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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절차 신청과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이하 ABCP) 부도의 후폭풍으로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가스공사, 인천도시개발공사 등 공기업 회사채가 줄줄이 유찰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강원도에 대한 신뢰 상실이 지자체와 공기업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겁니다. 대단히 중대한 상황입니다만, 채권이 유찰됐다고 지자체나 공기업이 도산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자체와 공기업들은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가 정부의 강력한 지원가능성 때문입니다. 정부가 대주주이거나 실질적인 대주주이고, 정부의 정책에 따라 운영되는 회사들이라 사실상 정부와 동일시되고 있거든요. 정부가 50조원의 유동성 공급에 나선다고 하니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겠지만 진정이 될 겁니다.


정말로 우려되는 것은 공기업이 아닙니다. AAA등급의 지자체에서 비롯된 신용 이슈가 민간기업의 신용경색으로 확산된다면, 채권시장안정펀드로도 막을 수 없을 지 모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이하 부동산PF)에 불똥이 튈까 걱정입니다. 롯데건설이 부랴부랴 7,000억원의 자금조달에 나선 것도 약 6조원에 달하는 부동산PF 우발채무가 현실화되는 리스크에 대비하는 차원이죠.


부동산PF 우발채무가 롯데건설에만 있는 게 아니죠.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SK에코플랜트, 태영건설, 포스코건설 등 A급 이상 기업들 뿐 아니라 금호건설, 동부건설, 증흥토건, 코오롱글로벌 등 BBB급까지 웬만한 중대형 건설사는 대부분 부동산PF의 현실화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건설사들의 PF우발채무중 적지 않은 규모가 ABCP 형태로 시중에 풀려 있습니다. 금리 급등과 아파트가격 하락으로 미분양이 전국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레고랜드 부도위험이 민간 건설사의 ABCP로 옮겨 붙는다면,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는 건설사들이 속출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PF의 구조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사업주체인 시행사는 아파트단지 조성을 위해 금융기관에서 대출(브릿지론)을 받아 토지를 매입하고, 건설사(시공사)는 시행사와 공사도급계약을 맺습니다. 시행사는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토지매입자금 대출을 받기 위해 건설사가 금융기관에 연대보증, 채무인수 등의 신용보강을 제공합니다.



브릿지론을 주로 제공하는 금융기관은 증권사나 저축은행 등입니다. 이들은 대출채권을 계속 보유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죠. 장부상회사(SPC)를 만들어 대출채권을 양도하고, 장부상회사는 대출채권을 담보로 어음(ABCP)나 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합니다. ABCP를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매각한 자금으로 금융기관이 대출을 회수하게 되는 셈이죠. 대주가 금융기관에서 다수의 투자자로 바뀌는 겁니다.


처음부터 유동화회사가 토지매입대금을 공급하기도 합니다. 유동화회사가 유동화증권(ABCP, ABSTB)를 발행해 조성한 자금으로 시행사에 사업비를 대출해 주는 것이죠. 이때도 시공사가 시행사의 차입금에 대해 신용보강을 하고, 유동화증권 발행을 주선하는 증권사가 해당 유동화증권에 대해 유동성매입 약정 등의 신용보강을 해 줍니다.



시행사가 유동화회사에 대출을 갚지 못하면 시공사가 상환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고,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해 ABCP가 만기 때 차환되지 못하면 증권사가 그 ABCP를 매입해 주는 구조입니다. 금융기관을 대출을 받은 뒤 그 대출채권을 유동화하는 것이나, 처음부터 SPC를 설립해 사업비를 조달하는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다를 게 없죠.


부동산PF 유동화증권은 아파트를 완공해 수분양자들에게 넘겨줄 때까지 보통 3개월 또는 6개월 단위로 만기를 맞고 차환발행됩니다. 시공사가 차주인 시행사에게 제공한 연대보증, 채무인수, 자금보충 등의 우발채무는 공사가 모두 끝나고 공사대금을 전액 받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또는 공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 시행사가 부도를 내거나 ABCP 차환발행이 실패하게 되면 결국 상환책임은 건설사에게 넘어오게 되죠. 이런 문제가 특정 건설사의 특정 사업장에 국한된 것이면 산발적인 이슈로 그치겠지만, 최근이 상황처럼 부동산PF에 대한 신용위기로 번지면, ABCP 부도위험이 전체 건설업계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ABCP 등 유동화증권의 만기가 3개월 또는 6개월로 짧다는 것은 유사시 ABCP 상환요구가 단기간에 집중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건설사가 상환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큰 돈이 필요하게 되겠죠. 롯데건설이 첫 테이프를 끊었지만, 선제대응으로 대대적인 자금확보에 나서는 건설사가 더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업장이 많을수록, 미착공 사업장 비중이 높을수록, 분양율이 낮을수록, 수도권에 위치한 사업장 비중이 낮을수록 위험은 높아집니다. 시행사가 부도를 내거나 ABCP 차환실패가 발생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건설사는 사고가 난 사업장의 PF 채무를 반드시 떠안아야 합니다. 단 한 사업장이라도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모든 사업장의 우발채무가 한꺼번에 현실화됩니다.그러니 우발채무 현실화에 대비해야 하는 유동성은 최소한이 아니라 최대한이 되어야 합니다.


롯데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7000억원의 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 차환에 실패했죠. 보증을 선 4개 시공사(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이 상환하게 되었습니다. 롯데건설이 떠안은 채무는 1645억원입니다. 롯데건설이 2000억원의 유상증자에 나서게 된 직접적인 이유일 겁니다.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로부터5000억원을 차입한 건 추가로 PF우발채무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있을 것에 대비했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비록 기존 보유현금이 9000억원 가량 있다고 하지만 롯데건설이 시공에 참여한 사업장 중 미착공 비중이 매우 높고, 위험지역인 대구, 대전 등지에 큰 사업장이 있어 장담할 수 없습니다. 롯데건설의 ABCP는 4조4000억원에 이르고 대부분 6개월 내 만기 도래합니다.


건설사의 아파트 건축 사업장 중 미착공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신용등급이 높은 대형 건설사일수록 높습니다. 주택경기 호황기에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기 때문이죠. 현대건설은 미착공 사업이 대부분이고, GS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건설, 코오롱글로벌, 한화건설 등의 미착공 비중이 70% 이상(출처: 한국기업평가)입니다.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거나 유휴자산 매각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들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롯데건설처럼 선제대응 차원의 자금조달 필요성이 커집니다. 모그룹이 든든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증자도 차입도 쉽지 않은 시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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