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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우스앤밸류가 인수하기 전 청보산업의 전성기는 2010년~2014년까지입니다. 매출액이 200억원 중반대까지 증가하고 영업이익도 두 자리수를 이어갑니다. 현금흐름도 원활한 편이어서 영업활동으로 유입되는 현금이 연간 30억원대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매우 빠듯한 살림이었습니다. 매출은 정체되거나 조금씩 줄었고 이익이 거의 나지 않는 해가 이어졌습니다.
여러가지 악재가 겹쳤습니다. 세계 자동차시장의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됐고,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는 침체에 빠졌습니다. 청보산업의 주요 고객 중 하나인 GM의 시장점유율은 쌍용차에도 밀리는 부진을 보였습니다.
자금사정은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영업활동에서 유입되는 현금이 줄어 설비투자 규모를 크게 축소해야 했습니다. 최대 고객이던 미국 다임러의 베어링저널 수요량이 크게 증가하자 적지 않은 자금을 들여 공장을 증설했지만 경기둔화가 찾아오면서 2019년에는 대규모 현금부족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2020년 코로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완성차 시장이 극도의 부진에 빠졌습니다. 청보산업은 최대고객인 다임러 벤츠 등의 재고증가로 수출물량이 감소하는 와중에 코로나19로 생산이 중단되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매출액은 30% 이상 급감했고 매출원가는 매출액을 상회했습니다. 회사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고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사실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합니다. 막대한 현금부족과 차입금 상환을 위해 전환사채 40억원 포함 총 180억원에 달하는 역대급 차입으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됐습니다.
창업자 일가는 결국 2020년 12월초 그로우스앤밸류디벨로프먼트(이하 그로우스앤밸류)가 조성한투자조합(그로우스앤밸류13호 투자조합)과 경영권 지분에 대한 양수도계약을 체결합니다. 17.2%의 지분에 해당하는 141만주를 주당 1만원씩 141억원에 양도하기로 합니다. 회사에는 역대 최대인 43억원의 현금성자산과 역대 최대인 192억원의 차입금, 그리고 역시 역대급으로 많은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이 쌓여 있었습니다.
주인이 바뀌고 회사명을 CBI로 변경하고 나서 매출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완성차 시장이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특히 수출이 호조를 보입니다. 지난해 CBI의 연결매출액은 36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폭발적으로 증가한 매출액에 비하면 미미한 4억원에 불과했습니다.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 등 영업비용도 크게 늘었기 때문인데요. 이게 잘 이해가 안되는 대목입니다. 코로나 이전 비용구조가 유지되었다면 영업이익이 50억원 가까이 났어야 하거든요.
지난해 영업비용 356억원 중 급여는 62억원이었습니다. 주인이 바뀌기 전인 2020년 40억원에 비해 50% 늘었고, 2019년 52억원과 비교해도 10억원이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사업보고서 상 2019년말 직원 수는 104명, 연간 급여총액은 43억원이었고, 2020년말 직원수는 97명, 연간 급여총액은 35억원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2022년 직원 수는 45명으로 줄었고, 연간 급여총액은 17억원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직원 수와 연간 급여총액은 절반 이하로 줄었는데, 영업비용에 포함된 급여는 오히려 크게 증가했습니다.
총급여 중 직원에게 지급된 나머지는 임원의 급여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업보고서상 지난해 임원에게 지급된 보수는 4억7700만원으로 2019년 4억8100만원에 비해 늘지 않았습니다. 사업보고서와 손익계산서에 보고된 숫자에 오류가 없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직원 수가 잘못되었거나, 임원에게 지급된 급여가 사업보고서상 보수액과 다르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직원 수에 착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동차부품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면서 본사와 자회사에 직원이 나누어졌고, 사업보고서에는 본사의 직원만 기재한 것이라면 부정적인(?) 의심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업보고서의 직원이 속한 사업부문은 모두 자동차부품 사업이지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분할을 하면서 임대사업과 자동차부품 중 타펫과 하우징은 본사에 남겨 두었거든요.
CBI는 2021년 7월 자동차부품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면서 모회사 상호를 CBI로, 자회사 상호를 청보산업으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에는 투자 자회사 CBI USA를 설립했고 국내에는 전기상용차 판매회사인 코아시스를 설립했습니다. 미국 자회사는 현지 신약개발 회사 지분 취득을 위해 세운 것이니 당연히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코아시스 역시 2년 연속 매출이 없습니다.
