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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금에 인수될 당시 영풍제지의 현금유동성은 역대급으로 적었습니다. 인수된 게 지난해 11월인데 연말 결산을 해 보니 현금과 예금, 그리고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성자산이 91억원에 불과했습니다. 2000년 이후 가장 적었던 게 2015년 85억원이고 지난해 말이 두번째입니다. 전체 자산 중 현금성자산이 4.5%에 불과해서 7.3%였던 2015년말보다 '상대적으로' 더 적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풍제지의 현금성자산 비중이 연말 기준 20% 아래였던 적은 2000년 이후 5번뿐입니다.
지난해 초만해도 영풍제지의 현금유동성은 549억원(현금및현금성자산 113억원, 금융상품 436억원)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영업활동으로 유입된 현금이 126억원에 이르렀습니다. 또 금융자산을 처분해 393억원,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을 처분해 18억원이 유입됐죠. 자금조달로는 단기차입 50억원이 있습니다. 여타 투자활동이나 재무활동으로 자금유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연말 현금유동성은 1100억원에 달했을 겁니다.
이제 지난해 영풍제지가 어디에 그 많은 돈을 썼나 볼까요? 우선 은행 등 금융기관 차입금 143억원을 상환했습니다. 미수금이 줄고 단기대여금이 늘어 기타수취채권이 179억원 증가했습니다. 지난해말 대규모 대여거래가 이루어졌는데, 대양금속이 인수하기 전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유형자산 취득에 108억원, 무형자산 취득에 5.5억원이 지출되었습니다. 80억원 이상의 취득이 경영권 변동이 있었던 4분기에 이루어졌습니다. 배당으로 현금 38억원이 지급되었는데, 경영권 교체 이전에 나간 것이니 대양금속과는 무관합니다.
가장 많은 현금이 지출된 건 금융자산 취득입니다. 무려 580억원에 이릅니다. 지난해 자금의 유출입이 가장 크게 발생한 지점입니다. 393억원어치 처분했고 580억원어치를 취득해 순수하게 187억원의 현금이 순지출된 셈입니다.
지난해 대규모 현금 유출은 대양금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통상 무자본 M&A가 있은 후에는 피인수기업에서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이루어지지만, 영풍제지에서는 그런 거래가 없었습니다. 대신 새로운 최대주주 등을 향한 자금유출이 발생합니다.
유형자산 매입 중 30억원, 무형자산 매입 5.5억원의 거래 상대는 대양금속이었습니다. 유형자산은 토지로 추정되고, 무형자산은 회원권이었습니다. 대양금속과 영풍제지는 이 유무형자산 거래에 대해 별도의 공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여거래로 거액이 회사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대양금속은 두 차례에 걸쳐 240억원을 영풍제지에서 차입해 그 중 70억원을 상환했습니다. 대양금속의 최대주주이자 대양금속의 실질 사주인 이옥선씨 개인회사 대양홀딩스컴퍼니도 14억원을 영풍제지에서 빌렸습니다. 최고경영자 층으로 추정되는 주요 경영진에도 2억원이 대여되었습니다. 또 대양금속은 영풍제지 인수 후 170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했고, 영풍제지가 전액 인수했습니다.
