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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상장회사 녹원씨엔아이가 70억원의 유상증자를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새롭게 최대주주가 된 티알아이 리스트럭처링 투자조합1호(이하 티알아이 투자조합)이 단독으로 증자에 참여하는데 증자대금은 채무상환에 쓸 예정입니다. 녹원씨엔아이는 상장폐지 위기에 몰려 있는 기업이죠. 지난달 초 증권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의 심의 결과 상장폐지로 심의되었고, 이어 열린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도 상장폐지를 심의·의결했습니다. 이달 15일까지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상장폐지가 되고, 이의신청을 하게 되면 다시 코스닥시장위원회가 열려 개선기간을 부여할 지, 그대로 상장폐지를 시킬 지를 다시 결정하게 됩니다.


녹원씨엔아이는 2015년부터 상장폐지 우려가 있던 기업입니다. 영업부진, 횡령 및 배임 혐의, 회계분식 등으로 지속적으로 상장적격성 실질 심사를 받았고, 지난해 3월부터 주권거래가 정지되었습니다. 올해 6월까지 개선기간을 부여 받았지만, 개선기간 종료 후 다시 상장폐지의 기로에 서게 된 겁니다. 좀비 기업이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8년째 상장폐지 위기에 있는 기업인데, 최근 5년간 최대주주가 무려 4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직전 최대주주는 바로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에서 다룬 삼부토건의 새 주인 디와이디의 종속회사 웰바이오텍입니다. 이일준 회장이 웰바이오텍을 통해 경영권 지분을 양수한 게 2019년 11월인데, 2년이 조금 넘게 흐른 뒤 티알아이 투자조합이 110억원 규모의 유상 신주를 인수해 새롭게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웰바오이텍 이전에는 ㈜모우와 ㈜에스피알파트너스가 최대주주였고, 그 전에는 쏘마그로스투자조합이었습니다. ㈜모우와 에스피알파트너스는 한 몸입니다. 모우가 에스피알파트너스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최대주주가 바뀌면 보통 경영권 지분의 양수도거래가 있었나 할 수 있지만, 코스닥시장에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의한 최대주주 변경이 양수도거래 못지 않게 자주 일어납니다. 특히 그 유동성이 부족하거나 재무상태가 매우 열악한 기업일수록 유상증자로 최대주주가 바뀌는 일이 많습니다. 새로운 최대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하지 않고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어서 좋고, 기존 최대주주는 재무구조 개선으로 주가가 오른 뒤 지분을 매각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녹원씨엔아이에 대해서는 디와이디 시리즈를 쓰면서 간단히 짚어 본 적이 있는데요. 2003년에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지리정보(GIS) 업체 선도소프트가 전신입니다. 창업자인 윤재준씨가 쏘마그로스투자조합에 지분을 매각한 후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는 등 상황이 나빠집니다. 275억원에 달하던 매출이 2014년 33억원까지 떨어졌으니 말 다 했죠. 지난해까지 10년동안 흑자를 기록한 해가 2018년 딱 한 해 뿐입니다. 코스닥시장에서 아직도 퇴출되지 않은 게 신기합니다.


2018년 3월에 ㈜모우가 인수한 뒤 잉크제조업체 녹원씨엔아이 지분을 100% 인수한 후 흡수합병하면서 지금의 녹원씨엔아이라는 상호를 쓰게 되었습니다. 역합병은 아니지만 우회상장 비슷합니다. 이후 2년간 매출이 300억원을 넘기고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는데요. 2019년 11월에 이일준 회장이 웰바이오텍을 통해 에스피알파트너스 지분을 양수하고 최대주주가 된 후에 다시 매출이 반토막 나서 지난해 15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리정보사업은 접었고 지금은 산업용 잉크제조업체입니다.


창업자가 지분을 팔고 난 후 새 주인들은 이일준 회장이 지배하는 웰바이텍을 제외하고 다들 정체가 모호합니다. 조합원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투자조합이거나 신설회사이니까요. 공식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들로 최대주주가 변경되었지만, 어떤 내막이 숨어 있는지 모르죠. 최대주주 변천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살펴 보기로 합니다.


타일아이투자조합은 110억원의 유상증자 참여로 최대주주가 되었고 이달 20일 70억원의 유상증자에도 단독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증자가 끝나면 지분율이 32.74%로 올라갈 걸로 예상됩니다. 녹원씨엔아이는 지난 6월에도 9억9900만원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한 적이 있어서 올 들어서만 약 190억원의 자본이 확충되었습니다. 이일준 회장의 웰바이오텍은 지분을 철수하지 않고 2대 주주로 남아 있습니다.


