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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가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 지분 인수를 처음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 건 지난 2021년 5월경입니다. 에스엠의 최대주주인 이수만씨는 네이버, 카카오 등을 상대로 지분 매각을 논의했는데, 단지 매각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유 주식의 전부를 파는 방안, 일부만 파는 방안, 에스엠의 신주를 매각하는 방안, 상호 주식을 교환하는 방안 등이 다양하게 검토되었습니다.


약 1년이 지난 후 네이버는 에스엠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죠. 네이버는 에스엠 대신 하이브와 손을 잡았습니다. 하이브 자회사인 위버스컴퍼니 지분 49%를 취득해 2대주주가 되고, 위버스컴퍼니는 네이버의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브이라이브' 사업을 양수했죠. 하이브와 지분 관계를 맺고 있던 YG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한 3자 동맹이 맺어졌습니다.


역시 에스엠 인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CJ E&M도 최근 에스엠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죠. 하지만 카카오는 한 번도 협상 결렬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 올해 1월 마지막 해명 공시에서도 사업제휴와 지분투자 등 다양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해 왔다고 했습니다. 에스엠 역시 카카오와 협상 결렬을 선언한 적이 없습니다. 카카오와 다각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밝혀 왔습니다.


이성수 탁영준 공동 대표이사, 박영준 CCO, 지창훈 사외이사 등 현재의 이사회가 구성된 건 2020년 3월입니다. 그 전에도 이수만씨의 영향력이 막강했겠지만, 처조카와 친구 등 최측근만으로 경영진을 구성한 것은 이수만씨가 보다 확실하게 에스엠을 통제하기 위해서였겠죠. 본인의 지분 매각이 포함된 외부와의 협상을 앞두고 본인의 뜻대로 움직여 줄 하수인이 필요했을 겁니다. 카카오와 협상은 이수만씨의 의지로 시작이 되었을 것이고 현 경영진에 의해 수행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난관에 봉착하게 되죠. 지난해 초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고작 0.91%의 지분을 가진 행동주의 투자자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독립적인 감사인 선임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하면서 이수만씨와 현 경영진을 공격합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압도적인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주주총회에서 자신들이 내세운 곽준호(전 케이씨에스테크놀로지 CFO)씨를 감사에 선임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 얼라인파트너스가 확보한 의결권 지분이 80%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게 정말 사실일까 싶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성공입니다. 이수만씨 지분을 제외한 모든 주주가 얼라인파트너스 편에 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창환 대표가 얼라인파트너스를 창업한 게 2021년 9월입니다. 에스엠 지분에 투자한 게 아마 첫 투자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행동주의 투자를 지향한 것도 아니었답니다. BTS를 계기로 전 세계에 K팝 열풍이 부는 걸 보고 연예기획사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이브는 비쌌고, 에스엠은 싸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감사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새로 감사를 임명해서 라이크기획 문제 등을 뜯어 고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하죠.


이성수씨 등 에스엠 경영진이 언제부터 이수만씨에게 등을 돌렸는 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총에서의 패배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이수만씨 후광으로 경영진이 되었지만, 80%의 의결권을 집결시킬 정도로 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얼라인파트너스와 척을 지기도 어려웠을 테죠.


얼라인파트너스는 주주제안에서 이수만씨 개인회사 라이크기획 문제를 공개적으로 저격했고 결국 지난해 10월 라이크기획과 계약을 중도해지하는 결정을 이끌어 냅니다. 라이크기획은 에스엠과 계약으로 2021년까지 21년간 1246억원의 인세를 받았고, 2021년에 240억원, 지난해 9월까지 180억원을 추가로 지급받았습니다. 총 1666억원에 이릅니다.


그런데 얼라인파트너스가 주총에서 지적한 것은 라이크기획과 프로듀싱 계약을 끝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계약의 당사자가 현재 에스엠 이사회를 실질적으로 모두 임명한 이수만씨 본인이라서 계약이 적정하고 공정하게, 다시 말해 에스엠의 이익에 부합하는 지 제대로 검토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었죠.


