행해 중도금을 치른 한국기술산업은 2009년 5월 7일 제넥셀세인의 대주주가 되었고, 5월 22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제넥셀세인의 이사진이 교체됩니다. 임시 주총이 열린 날 한국기술산업은 김재섭 회장에게 잔금을 지급하고 나머지 지분을 확보합니다.


한국기술산업이 제넥셀세인을 인수하는데 들어간 자금은 유상증자를 포함해 총 274억원입니다. 그 중 220억원이 김재섭·박미령에게 지급되었는데요. 과세관청은 이를 고가 양도에 따른 증여로 보고 총 98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합니다. 특수관계인이 아닌 자에게 고가 양도했다고 보는 기준이 공정가액의 30%를 초과했을 때인데요. 30% 초과 금액에 대한 세금이 98억원이라는 것이니, 김재섭 부부가 처분한 가격과 과세관청이 보는 정상가의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재섭 부부는 부과처분에 불복해 취소청구신청을 제기했고, 기각될 경우 행정소송도 진행할 계획이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공시에도 없고, 언론 보도에도 없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와 조세심판원에서도 찾을 수가 없더군요. 다만, 이와 유사한 판례가 2017년에 나온 적이 있는데, 과세관청이 패소했더군요. 김재섭 부부가 증여세를 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국기술산업에 인수된 후 제넥셀세인은 자회사인 에이프로젠, 청계제약 등 보유 자산을 매각합니다. 매각 대가로 받은 건 대부분 현금이 아닌 한국기술산업의 신주인수권부사채였습니다. 에이프로젠 지분 100%를 슈넬생명과학에 매각하고 약 27억원(액면가, 이하 같음)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받았고, 제넥셀메디칼 지분을 매각하고 슈넬생명과학에서 18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받았으며, 청계제약 지분을 코아스트론이라는 회사에 팔고 51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받는 식이었습니다. 일부 신주인수권부사채는 현금으로 매입하기도 했습니다. 제넥셀이 그렇게 사들인 한국기술산업 신주인수권부사채는 162억원으로 추산됩니다. 제넥셀세인 인수자금 부담이 돌고 돌아 제넥셀세인에게 귀속된 셈입니다.



코아스트론은 인수한 청계제약 주식 39%를 몇 달 후 다시 슈넬생명과학에 팔았습니다. 이 때도 매각 대가로 현금이 아닌 한국기술산업 신주인수권부사채(51억원)이 오갔습니다. 그렇게 청계제약은 슈넬생명과학의 100%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슈넬생명과학이 인수한 한국기술산업 신주인수권부사채 100억원과 회사채 70억원은 청계제약, 에이프로젠에, 제넥셀메디칼 지분 등 제넥셀세인 자산을 매입하는 데 전액 사용되었습니다. 일부는 에이프로젠과 청계제약에 의해 사용되었죠. 슈넬생명과학이 에이프로젠과 청계제약에 공짜로 주었을 리는 없고, 유상증자에 현물출자 하는 형태로 두 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는 데 쓰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한국기술산업은 제넥셀세인의 자회사인 슈넬생명과학에게서 자금을 빌려(BW와 회사채 발행) 김재섭 부부에게 제넥셀세인을 인수했고, 슈넬생명과학은 한국기술산업의 신주인수권부사채와 회사채로 제넥셀세인의 자회사들을 인수합니다. 김재섭 부부는 제넥셀세인을 매각해 22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고, 그 자금을 기반으로 슈넬생명과학의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제넥셀세인의 연구 프로젝트는 슈넬생명과학으로 이전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2010년 3월 김재섭 회장이 창업한 제넥셀과 상장사 세인전자의 합병법인 제넥셀세인은 상장폐지를 맞게 되죠. 김재섭 회장은 가라앉는 배, 제넥셀세인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해 슈넬생명과학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