기존 120억원의 증자대금 중 80억원은 채무 상환용이었습니다. 이번 70억원 역시 채무 상환에 쓰일 예정입니다. 재무구조 개선효과는 분명히 있겠네요. 통할지 모르겠지만 상장 폐지를 회피할 카드로 쓰이게 될 겁니다. 70억원으로 상환할 채무는 24회차 전환사채 68억원입니다. 그런데 이 전환사채는 올해 5월에 129억원 규모로 발행됐습니다. 불과 넉 달만에 전환사채의 절반 이상을 중도 상환하려고 하네요.


녹원씨엔아이는 최대주주가 바뀌고 나서 모두 네 번의 전환사채를 발행했습니다. 21회차 100억원은 채무상환 용도로 발행되었고, 22회차 100억원, 23회차 30억원과 24회차 129억원은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이었습니다. 전환사채로 총 259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셈입니다. 유상증자까지 포함하면 올 들어 총 379억원을 조달한 셈이고, 곧 70억원을 보태 449억원이 되겠죠.


녹원씨엔아이는 지난해부터 기존에 발행한 전환사채를 조기상환해 왔습니다. 아마 전환사채 투자자들이 상장폐지를 우려해 상환을 요청했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말 현재 16회차(30억원) 17회차(29억원), 18회차(50억원), 19회차(50억원) 등 159억원의 미상환 잔액이 있었는데요. 올해 이 전환사채들을 전부 조기상환했습니다. 최대주주가 유상증자한 자금 중 80억원과 21회차 전환사채 100억원이 상환 재원으로 쓰였겠죠.


녹원씨엔아이는 지난 5월 비상장사인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업체 ㈜해화를 약 276억원에 인수했습니다. 조철 대표 외 40인의 주주로부터 지분 100%를 양수했죠. ㈜해화는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 해성옵틱스가 최대주주 변동을 수반하는 유상증자를 할 때 참여한 회사입니다. 해성옵틱스 유상신주를 오에이치 얼머스 리스트럭처링 투자조합(이하 오에이치 얼머스 투자조합)이 단독으로 양수하는데, 이 투자조합의 최대 출자 조합원은 ㈜우림 이었지만 실제 인수 주체는 ㈜해화라고 보도되었죠.


오에이치 얼머스 투자조합은 그후 최대출자 조합원이 우림에서 ㈜이아이디, 다시 옵트론텍으로 바뀌었는데요. 해화(17.71%) 역시 조합의 주요 출자자로 남아 있습니다. 해화, 옵트론텍, 해성옵틱스는 모두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의 관련업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대주주끼리 친분이 매우 두텁다고 하네요. 해화가 해성옵틱스의 인수 주역이라면, 조철 대표가 키맨이라는 뜻이겠죠


조철 대표는 특수관계자들과 함께 해화의 50% 이상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였습니다. 자신이 주도해서 해성옵틱스를 인수했고, 해화와 해성옵틱스 대표이사를 겸임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주주들 지분까지 싹 다 끌어 모아 언제 상장폐지될 지 모르는 녹원씨엔아이에게 판 건가요? 본인은 해성옵틱스 대표이사로 가고 말이죠. 엄청 어색합니다.



녹원씨엔아이는 올해 발행한 22~24회차 전환사채 납입자금 259억원과 보유 현금 20억원으로 해화 지분을 양수했습니다. 해화 인수가 끝나자, 최대주주의 유상증자 자금으로 인수대금 일부를 갚으려는 겁니다. 그런데 해화 인수를 위해 발행한 24회차 전환사채 129억원은 사모로 발행되었고, 전환사채를 받아간 곳은 바로 조철 대표를 포함한 해화의 주주 14인이었습니다. 해화 주식을 양도하는 대가의 일부를 현금이 아닌 녹원씨엔아이 전환사채로 받았는데, 구주주 중 일부가 전환사채를 현금화하고 싶어 하나 봅니다. 조철 대표가 끼어 있을까요?


모든 게 말이 되려면 녹원씨엔아이의 최대주주가 해화와 관계된 곳이어야 합니다. 해화의 주인이 투자조합을 만들어 상장폐지 위기에 있는 녹원씨엔아이를 인수하고, 녹원씨엔아이가 해화를 인수해 합병한다면,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새로운 사업을 장착한 녹원씨엔아이는 상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해화는 코스닥 시장 입성이 가능해 집니다. 지켜 보면 알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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