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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의 최상위 지주회사인 SK㈜는 이달 초 95만1000주의 자기주식을 소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언론들은 주식소각이 최태원 회장이 주가부양의 특명을 내렸고, 이에 따라 SK는 물론 SK이노베이션과 SK스퀘어 등 중간지주사들 역시 자기주식 매입 및 현금배당 등 주주환원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전합니다.


SK㈜이 자사주 소각은 지난해 3월 발표한 중장기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SK㈜는 2025년까지 배당금 수입의 30% 이상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매년 시가총액의 1% 이상 자기주식을를 매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총 2000억원을 들여 자기주식을 매입했고, 이사회에서 그 주식을 소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최근 SK그룹은 자기주식 매입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자기주식 매입은 SK㈜의 2000억원이 전부이고, 그 이전은 2020년 SK이노베이션이 SK온을 물적분할하기 전 실시한 5785억원과 같은 해 SK텔레콤이 50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신탁계약을 맺은 게 있습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과거 사들인 자기주식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요 계열사들은 임직원에 대한 상여금을 자기주식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릅니다. 가령 SK텔레콤은 2021년에 1583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처분했는데, 임직원에게 상여로 지급한 것이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843억원의 자기주식을 본사와 자회사 임직원에게 지급했습니다. 금융감독원 공시사이트를 보면 올 들어 SK그룹 계열사들의 자기주식 처분 공시가 줄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지난 2월 결산배당 4816억원을 위해 자기주식 280만주를 처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산배당을 현금이 아닌 현물인 자기주식으로 하기로 한 것이죠. 지난해에도 1943억원의 자기주식으로 결산 배당을 실시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이달 초 2조2377억원 상당의 자사주 처분을 결정했습니다. 시장에서 매각하는 것이 아니고 같은 규모의 해외 교환사채 발행(미화 17억 달러)을 하면서 자기주식을 교환대상주식으로 한 것입니다. 사실상 전환사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교환권이 행사되면 자기주식이 처분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교환사채는 현금 상환되겠죠.


자기주식을 임직원 상여로 지급하거나 기말 배당으로 사용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현금의 사외유출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자본총액이 처분액만큼 증가합니다. 규모에 따라서는 재무구조 개선의 효과를 얻을 수 있죠.


SK하이닉스가 발행한 교환사채 발행은 자기주식을 활용한 자금조달입니다. 교환사채는 분명 차입금이지만 교환권이 행사되면 채권자가 주주로 바뀌고 차입금은 자본으로 탈바꿈하게 되죠. 돈이 필요하면 자기주식을 시장에 처분하면 되지, 왜 해외에서 교환사채를 발행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SK하이닉스 주가가 박살났을지도 모릅니다. 2조원이 넘는 자기주식 매각은 2조원 이상의 유상증자와 같은 효과를 갖습니다. 지난해 5월 11만5000원까지 올랐던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해 4분기 실적 쇼크를 겪은 이후 올해 초 7만3000원까지 하락했습니다. 지금도 8만원대 중반(4월25일 종가 현재 8만5500원)에 머물고 있죠. 이 상황에서 2조원 대의 자기주식이 시장에 풀린다면 주주에 대한 배신행위죠.


SK하이닉스는 신용등급 AA(안정적)에 빛나는 우량기업이고 코스피 시가총액 3위 기업입니다. 국내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2조원대의 자금을 조달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SK하이닉스는 그런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배터리부문(SK이노베이션 소그룹)과 함께 SK그룹 신용도의 약한 고리로 꼽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권업계는 올해 하반기 이후에 메모리반도체의 업황이 반등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습니다. 신용평가사들도 비슷한 관점입니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올해 영업적자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고, 메모리반도체 불황이 장기화될 여지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다롄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시 공장은 D램 생산비중의 40%를 차지하고 다롄 공장은 낸드 생산비중의 19%를 차지합니다. 미국은 대중 반도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지난달 중국 공장의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수출통제로 중국내 장비 반입이 어려워 생산라인에 대한 투자가 쉽지 않습니다. 1년간의 포괄적 유예기간이 있으니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유예기간 연장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중국 공장설비의 사양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내 생산 비중이 확대될 테고 비용증가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이상은 나이스신용평가의 의견을 요약한 것입니다).


