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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티세미콘이 이달 예정했던 2000억원 규모의 자금조달에 애를 먹고 있는 모양입니다. 당초 6월에 마무리하려던 계획이 사채 인수자의 변경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달 25일로 연기됐었는데요. 또  미루어졌습니다. 사채 인수자가 일부 교체되었고 조달 규모도 축소되었습니다.


에이티세미콘은 지난 25일 두 투자조합을 대상으로 전환사채(18~21회차) 1000억원, 신주인수권부사채(2~5회차) 1000억원을 발행할 계획이었습니다. 뉴아시아알파조합(전환사채)과 브이티엠조합(신주인수권부사채)이 인수자로 정해졌죠. 이중 18회차 전환사채가 250억원에서 130억원으로 규모를 줄여 25일 발행되었습니다. 나머지 전환사채 750억원과 신주인수권부사채 1000억원은 다음 달 15일로 납입일을 늦췄습니다.


이와 함께 300억원 규모의 자기 전환사채(12회, 14회, 16회) 재매각의 잔금 지급일도 다음달 13일로 연기되었습니다. 매수자인 ㈜아임존은 지난 9월까지 131억원 가량을 입금했고 174억원 가량이 남았습니다.



올해 에이티세미콘은 대대적인 재무재조정(?) 계획을 실행해 왔습니다. 기존에 발행했던 전환사채를 만기 전 조기상환 방식으로 취득한 뒤, 재매각해 사채권자를 변경했고 유상증자와 영업양도, 새로운 전환사채 및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으로 뭉칫돈을 조달했습니다.


지난해 리더스기술투자 인수를 위해 유진투자증권의 도움을 받아 발행한 제16회차 전환사채 200억원(인수자 유진에이티제일차)을 비롯해 11회차(35억원), 12회차(60억원), 17회차(10억원) 전환사채를 취득했죠. 지난해에도 두 차례에 걸쳐 10회차 전환사채 50억원 중 20억원, 14회차 전환사채 40억원 전액을 만기 전 취득했습니다.


지난해말 에이티세미콘의 미상환 전환사채는 460억원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전환권 행사와 잇따른 만기 전 취득으로 한때 55억원 수준까지 줄어듭니다. 하지만 2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및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앞두고, 만기 전 취득한 자기 전환사채들을 재매각합니다. 전환권 행사기한이 도래하거나 곧 도래하는 전환사채 투자자의 손바뀜이 발생한 것이죠.


큰 그림은 지난 3월 10일 그려졌습니다. 2000억원의 사채를 발행하기로 한 그날 에이티세미콘은 보유 중이던 자기 전환사채(12회차, 14회차, 16회차) 300억원에 대한 재매각 결정을 동시에 하는데요. 인수자는 ㈜아임존이었습니다.


5월에는 17회차 전환사채 10억원을 디에스팜에 매각하고, 8월에는 35억원 규모의 11회차 전환사채의 매매계약을 체결합니다. 25억원은 ㈜디파인랩에서 받아가는데, 나머지 10억원을 매입하는 상대는 또 ㈜아임존이었습니다. 재매각된 전환사채들의 전환가액은 가장 규모가 큰 16회차 1064원을 비롯, 1000원 초반에서 1100원대입니다. 모두 당장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환권 행사기간이 도래한 대부분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건 10회차 30억원(전환가액 1014원), 11회차 700만원(전환가액 1130원), 16회차 170억원(전환가액 1064원) 뿐입니다. 16회차 170억원은 ㈜아임존이 사채를 받아갔지만 잔금을 다음 달 23일 치르기로 했죠.


자기 전환사채를 매입한 곳들이 주식 전환을 서두른 것은 에이티세미콘과 미리 합의한 약속일 것입니다.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에이티세미콘의 김형준 대표이사와 행동을 같이 하는 이해공동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이미 발행한 전환사채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대규모의 새로운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게 무리일 테니까요.


㈜아임존은 그동안 발행된 전환사채를 끌어모아서 새로운 사채권자에게 다시 배분하는 채널의 역할을 했습니다. 아임존은 3월 10일 에이티세미콘으로부터 300억원의 전환사채를 매입했을 뿐 아니라, 같은 날 에이티세미콘의 특수관계자 삼성코퍼레이션, 블루엠조합,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85억원의 전환사채도 장외매수합니다. 7월11일 에이티세미콘에서 매입한 17회차 전환사채까지 하면 총 395억원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사들인 전환사채를 다시 매각합니다. 필로스알파, 앰플러스, 골드코스트, 퓨처웨이, 가우디움 에스케이팰리스조합 등이 아임존으로부터 전환사채를 사 간 곳입니다. 하나 같이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곳들입니다.


아임존은 주식회사로 설립되었지만 일종의 투자조합입니다. 매각하지 않은 전환사채는 조합원에게 배분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전환사채를 배분 받은 사람은 5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아임존을 설립한 100% 주주이자 아임존 대표 한수지씨입니다. 지난해 말 현재 아임존의 자산총액은 31억원, 부채는 30억원이었습니다. 조합원의 출연금은 부채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가장 많은 돈을 출연한 사람은 한수지씨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올해 에이티세미콘에서 거의 400억원에 달하는 전환사채를 매입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차입해 조달했을 것으로 추정되죠. 물론 그 차입금은 전환사채의 매각과 조합원 배분, 주식 전환 후 매각 등의 방법으로 상환되었을 것입니다.