이수만씨가 뛰어난 프로듀서라면 계약을 체결하고 대가를 지급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여러 대안을 공정하게 검토하고, 계약 대가도 적정하게 책정되어야 한다는 게 얼라인파트너스 입장이었습니다. 또 이수만씨에게는 외부에서 회사와 거래로 이득을 취하지 말고 차라리 회사에 들어와 이사회에서 승인한 연봉을 받으며 일을 하라는 취지였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겠지만 이수만씨도 결국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라이크기획과 계약을 조기 종료를 지난해 9월 선언한 것도 이수만씨이고, 10월에는 공식적으로 조기종료를 원한다는 서한을 경영진에 보냅니다. 이사회 의장을 대표이사와 분리해 사외이사가 맡고, 이사회 다수를 사외이사로 채우기로 하고, 사외이사가 3분의 2 이상인 내부거래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의 구성에도 모두 찬성했습니다. 또 앞으로는 회사 안에 들어와 역할을 할 것이고, 그 역할과 보수에 대해서도 회사가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수만씨에게는 라이크기획을 포기해도 되는 대안이 있었습니다. 2019년 홍콩에 CT Planning이라는 개인회사를 설립하고 슈퍼엠과 에스파 등의 글로벌 음원 유통과 관련해 해외의 각 레이블사와 계약을 체결해 수입의 6%를 선취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이성수 대표가 개인 유투브에서 폭로했죠. 제2의 라이크기획인 셈이죠. 이수만씨는 라이크기획을 포기하는 대신 회사에 들어와 대표이사 또는 그에 준하는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자 했을 것이고 CT Planning과 계약을 최대한 지키고자 했을 겁니다.


현 경영진은 이수만씨의 복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라이크기획 문제나 회사의 지배구조 및 자회사 정리 등의 이슈에 대해 자신을 지키는 태도를 취하지 않은 현 경영진을 이수만씨가 복귀한 후 유지시킬 가능성이 매우 낮았으니까요. 이성수 대표가 공개한 녹취록에서 이수만씨는 "선생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그런 애들은 나가야 되는 거야"라며 이 대표에게 자신의 편에 설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처조카인 이성수 대표야 말로 선생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었습니다. 에스엠은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수만씨 중심의 단일 프로듀싱 체제에서 멀티 제작센터 및 멀티 레이블 체계로 개편을 지난 1월 20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외부 음악 퍼블리싱사에 의존하던 음악 소싱도 음악 퍼블리싱 전문 자회사를 만들어 대체하기로 했죠. 그리고 이달 3일에는 이수만씨와 프로듀싱 계약을 종료한다고 밝혔죠.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 12월 다시 12개 요구사항을 담은 주주제안을 발송했는데, 핵심은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및 위원회 구성, 멀티 프로듀싱 체계로 전환, 비핵심자산 매각, 그리고 순이익의 20% 이상 주주환원 등이었습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소 제기 청구를 철회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다시 한번 표대결을 하겠다고 했죠. 에스엠 경영진은 대부분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이는 에스엠 경영진이 이수만씨에게 더 이상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사의 전달인 것이고, 이수만씨가 회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의 표현입니다. 이수만씨에게는 에스엠에서 '이수만 지우기'로 비쳐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녹취록은 멀티 프로듀싱 체제를 의미하는 'SM 3.0'을 발표한 전후 언제쯤 나눈 대화일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는 돌이키지 못할 상황까지는 아니었을 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수만씨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죠. 에스엠이 자신의 동의 없이 카카오와 지분 계약을 한 겁니다. 에스엠은 카카오를 대상으로 지난 7일 1119억원(주당 9만1000원)의 유상증자와 1052억원의 전환사채 발행(전환가액 9만2300원)을 결정합니다. 납입일은 3월 6일입니다.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이 완료되면 카카오는 9.05%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고 이수만씨의 지분율은 18.45%(자사주 포함)에서 16.78%로 희석됩니다. 0.61%의 자사주와 얼마 되지 않지만 현 경영진의 지분을 더하면 지분율 차이는 더 좁혀집니다. 카카오라는 거대 자본의 등장으로 이수만씨의 최대주주 지위는 약화되고, 보유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충분히 챙기기 어려워 집니다.