사업상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회사가 재무적으로 튼튼하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돈으로 막으면 되죠. 그런데 SK하이닉스의 최근 상황은 그렇지 못합니다. 재무적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본업에서는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니 보유 현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고, 부족한 현금을 채우고 대규모 투자자금을 조달하다 보니 차입금이 빠르게 늘고 부채비율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전까지 최근 3년간 호황을 누렸습니다. 2020년 이후 3년간 119조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24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습니다. 영업활동에서 47조원의 현금흐름을 창출해 냈습니다. 벌어들인 현금 47조원은 대규모 자본적 지출과 배당의 재원으로 쓰였습니다. 3년간 자본적 지출에 44조원을 썼고 배당으로 3조원 이상을 지출했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대규모 M&A에도 나섰습니다. 지난해 8월 매그너스반도체 유한회사에서 키파운드리 지분 100%를 5758억원에 인수했고, 2021년말에는 인텔의 중국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90억 달러(약 11조원)에 인수하기로 했죠. 이를 위해 중국 다롄법인을 신설해 3조원가량을 출자했고, 미국 신설법인에 1조3500억원을 출자했습니다. 인수작업은 2025년에나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아직도 들어갈 돈이 많습니다. 중국 우시 공장에는 2조4000억원의 대여금을 출자전환하기도 했습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보면 SK하이닉스가 종속회사 및 관계회사 지분을 취득하기 위해 들어간 현금이 최근 3년간 9조원에 육박합니다. 영업활동으로 번 현금으로는 자본적지출과 지분투자를 감당할 수 없었죠. 당연히 외부자금 조달이 필요했고 회사의 선택은 증자가 아닌 차입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3년간 약 10조7000억원의 순차입을 했습니다. 기간을 5년으로 늘리면 순차입규모는 약 16조원으로 늘어납니다. SK하이닉스의 총차입금은 2019년말 12조원에서 지난해 말 24조80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부채비율은 36%에서 64%로 높아졌고 차입금으로 조성된 자산의 비중을 의미하는 차입금의존도는 18%에서 24%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으로 자본적지출과 배당금 지급을 감당할 없는 현금부족 상황에 처했습니다. 현금부족은 지난해 4분기에만 3조원 이상 급격히 커졌습니다. 하필이면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장기자금 조달이 거의 불가능한 때였습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SK하이닉스의 단기차입이 지난해 4분기 갑자기 늘었습니다. 약 1조9000억원에서 약 3조8000억원으로 말이죠. 5%대의 높은 금리로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년 만기인 기업어음을 사흘이 멀다하게 발행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긴급 자금조달이었습니다.


여기에 만기가 1년 이내로 다가온 사채와 장기차입금을 더해 올해 안에 갚아야 할 차입금이 7조4000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연내 갚을 빚이 많다는 건 그 만큼 상환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는 뜻이죠. 재무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지난해말 현재 SK하이닉스의 단기성 차입금 비중은 31%에 달합니다. AA급 기업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올해 SK하이닉스는 대대적인 자금조달에 나섰습니다. 지난 2월에는 1조39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를 발행했습니다. 전액 기존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쓰입니다. 지난해 10월 급하게 발행된 기업어음들을 거두어 들이고, 남는 것도 전액 기존의 회사채와 산업은행의 변동금리 대출을 갚는데 쓰일 예정입니다.


교환사채는 자기주식 교환을 염두에 두고 발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상 차입보다는 자기주식 매각에 가깝습니다. SK하이닉스는 더 이상 차입금을 늘리기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신용평가사들이 아직은 구두로만 우려를 표시하고 있지만 실적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차입금이 더 크게 늘어나면 경고장이 날아들 수도 있습니다.



2030년이 만기인 이 교환사채는 올해 5월22일부터 주당 11만1180원에 주식으로 언제든 교환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장기인 채권이지만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이 1.75%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 이자를 받고 만족할 채권자가 있을까요? 채권자는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을 갖고 있지만 2027년 4월 11일 하루만 가능합니다.


SK하이닉스의 신용이 흔들리게 된 것은 호황기 벌어들인 현금과 막대한 차입금을 동원해 대대적인 투자에 썼는데, 하필이면 업황이 불황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죠. 호황이 지속되었더라면 그 동안 늘어난 빚을 반도체를 팔아 갚으면 되는데 말이죠. 그런데 국내 기업들은 이런 상황에 자주 처합니다. 불황에 대비하는 습관이 들어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SK하이닉스의 교환사채가 자기주식으로 교환된다면 신용등급이 하락 위협을 받는 일은 없지 않을까요? 실적이 좋아지고 주가가 크게 오른다는 얘기니까요. 교환사채는 자기자본으로 바뀌고 차입금 부담은 낮아질 것입니다. 반대로 교환사채가 만기까지 상환되지 않거나 2027년 조기상환의 요구를 받는다면, 그건 SK하이닉스의 사정이 나쁘다는 뜻이겠죠. 주가도 실적도, 신용등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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