한수지씨는 4월에 두 차례에 걸쳐 아임존으로부터 약 6억원의 전환사채를 배분받아 대부분 주식으로 전환해 장내매도했습니다. 5월에도 아임존으로부터 현물배분과 매입으로 약 4억5000만원어치를 확보한 뒤 주식으로 매도했고, 7월에는 아임존이 에이티세미콘으로부터 취득한 17회차 전환사채 10억원을 전량 매입해 역시 전량 매도합니다. 이를 통해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은 것은 물론이죠.


현재 아임존에 남아 있는 전환사채는 잔금 지급이 되지 않은 16회차 전환사채 170억원 정도일 겁니다. 12월 15일 1750억원의 전환사채가 발행되고 170억원의 잔금이 지급되면 다시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얻을 기회를 얻게 되겠죠.


한수지라는 이름은 코스닥 상장사 이노시스와 스마트솔루션즈에서도 발견됩니다. 스마트솔루션즈는 반도체 검사장비와 전기차 사업을 하던 쎄미시스코라는 회사였습니다. 대표이사인 이순종씨와 그의 가족이 최대주주였죠. 2021년 이순종씨 가족이 에너지솔루션즈 등과 경영권 지분 양수도 거래를 하면서 최대주주가 변경되는데요. 이때 양수자측에 스타라이트와 아임홀딩스라는 투자조합이 가세를 하거든요. 한수지씨와 그의 가족들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합들입니다.


최대주주가 바뀌면서 회사 이름도 변경되는데요. 새로운 이름은 에디슨이브이, 바로 쌍용차 인수를 추진했던 에디슨모터스가 자금조달의 창구로 활용했던 그 회사입니다. 올해 스마트솔루션즈로 이름을 다시 바꾼 이 회사는 감사의견 거절과 횡령 및 배임 혐의의 발생 등의 사유로 상장폐지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가 10만명에 달한다고 하죠. 하지만 한수지씨 등 에디슨이브이 인수에 참여했던 투자조합의 조합원들은 쌍용차 인수 추진으로 주가가 급등한 사이 단기에 주식을 처분해 막대한 차익을 남겼죠.


이노시스도 상호를 올해 두 번이나 바꾼 회사입니다. 설립 후 최대주주가 바뀐 적이 없는데, 올해 3월 구자교씨 등 최대주주가 경영권 지분을 매각하면서 2000년부터 오랫동안 사용하던 유앤아이라는 상호를 버리고 에디슨이노로 바꾸었고 6월부터는 지금의 상호 이노시스를 쓰고 있습니다.


이노시스의 최대주주가 에디슨이브이입니다. 지난 3월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22.19%의지분율로 경영권을 확보했죠. 에디슨모터스로 쌍용차 인수를 기획했던 에너지솔루션즈가 150억원을 에디슨이브이에 대여하고 에디슨이브이가 자기자금 5억원을 더해 유앤아이의 신주를 인수했죠. 이때 구자교씨 등이 보유하던 지분 중 22.31%를 260억원에 매입한 에디슨이브이의 동료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3.87%의 지분을 인수한 아임홀딩스플러스조합입니다. 보유 지분율이 5% 미만이고, 에디슨이브이 등과 연명보고도 하지 않아 조합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는 어렵지만 한수지씨와 관련된 회사로 짐작하는 건 무리가 아니죠.


뿐만 아니라 한수지씨는 ㈜한투오라는 이름으로 지난 7월 이노시스의 9회차 전환사채 200억원과 1회차 신주인수권부사채 100억원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동원하는 자금의 규모가 상당하죠. 다만, 이 전환사채를 곧바로 메리츠증권과 위가드라는 곳에 장외매도했습니다.  사채의 1차 인수자로 나서서 유통채널 역할을 한 셈입니다.


에이티세미콘이 이달 25일 발행하려던 사채 2000억원의 납입일을 다음달로 미루면서 그 중 130억원의 전환사채만 발행을 했는데요. 이 전환사채를 인수한 코스닥 상장사 파라텍은 삼부토건의 옛 주인 휴림로봇과 관계된 회사입니다. 휴림로봇이 62.75%, 스카이스타홀딩스가 37.25%를 출연해 조성한 휴림인프라투자조합이 지난해 10월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인수한 회사입니다.


파라텍의 정광원 대표이사는 휴림로봇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분이고, 휴림인프라투자조합의 대표조합원인 김봉관씨는 정광원씨의 뒤를 이어 현재 휴림로봇의 대표를 맡고 있죠. 정광원씨는 중국계 회사인 베이징링크선테크놀로지가 휴림로봇의 최대주주일 때 사외이사로 참여했다가 에이치엔티일렉트로닉스로 최대주주가 변경되면서 대표이사가 됐고, 2020년 12월 휴림홀딩스가 최대주주가 된 후에도 1년 가까이 대표이사직을 유지했던 사람입니다. 휴림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제이앤리더스라는 회사가 100% 지분으로 출자했고, 제이앤리더스는 김지영이라는 분이 100% 출자한 자산총액 85억원, 부채 72억원(2021년말 기준)인 곳인데,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유령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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