카카오가 에스엠 지분을 취득하기로 한 데는 에스엠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이수만씨가 회사 밖에서 에스엠의 프로듀싱을 전담하고 거액의 인세를 챙기는 것이 카카오가 에스엠과 사업협력을 하는 데 최대 걸림돌이었을 테니까요. 이수만씨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상태에서 지분을 섞는 건 위험부담이 컸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은 과연 에스엠 경영진이 이수만씨에게 구주 매각을 제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SM을 키운 아버지로서 명예로운 퇴진을 권하지 않았을까요. 카카오 입장에서도 그 편이 훨씬 좋은 모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수만씨는 자신이 평생을 바친 회사를 잃기 싫었을 것이고, CT Plannig을 통해 맺은 계약을 지키고 싶었을 겁니다. 카카오가 제시한 가격이 마음에 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있다는 사회적 비난에 민감해 져 있던 카카오도 최대주주의 지분 양수가 꺼려졌을 수 있습니다. 이수만씨의 지분을 매수하면, 그건 사업제휴를 위한 지분투자가 아니라 에스엠 인수가 되니까요.


이수만씨는 카카오의 지분 투자 결정이 있자 마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금지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하이브 방시혁 이사회 의장을 만나 구주매각 계약을 전격 체결합니다. 두 사람은 이수만씨가 보유하던 지분에 대해 공동보유 약정을 맺고 있지만, 이수만씨가 에스엠 경영에 참여하거나 에스엠 프로듀싱을 맡지는 않기로 합의했죠. 국내에서 3년, 해외에서는 제한 없이 프로듀싱 업무를 할 수 있지만 에스엠과 계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의 활동을 의미하는 경업금지 조항일 뿐이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또한 지배구조와 주주환원 정책에 대해서도 얼라인파트너스가 에스엠에 요구해 왔던 수준 이상의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수만씨 입장에서는 회사가 카카오로 넘어가든, 하이브에 넘기든 회사로 돌아갈 길은 막힌 셈이고, 에스엠의 프로듀서로 남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CT Plannig건에 대해서도 하이브가 이제 인지하게 되었으니 계약 취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식매매계약이 취소되겠지요.


이수만씨가 방시혁 의장을 찾아가기 전에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고 있었을 리 없습니다. 회사가 어디로 가든 별로 달라질 것이 없는 본인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하이브를 찾아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몰아낸 측근들이 회사를 주무르는 건 볼 수 없다는 배신감이 가장 클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하이브의 공개매수에 맞서 카카오도 공개매수로 맞불을 놓지 않겠느냐며, 지분경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카카오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카카오는 에스엠을 인수하더라도 낙타가 텐트에 들어가듯 천천히 하기를 원했을 겁니다. 일단 9.05%의 지분을 취득하고, 에스엠과 사업적으로 밀접하게 결합되고 이수만씨의 힘이 충분히 빠졌을 때 추가 지분을 취득하거나 이수만씨 지분을 매입해도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카오가 결국은 에스엠 지분을 넘겨줄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에스엠이 SM 3.0을 선언할 무렵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싱가포르 투자청(GIC)가 설립한 투자회사로부터 총 1조154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죠. 이중 절반인 약 5770억원이 타법인 주식 등의 취득자금으로 쓰입니다. 이달 20일 8975억원이 입금되고 7월20일 나머지 2564억원이 추가 납입될 예정입니다. 에스엠 지분 취득을 염두에 둔 자금조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규모로 보아 에스엠 지분을 추가로 취득할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경영권을 가져야겠다는 목표로 지분 취득에 나선 게 아닌 카카오가 과연 하이브와 전쟁을 불사할까요. 카카오의 1차 목적은 자신의 플랫폼을 풍요롭게 해 줄 콘텐츠를 찾는 것이었을 터이고, 사업협력 계약과 지분 참여로 그 목적을 이룰 첫 단추를 잘 꿰인 셈입니다. 카카오는 이미 대주주가 변동과 관계 없이 엔터 사업협력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죠. 하이브의 등장으로 카카오가 철수할 것이냐, 추가 인수할 것이냐 기로에 섰다고들 하지만, 지금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게 카카오의 답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이브 입장에서도 에스엠이 카카오라는 플랫폼을 확보한 게 손해가 아니죠. 비록 하이브가 네이버와 동맹을 맺고 있지만,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에스엠이 카카오와 협력하는 것까지 네이버 눈치를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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