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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디스플레이가 2018년 이후 디스플레이 업황 침체 당시에 3년 연속 적자를 내기는 했지만,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치산업답게 감가상각비의 규모가 커서 EBITDA도 흑자를 기록했고, 매출채권 회수와 매입결제 지연 등의 운전자본 관리를 통해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순유입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이후 침체의 영향은 최소한 재무적으로는 당시보다 심각해 보입니다. 올해 1분기 EBITDA는 80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6000억원에 가까운 순유출을 기록했습니다. 매입채무가 감소하는 등 운전자본이 현금흐름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동한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회사가 장사를 통해서 현금을 벌어들이지 못하면 빚을 갚기도 어려워지고 투자여력도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증자나 신규 차입으로 외부에서 현금이 보충되지 않는 한 보유현금을 소진하게 되고 빚을 갚거나 투자를 하려면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융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초 열린 IR에서 LG디스플레이는 EBITDA 내로 투자를 축소하겠다는 재무전략을 밝힌 바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올해 1분기 종료예정이던 대형 OLED 설비투자를 5년 뒤인 2028년으로 늦추었습니다. 대형 OLED 시장의 부진과 쪼들리고 있는 회사의 자금사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형 OLED 시장은 지난해 성장세에 급브레에크가 걸렸습니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LCD든 OLED든 대형 TV에 대한 수요가 크게 둔화됐기 때문인데요. 하이엔드 LCD TV의 판매가격이 급락하면서 고가인 OLED TV의 가격경쟁력이 더욱 낮아졌죠. 가전업체들이 OLED TV를 생산할 유인이 줄어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비를 늘려 대형 OLED패널을 생산해 봐야 재고만 늘어날 뿐이겠죠.
어떻게 생각하면 LG디스플레이로선 시간을 벌었습니다. 2021년까지는 OLED TV시장이 빠른 성장세를 보였으니 설비투자를 서둘러 중국업체들이 따라올 틈을 주지 않아야 했겠죠. 하지만 전방산업이 극도로 부진한 상황이라 BOE 등 중국업체들이 대형 LCD 부문에 대한 투자도 대부분 연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소형 OLED 부문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올해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되는 걸 계기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중국업체들의 추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대형 OLED 부문은 LG디스플레이가 가장 앞서 있지만, 중소형 OLED에서는 기술력이나 생산능력에서 삼성디스플레이에 밀리고 있습니다.
생산능력 기준으로 중소형 OLED부문에 대한 중국업체의 점유율은 불과 6~7년전만 해도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는 40%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실상 독점하다시피했던 시장입니다.
스마트폰에서 OLED 패널 채용율은 올해 거의 5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합니다. TV와 노트북 등 IT세트 등이 부진한 상황에서 매출확대나 수익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디스플레이업체에게 애플은 매우 중요한 고객인데요. 삼성과 LG의 패널을 주로 쓰던 애플이 2021년부터는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면서 중국 BOE 패널을 채용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일본 샤프도 공급업체에 포함시켰습니다. 삼성에 이어 확고한 2위를 노리는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서 중소형 OLED의 품질과 생산능력, 가격경쟁력 등에서 중국 및 일본업체들을 따돌려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에 직면한 셈입니다.
LG디스플레이의 자체 전망처럼 올해 하반기 이후 흑자 전환이 이루어지고 충분한 EBITDA를 창출한다면 투자자금 부담을 상당히 덜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흑자전환이 미루어지거나 흑자를 달성하더라도 그 수준이 크지 않을 경우 EBITDA 이내 투자의 목표가 지켜질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대형 OLED투자를 연기했지만 내년 이후에도 마냥 손을 놓고 있기도 어렵습니다. 삼성전자가 대형 OLED TV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선언했고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는 생산설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애플은 노트북 등 자사 IT 기기의 OLED 라인업 확대계획을 갖고 있죠. 모든 자원을 OLED에 쏟아붓고 있는 LG디스플레이가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대형 OLED 투자도 머지 않아 재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투자에는 결국 현금이 필요한데, LG디스플레이의 자금동원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차입금이 이미 너무 많습니다. 3월말 기준 17조원이 넘습니다. 지난 2017년말에 비해 3배로 늘었습니다. 차입금 부담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차입금을 전체 자산으로 나눈 차입금의존도가 있는데요. 2017년말 19%에서 지난해말 42%, 올해 3월말에는 무려 47%로 높아졌습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기업 중 지난해말 현재 LG디스플레이보다 차입금의존도가 높은 곳은 디엘과 현대자동차 둘뿐입니다.
