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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의 실적은 하락 추세에 있습니다. 지주회사인 롯데지주의 영업이익(연결)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롯데지주의 자회사가 아닌 주력 계열사 롯데케미칼 호텔롯데의 부진이 그룹 전체에 큰 부담이 되고 있죠. 그 중에서도 그룹 내에서 이익비중이 가장 큰 롯데케미칼은 그룹 전체의 실적은 물론이고 신용등급 방향성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롯데그룹의 실적은 롯데지주 외에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롯데물산, 롯데쇼핑, 롯데건설, 롯데상사, 롯데알미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의 연결실적(롯데물산은 개별)을 포함하면 대략 파악이 됩니다. 금융회사인 롯데캐피탈과 렌탈업체인 롯데렌탈은 업종의 특수성이 있어 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롯데케미칼은 그룹 내에서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계열이고, 그룹 전체 실적을 좌우하는 존재감을 보입니다. 지난해 충격적인 7000억원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그룹 전체 실적악화를 야기했습니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또 다른 주력 계열사를 자회사로 둔 롯데지주의 연결실적을 압도하고 있죠.


현금흐름 창출능력 역시 크게 약화됐습니다. 롯데그룹이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현금은 지난해 3조원 안팎으로 크게 줄었는데 역시 롯데케미칼의 영업활동 현금흐름 적자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롯데쇼핑 등이 선방했지만 롯데케미칼의 구멍을 막는데는 역부족이었죠.



국내 신용평가 3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지난해 10~11월경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AA+)에 '부정적' 전망을 달았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원자재 부족이 석유화학부문의 원가부담을 키웠고 글로벌 경기침체로 2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었는데, 이런 실적부진을 일시적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었고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펴면서 석유화학 수요는 위축됐습니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죠. 롯데케미칼은 그 와중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지에스화학, 롯데정밀화학, 케이피켐텍 등 자회사들과 함께 기초소재와 첨단소재 사업 등을 영위하는데, 인도네시아 NCC 설비투자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죠. 본사뿐 아니라 자회사들의 Capex 투자가 평년 수준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이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사건이 10월에 발생합니다. 동박 제조업체인일진머티리얼를 2조7000억원(올해 2월 잔금 지급)에 인수하기로 한 것이죠.  이익창출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M&A는 신용평가사들의 우려를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배터리 소재, 수소 등 다양한 신사업 투자가 이어질 예정이었는데 큰 숙제 하나가 추가된 것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롯데건설 유동성 위기가 터지면서 5000억원의 대여금과 876억원의 유상증자 참여 등 지원의 주체로 나서게 되죠. 자회사인 롯데정밀도 3000억원을 롯데건설에 대여하기로 했으니 연결 기준으로는 지원 부담이 9000억원에 육박했습니다. 물론 대여금은 올해초 전부 회수했습니다만 그룹의 주축으로 계열사가 위험해지면 지원의 주체가 된다는 걸 증명한 셈이죠.



롯데케미칼은 2021년말까지 거의 무차입 상태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현금과 금융상품을 합하면 차입금 총액과 거의 비슷했거든요. 그런데 지난해 모든 게 바뀌어 버렸습니다. 3조6000억원대이던 차입금이 6조원을 훌쩍 넘어섰고 현금과 금융상품을 제한 순차입금도 3조원이 넘습니다. 게데가 늘어난 차입금의 대부분이 단기성차입금이라는데 심각성이 더해집니다. 올해 내내 상환부담에 시달려야 할 판이죠.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할 때 쓰는 대표적인 레버리지 지표인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가 상승했고 빚을 벌어서 갚을 능력을 나타내는 커버리지 지표인 순차입금/EBITDA 배율은 0.12배에서 16.7배로 수직 상승했습니다. 보유 현금 전액과 매년 창출하는 EBITDA를 전부 빚 갚는데 투입해도 16.7년이 걸린다는 얘깁니다.


신용평가사들이 롯데케미칼 신용등급에 '부정적' 꼬리표를 단 건 상반기 또는 3분기까지 추정실적을 보고 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연간 실적은 예상보다 더욱 나빴습니다. 유가가 하락했고 롯데정밀화학이 9월에 자회사로 편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적자 폭이 더 커졌고 차입부담도 늘었죠.


지난 3월 롯데케미칼은 1조215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했습니다. 자본확충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꾀한 것이죠. 하지만 그 돈은 대부분 전액 납사 매입대금과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사용됩니다. 만기도래한 차입금 상환에 쓰일 돈은 지극히 적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영업활동 현금흐름(개별 기준)이 대략 1조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보유 현금과 유상증자로 들어오는 돈을 더하면 재무안정성 유지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신용평가사들도 올해 상황이 지난해보다는 나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2분기부터는 일진머티리얼즈 실적이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되고 업황도 회복되는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죠. 중국의 수요도 2분기 이후에는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제(11일) 롯데케미칼이 1분기 잠정실적을 공시했는데요. 4분기 연속 영업적자 행진을 이어갔습니다만, 적자 규모는 지난해 4분기보다 90% 이상 줄어든 262억원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출은 더 줄어서 분기 5조원 미만을 기록했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케미칼의 실적이 빨리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대규모 유상증자를 했지만 차입금 상환 부담을 크게 해소하지는 못할 것 같고요. 1분기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대금으로 2조4000억원이 빠져나갔고, 인도네시아 에틸렌 설비 증설 등에 2025년 상반기까지 대략 39억 달러(약 4조5000억원)의 투자가 진행 중입니다. 롯데지에스화학과 관련된 투자도 약 9500억원이 있고, 수소 등 친환경 투자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돈 들어갈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죠.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케미칼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한국신용평가는 EBITDA마진이 8% 미만, 총차입금/EBITDA가 3배를 초과하면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한다는 방침입니다. 지난해말 기준 롯데케미칼의 EBITDA마진은 0.8%, 총차입금/EBITDA는 34배에 이릅니다.  다른 평가사들도 비슷한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롯데케미칼이 신용등급 하향을 피하기 위해서는 차입금을 대대적으로 상환하거나 수익성(EBITDA)을 매우 큰 폭으로 늘려야 합니다. 하지만 신용평가사들은 EBITDA가 쉽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고, 대규모 투자계획을 감안하면 자체 능력으로 차입금을 상환하기 보다는 늘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죠.


롯데케미칼은 지난 2월에 5%대 금리로 5000억원 규모의 공모사채를 발행했는데요. 전액 기업어음과 만기도래 사채 상환에 사용됩니다. 이중 3800억원은 1%대와 2%대 금리의 공모사채와 기업어음을 갚는데 씁니다. 이런 식의 차환이 올해 내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롯데케미칼의 이자부담은 작년보다 훨씬 커질 수 있습니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은 롯데그룹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롯데케미칼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롯데지주, 롯데물산, 롯데렌탈과 롯데캐피탈, 어쩌면 롯데건설까지도 덩달아 신용등급 하락이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그룹의 신용도를 지키는 우산과 같거든요. 롯데그룹이 롯데케미칼 신용등급 하락을 막기 위해 어떤 정책과 전략을 펼칠 지 궁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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