자회사 청보산업은 지난해에 152억원의 매출과 5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모회사 CBI의 연결 매출액은 360억원, 개별 매출액은 336억원입니다. 차이가 거의 없죠. 청보산업과 CBI 사이의 내부매출이 제거되어서 그런 것인데, 청보산업의 매출액 대부분이 CBI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개별 매출액 336억원 중 제품 매출액은 195억원, 상품 매출액이 137억원입니다. 195억원은 모회사 CBI가 직접 만들어 팔았고, 137억원은 청보산업에서 매입한 걸 판매만 했다는 겁니다. 제품 매출액 대부분은 자동차부품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면서 본사에 남겨 두었던 타펫과 하우징 등에서 주로 발생했습니다.
제품 매출이든 상품 매출이든 모두 물적분할 이전 청보산업이 영위하던 자동차부품사업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물적분할을 하면서 CBI가 집중하겠다던 환경사업(ESG), 전기차사업(ECV), 도심항공교통(UAM)에서는 전혀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세좋게 내놓았던 신사업들은 구호에 불과했군요.
정말로 큰 변화는 영업 외적인 측면에서 일어났습니다. 매출이 크게 늘고 영업흑자 전환이라는 화려한 성공에 무색하게 CBI는 2021년 123억원, 지난해 297억원(이상, 연결 기준)의 대규모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무려 384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죠.
자회사를 제외한 CBI 개별 기준의 영업외 손실은 414억원으로 더 많았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 금액이냐면 말이죠. 과거 청보산업이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올린 순이익 합계가 54억원입니다. 그때까지 청보산업은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을 포함해 적자를 기록한 적이 세 번 뿐이었고, 세 번의 적자를 다 합해도 79억원에 불과했습니다. 영업외 손실이 10억원을 넘은 것도 2008년과 2020년 딱 두 차례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수출 비중이 높다 보니 외환관련 손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60년간 한우물을 팠고 외부차입을 최소화해 영업 외적으로 이익이나 손실이 발생할 게 거의 없었습니다.
대대적으로 늘어난 영업손실의 대부분은 금융자산과 차입금에서 나왔습니다.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 평가손실만 216억원에 달했습니다. 이자비용도 29억원 발생했습니다. 새 주인이 들어서면서 본업보다는 KINETA, EXICURE 등 미국 신약개발회사, 대한그린파워(DGP), SBW생명과학(구 나노스) 등 국내 코스닥상장사 투자에 열중하면서 전환사채를 대거 발행하는 바람에 금융부채 증가로 이자비용이 커졌고, 투자한 곳 대부분에서 손실을 입었습니다.
특히 SBW생명과학, KINETA, EXICURE의 손실이 컸습니다. 50억원에 취득한 SBW생명과학은 지난해말 장부가액이 9억원에 불과하고, KINETA 지분 취득에 172억원을 썼지만 평가액은 54억원으로 낮아졌습니다. EXICURE 역시 61억원인 취득가액이 지난해말 12억원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CBI의 매출은 여전히 거의 전부 자동차부품사업에서 발생하지만, 실제로 회사의 실적을 좌우하는 건 따로 있었던 셈입니다. 올들어 9월까지 CBI는 지난해 동기보다 다소 부족한 240억원의 매출(연결 기준)을 올렸습니다. 영업이익은 1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억원 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13억원의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이유는 지난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자비용으로 27억원, 금융자산 폎가손실과 처분손실로 50억원,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상환손실로 16억원, 손상차손이 포함된 기타손실로 46억원, 관계기업 주식처분손실로 10억원이 발생했습니다.
매출은 여전히 거의 전부 자동차부품사업에서 발생하고 있고, 신사업의 매출은 감감무소식입니다. 2021년에는 로봇사업과 2차전지사업 및 신약개발업을, 2022년에는 콘텐츠사업 블록체인기반 소프트웨어 개발업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했지면 관련 매출은 전혀 없습니다. CBI는 이달 주주총회에서 텅스텐 광권 보유업체 구보 지분인수를 반영해 광물 관련업 등을 사업목적에 다시 추가했습니다. 정관에 올리는 목적사업 대부분이 주식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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