지난해 4분기 대량으로 이루어진 영풍제지의 자금거래를 요약하면, 최대주주가 바뀌지 않았다면 사내에 유보되었을 현금 약 400억원이, 유무형자산 매입, 전환사채 매입, 금전대여 등의 형태로 최대주주인 대양금속과, 대양금속의 최대주주 대양홀딩스컴퍼니로 이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영풍제지의 현금유동성은 269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매출채권 회수와 재고자산 감소 덕에 영업활동에서 지난해 동기보다 두배 이상 많은 86억원의 현금유입이 이루어졌고, 금융자산을 처분해 569억원의 현금유입이, 금융자산을 처분해 417억원의 현금유출이 각각 이루어졌습니다. 지난해말 해당 금융자산의 장부가액은 230억원가량이고, 6월말 현재 잔액은 66억원 정도입니다. 상반기에 금융자산의 잦은 매입과 매도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풍제지는 해당 금융자산의 내역을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자산 거래로 이익을 내지도 못했습니다. 처분으로 인한 거래손실이 15억원가량 발생했고, 평가이익이 16억원가량 발생했거든요. 그런데 지난해말 영풍제지의 금융자산 중 가장 큰 게 대양금속 전환사채(액면 170억원)였거든요. 올해 상반기 처분한 금융자산 중 가장 굵직한 자산이 이것입니다. 이 전환사채는 상반기말 결산 직전에 전액 조기상환되었습니다. 금융자산 거래손실이 여기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지요. 현재 영풍제지는 아이텍㈜가 발행한 액면 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평가이익 16억원이 발생한 금융자산으로 추정됩니다.
시스템반도체 테스트업체인 아이텍은 코스닥 상장업체이고, 주주는 포틀랜드아시아라는 곳인데요. 아이텍의 최현식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장부상회사로 추정됩니다. 최현식 회장은 기업가나 전문경영인 출신은 아니고 더벨 보도에 따르면, 자본시장에서 재무적투자자로 활동하다 처음으로 오너십을 가진 회사가 아이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틀랜드아시아는 아이텍 지분 9.80%를 보유하고 있고, 최현식 회장의 개인지분 4.60%를 더해도 14.40%로 낮은 편입니다. 포틀랜드아시아는 지난해말 현재 자산총액이 188억원인데, 부채가 145억원에 달합니다. 아이텍 인수자금의 대부분이 차입금으로 이루어졌을 겁니다. 아이텍은 3년 연속 적자를 이어오다 지난해 경기도 분당의 부동산을 360억원에 매각하면서 220억원의 흑자전환에 성공한 회사입니다.
아이텍은 올해 4월에 201억원 규모의 4회차 사모 전환사채를 발행했는데요. 이때 영풍제지가 인수자로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코스닥상장사인 베노티앤알(구, 베노홀딩스), 리더스기술투자, 플루토스홀딩스 등 14개 법인과 개인이 십시일반 인수를 했고, 그 중 가장 많은 60억원을 인수한 곳이 제주벤처캐피탈인데, 영풍제지는 제주벤처캐피탈이 인수한 전환사채 중 50억원을 넘겨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풍제지와 제주벤처캐피탈 사이에는 아이텍 전환사채와 관련된 옵션계약이 체결되어 있는데요. 제주벤처캐피탈이 50억원 전환사채 전액에 대해 올해 7월말과 10월말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양수도대금은 영풍제지의 매수금액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콜옵션이 행사된다면, 영풍제지는 사실상 무이자로 제주캐피탈에 50억원을 빌려준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제주벤처캐피탈은 최수인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지난해말 현재 자본금 1000만원, 자본총계 1억원으로 설립한 법인입니다. 대규모 증자나 차입이 없이는 아이텍 전환사채를 60억원인 인수할 수 없었겠죠. 콜옵션이 행사되지 않는다면, 영풍제지가 제주벤처캐피탈을 앞세워 아이텍 전환사채에 50억원을 투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풍제지는 대양금속 전환사채 170억원을 조기상환 받은 것에 더해 같은 금액의 대여금도 상환받았습니다. 하지만 대양홀딩스컴퍼니에 대한 금전대여는 30억원으로 늘렸습니다. 또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에서 총 100억원을 신규 차입했는데요. 그보다 많은 106억원을 주주에 대한 배당금으로 현금 지급했습니다.
영풍제지의 결산배당 규모는 역대 최대인 것은 물론이고 과거 약 8년치 배당총액과 맞먹습니다.지난해 말 현재 50.76%의 지분을 보유한 대양금속이 약 50억원의 배당을 받아갔을 것입니다. 대양제지가 지난해 받은 배당금은 2억3000만원가량이었지만 영풍제지의 대규모 배당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69억원으로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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