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태영건설을 워크아웃으로 이끈 사업으로 성수동 오피스2 개발사업이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수동 오피스2 사업은 유동성 위기의 마지막 돌이었을 뿐입니다. 문제 사업장이 그것 하나뿐이었다면 태영건설이 PF채무를 인수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이미 다른 사업장의 채무를 떠안느라 유동성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성수동 오피스2 사업의 시행사는 성수티에스2차피에프브이인데 장부상회사입니다. 시공사인 영건설(지분율 3.2%) 등이 50억원의 자본을 대고, 에이블성수제일차 유동화회사의 PF유동화로 400억원을 조달해 토지매입 등 초기사업비로 사용한 모양입니다.
시행사는 사업부지 전부를 매입한 후 인허가 절차를 거쳐 올해 6월에 착공을 목표로 했고, 유동화회사로부터 차입한 자금은 사업부지 일부의 중도금과 초기 사업비 용도였습니다. 400억원 차입금의 만기는 지난해 12월 16일이었습니다.
채무자인 시행사도 장부상 회사, 채권자이며 유동화증권을 발행한 에이블성수제이차도 장부상 회사잖아요. 자체적인 상환능력이 있을 리 없죠. 그래서 시공사인 태영건설이 차입금에 대한 보증을 서고, KB증권이 유동화증권에 대한 사모사채 인수확약을 해서 신용을 보강했습니다. 사실상 태영건설의 채무였던 셈이고, 여차하면 KB증권이 채권자가 되는 구조였습니다.
별 일이 없었으면 유동화회사는 3개월마다 유동화증권을 재발행하며 만기까지 기다렸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 금리상승과 PF시장에 신용경색이 발생하면서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예요. 처음에 한달 만기로 400억원의 유동화증권이 발행되었는데, 한달 후에는 절반인 200억원어치만 재발행되었죠. 계약대로라면 나머지 200억원은 KB증권이 책임을 졌을 겁니다. 유동화증권 상환자금이 부족할 경우 사모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유동화회사(에이블성수제일차)에 자금을 보충해 주기로 했으니까요.
8월 이후 금융시장은 더욱 경색되었고, 부동산PF시장은 멈추어서다시피했습니다. 에이블제일차성수가 발행한 200억원의 유동화증권도 지난해 9월16일 만기 이후 재발행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KB증권과 유동화회사 간 지급보증계약도 종료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시행사(성수티에스2차PFV)가 유동화회사(에이블성수제일차)에게 400억원을 갚아야 할 만기가 되었습니다. 시행사에 상환자금이 없는 건 당연하고, 태영건설이 대신(?) 갚아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태영건설은 바로 직전에 부천시 오정동 군부대 이전사업(시행사 ㈜네오시티)의 유동화회사가 발행한 PF유동화증권 175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등, 성수동 사업보다 규모가 큰 다른사업의 PF차입금을 막느라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날(12월 18일) 태영건설의 대주단이 자율 협의회를 열어 10일을 말미를 줍니다. 태영건설은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장부가액 541억원인 관계회사 포천파워㈜의 지분 전량을 420억원에 팔았지만 그 사이 다른 PF차입금을 인수해야 하는 부담이 겹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수동 오피스사업과 관련된 PF차입금은 400억원이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성수티에스2차PFV보다 앞서 태영건설의 채무보증을 받아 대출계약한 350억원의 차입금이 더 있습니다. 빅트라이앵글PFV라는 장부상회사가 유동화회사 세레스제일차㈜에게서 성수동 오피스 3차 개발사업과 관련된 사업비 명목으로 빌린 돈입니다.
빅트라이앵글PFV에는 당초 사업비를 지난해 3월 자산운용에서 차입했습니다. 그 만기가 12월5일이었죠. 이 차입금을 돌려 막기 위해 태영건설의 보증을 전제로 세레스제일차㈜를 통해 유동화증권을 발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레스제일차㈜의 유동화 정보는 찾을 수가 없네요. 신용평가를 받은 흔적도 없고, 유가증권 발행정보를 서비스하는 증권예탁원 목록에도 없습니다.
성수동 오피스 개발 PF차입금이 태영건설을 워크아웃으로 몰고 갔다고 하지만, 이 차입금은 태영건설의 장부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채무자는 시행사이고, 태영건설은 보증채무를 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개발사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PF 보증채무는 언제든지 시공사의 차입금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부동산 개발사업의 시행사는 대부분 부실하거나, 성수동 오피스사업처럼 시공사가 내세운 장부상 회사일 뿐입니다. 그 어떤 금융기관도 그런 시행사를 믿고 대출을 해 주지는 않죠.
지난해 12월 현재 태영건설의 PF대출보증은 7조4422억원에 달합니다(기타로 묶인 약 1.1조원은 22년말 기준 연결자기자본(7400억원)의 10% 미만의 대출보증임). 미사용한도를 제외한 실제 대출잔액은 5조5198억원에 이릅니다. 이중 태영건설의 연결 재무제표 상 차입금에 포함된 건 대략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언론에서 태영건설을 워크아웃으로 몰아넣은 게 성수동 오피스사업 PF라고 하지만, 그 400억원은 작은 PF를 모아놓은 1조1000억원 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오히려 자회사 네오시티가 진행 중인 부천시 오정동 군부대사업처럼 장기 지연되고 있는 대규모 사업장과 매년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인제스피디움 같은 곳이 더욱 심각한 문제였을 겁니다.
인제스피디움의 경우 SOC 채무인수약정을 맺고 있어 PF대출보증에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종속회사 또는 관계회사에 대한 SOC 지급보증도 9000억원이 넘습니다. 이 전부가 PF가 아니라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지난해 태영건설의 유동성을 크게 축소시킨 것 중에는 제3자에게 제공한 대여금이 있는데요. 2022년말까지 약 1900억원이던 대여금이 9개월만에 4,234억원까지 늘었습니다. 이중 대부분 시행사인 종속회사 또는 관계회사 대여금이 1,000억원이 넘습니다.
태영건설은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도 PF 자금보충약정(미이행시 채무인수)을 늘려 왔습니다. 지난해 10월에만 김해 삼계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해 300억원, 홈플러스 도대전점 부지개발 사업과 관련해 919억원의 자금보충 약정을 했습니다. 삼계지구 300억원은 같은 액수의 유동화증권 매입으로 이어졌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은 1월초 채권단이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할 텐데요. 유동성 위기가 다른 건설사로 전이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채권단이 받아들이겠지만, 행여 거절을 당하거나 채권단 사이에 입장이 엇갈려 갈등이 빚어질 경우 태영건설과 공동 시공을 하고 있는 다른 건설사들에게 1차적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비계열로 묶인 4조4926억원의 PF가 대부분 그런 사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포도시공사가 벌이고 있는, PF대출계약 규모 9490억원에 이르는 풍무역세권개발사업(대우건설, 태영건설, 호반건설 시공)이 있습니다. 이 사업을 위해 뉴스타김포풍무, 아이에스풍무, 지아이비풍무 등 유동화회사가 각각 650억원씩의 유동화증권을 발행했죠.
워크아웃과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것이 상장채권의 기한이익 상실(EOD)입니다. 태영건설이 발행한 회사채는 총 2,800억원인데요. 이 중 공모사채인 1000억원에 대해 사채관리회사인 현대차증권이 사채권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기한이익 상실을 선언했습니다. 만기(올해 7월 19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상환요청을 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겁니다. 사채권자들이 은행 등 다른 채권자들과 행동을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앞으로 태영건설의 채무조정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제작하는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DRCR(주)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