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넷마블은 웅진코웨이 인수를 '스마트 홈 구독경제'라는 상당히 있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허망해 보이는 컨셉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언론들은 열심히 써줍니다. 세계적으로 구독경제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하고 있고, 웅진코웨이는 국내 대기업 중 가장 구독경제에 가까운 사업모델을 갖고 있고, 넷마블의 IT 기술과 AI(인공지능) 데이터 및 솔루션이 코웨이의 구독경제와 만나면 상당한 시너지가 기대된다고요. 넷마블이 웅진코웨이 인수를 결정하는 3일동안 만들어 낸 이 상상력 충만한 구상이 게임업체가 정수기 렌탈업체에 1조8000억원의 현금을 쏘는 명분이 되고 있습니다.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라고 하면 신문이나 우유를 생각하면 됩니다. 매달 일정액의 구독료를 내고, 원하는 신문이나 우유를 받아보고 받아먹는 것이죠. 이게 영역이 점점 넓어져서 요즘은 셔츠, 화장품, 면도날 같은 것도 정기적으로 배송을 해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간단한 생활용품을 정기 배송하는 정도였지만 정수기나 자동차처럼 내구성 높은 비싼 제품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벤츠와 BMW는 정기적으로 일정액의 회비(?)를 내면 마음에 드는 차를 골라 타다 싫증 나면 다른 차로 언제든지 바꿔 탈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현대차 역시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구독 경제는 말 그대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료를 내고 일정 기간 쓰는 것입니다. 여럿이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공유 경제에서 한발 더 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 중에서 구독 경제에 가장 가까운 사업모델을 갖고 있는 회사라면, 언론사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웅진코웨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매달 일정액의 렌탈료를 내면 정수기나 비데 등을 소유하지 않고, 코웨이가 자랑하는 '코디'들이 집으로 직접 방문해 필터를 교환해 주는 등 유지 서비스를 해 줍니다.
코디들은 고객의 거실이나 주방은 물론 안방에 딸린 화장실까지 출입이 가능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고객이 어느 회사의 TV와 냉장고와 에어컨과 전자레인지를 사서 쓰는지 세세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생활 수준과 소비의 선호, 그리고 그 제품들의 교환 주기까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정보를 축적하고 활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사업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웅진코웨이는 기존의 정수기 렌탈 고객을 기반으로 사업의 범위를 비데, 연수기, 침대 매트리스 등으로 넓혀가고 있습니다. 사업의 범위가 넓어지면 그에 따라 매출의 확대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실제로 코웨이는 LG그룹이나 SK그룹 등 막강한 경쟁자들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매년 꾸준히 상당한 수준의 매출 증가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전부 코웨이라는 기업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코웨이의 기업가치가 주당 얼마나 되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향후 구독 경제의 성장 가능성이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LG전자나 SK매직처럼 각종 가전제품이나 청소기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업체가 코웨이의 구독경제를 말한다면 '아, 시너지가 있겠구나' 하고 단박에 동의를 하겠지만 게임업체인 넷마블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쉽게 수긍이 되지 않습니다.
넷마블이 자신의 IT기술과 게임 이용자들의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AI기술로 웅진코웨이의 구독경제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주주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은 바로 게임과 정수기의 만남이 어색해도 너무 어색하기 때문이죠.
넷마블이 게임사업의 성장 한계나 사업의 불확실성이 불안해서 보다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창출되는 다각화를 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됩니다. 나중에 보다 자세히 보겠지만 넷마블이 지난해 이후 매출이나 현금흐름 측면에서 급격하게 꺾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물론 이건 넷마블 만의 문제가 아니긴 합니다.
국내 게임산업이 매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중국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장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그런데 2017년 이후 한국 게임에 대한 중국의 판호(유통 허가권) 불가 정책이 큰 리스크로 등장했습니다. 판호가 없으면 중국 현지에서 유료 서비스가 불가능합니다. 국내 게임의 중국 진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겁니다. 다음 달이 되면 국내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이 30개월째 '0'을 찍게 됩니다.
그 바람에 넷마블의 매출액(연결 기준)이 지난해 2조원 수준으로 내려 앉으며 20% 가까이 급감했죠.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공교롭게도 넷마블이 2017년 기업공개(주식상장)를 한 직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넷마블로서는 막대한 공모를 통해 막대한 현금을 확보한 다음이니까, 호사다마이거나 불행 중 다행이거나 지만, 높은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죠.
설상가상으로 공매도가 기승을 부립니다. 넷마블은 늘 공매도 상위에 올라 있는 종목입니다. 주가수익배율(PER)이 40배(KRX기준)로 게임업체 중에서도 높아 공매도 세력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모양입니다. 신규 게임이 출시되는 호재가 나와 주가가 오를 것 같으면 여지없이 공매도 공격이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공매도라는 것이 하는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위험한 투자 방식입니다. 주가가 내리면 그 만큼 이익을 보지만, 반대로 올라 버리면 손실이 무한대로 커집니다. 물리력으로 버틸 수 있는 든든한 실탄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주가가 분명히 떨어진다'는 확신이 공매도자 입장에서는 필요합니다.
주가의 첫번째 나침반은 누가 뭐래도 실적일 것입니다. 넷마블의 실적에 대해 낙관적인 기대가 대세라면 공매도가 활개를 치기 어렵죠. 주가 하락과 공매도의 근거는 높은 밸류에이션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미래 실적에 대한 기대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코웨이 인수에 대해 '향후 게임 산업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시장과 주가는 전혀 그렇게 움직이고 있지 않으니, 회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한 IT기술과 AI 가 웅진코웨이와 시너지를 낸다니요? 모바일 게임을 주로 하는 고객들의 데이터가 정수기나 공기청정기 또는 비데 사용자에게 어떻게 활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대체 누가 이해를 하겠습니까?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가 최근 만난 모 대형 증권사 임원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넷마블이 코웨이를 인수한 후에 CJ그룹으로 넘기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여의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넷마블이 CJ그룹에서 분할되어 나온 회사이고, 지금도 20% 이상을 소유한 주요 주주라 그런 애기가 나오겠죠. 게다가 CJ는 가정간편식을 중심으로 방문판매를 활발히 하는 회사잖아요. 넷마블의 코웨이 인수가 얼마나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면 이런 얘기까지 나올까 싶습니다.
*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제작하는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DRCR(주)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