돈을 잘 버는 기업이면 차입금이 많아도 금융권이나 금융시장에서 신규 차입이 어렵지 않겠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은 빚 많은 기업에게는 인색하게 마련이잖아요. 차입가능한 자금의 크기도 줄이고 금리도 더 높게 요구하게 되죠. 이를 나타내는 금융시장의 척도 중 하나가 신용등급인데,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올 들어 LG디스플레이 신용등급(A+)에 '부정적' 전망의 꼬리표를 달았고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A+였던 등급을 A로 하향조정했습니다.
빚이 많고 실적이 나쁘다고 신용평가사들이 바로 신용등급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상당한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는 편입니다. LG디스플레이 신용등급을 내리거나 내릴 준비를 하는 이유는 향후 실적에 대한 기대가 낮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용평가사들은 디스플레이 업황을 어둡게 보고 있고, LG디스플레이가 재무구조를 빠르게 개선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에게 신용등급은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매년 대규모 현금부족이 발생하고 있어서 금융권이나 금융시장을 자주 노크해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신규 차입에서뿐 아니라 기존 차입금을 연장할 때도, 더 높은 금리를 주어야 하고 차입처가 변경되는 리스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차입금이 왜 17조원까지 늘어났겠어요. OLED로의 사업전환을 위해 매년 대규모 투자를 해야 했는데,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으로는 투자금액을 대기 어려워 외부조달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죠. 지난 7년 동안 현금흐름 잉여가 발생하고 차입금을 순상환한 해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2021년 한번뿐입니다.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자본적지출이 44조원이 넘습니다. 반면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현금은 대략 30조원입니다. 그 동안 발생한 현금부족이 15조원이고 이로 인해 늘어난 순차입이 12조원이 넘습니다. 자산매각, 투자회수, 2019년과 2020년에 실시된 유상증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은 크게 늘어난 재무부담에 대해 LG디스플레이가 대응방안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차입금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최고의 방법은 열심히 벌어서 갚는 것이지만, 신용평가사들도 알고 있습니다. 당장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말이죠. 그러니까 신용등급을 낮춘 겁니다.
OLED에 대한 투자가 일단락되기 전까지는 LG디스플레이의 현금흐름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설비투자 지출이 줄고 OLED에서 적정이윤을 확보하게 되면 잉여현금흐름으로 차입금을 빠르게 갚아 나갈 수 있습니다. 사업전환으로 필요없어지는 LCD설비의 매각도 현금확보의 중요한 재원이 될테고요.
하지만 향후 몇 년 간은 여전히 우호적인 차입처와 유리한 조달수단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아무리 설비투자를 연기한다고 해도 자금이 부족해 꼭 필요한 투자까지 늦어져 OLED시장에서 주도권마저 위협받는 상황까기는 절대 가지 말아야 하니까요.
그래서일까요? LG디스플레이는 지난 3월 OLED 투자와 운영자금 목적으로 1조원의 차입계획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켰는데, 차입처가 은행도 아니고 금융시장도 아닌 최대주주 LG전자였죠. 3월과 4월에 2년 거치 1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각각 6500억원과 3500억원을 차입했습니다. 회사 소유의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제공하고 연 6.06%의 이자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투자도 필요하고 재무개선도 필요한 딜레마에 있는 LG디스플레이인데요. 최대주주에게 손을 벌렸다는 건 그룹 외부에서의 차입조달을 최대한 피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힙니다. 반대로 LG전자 등 그룹 측면에서는 LG디스플레이의 자금조달에 지원사격을 해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최대주주로부터의 차입은 더 이상 그룹 외부에서 자금을 빌리지 않겠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이(영업활동 현금흐름)가 부실하니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잇몸으로 버티어 보겠다는 것 같습니다.
잇몸으로 버티다가 더 이상 대규모 투자를 늦출 수도 없고, 재무구조 개선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떤 대책이 있을까요? 유상증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요한 자금도 확보하고 부채비율이나 차입금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이죠. 물론 최대주주인 LG전자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고 일반 주주들을 설득시켜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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