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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지주회사 SK㈜는 지난 2017년 역대 최대 규모의 각종 지분투자를 감행합니다. 중국 물류센터사업에 진출한다며 중국 2위 물류센터 업체인 ESR케이만 지분 11.77%를 취득하는데 3억333만달러(3720억원 상당)을 쓰고, 북미 셰일가스 이송 및 가공업체인 유레카미드스트림홀딩스(Eureka Midstream Holdings, LLC)에 투자하기 위해 1억달러(1172억원 상당)를 들여 미국에 플루투스캐피탈이라는 100% 자회사를 세웁니다.


2017년 SK㈜가 종속기업과 관계기업 지분 취득에 투입한 자금은 총 1조6000억원에 이릅니다. 그 전에 M&A에 가장 많이 투자한 건 SK머티리얼즈 인수가 있었던 2016년의 6400억원이었죠. 지주회사 SK㈜가 그룹 확장의 전면에 나선 시절입니다. 2016년 이전에는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등 그룹의 M&A를 대표했고, 2018년 이후에는 SK이노베이션이 주인공이죠.



SK㈜가 2017년 진행한 최고의 딜은 8월에 이루어진 SK실트론 인수입니다. 반도체 소재사업 확장이라는 명분으로 LG가 보유하고 있는 LG실트론 지분 51% 전부를 6200억원에 현금취득합니다. SK실트론 인수는 지금까지도 아주 유명한 거래로 손꼽히는데, SK㈜와 최태원회장이 잔여지분 인수를 위해 활용한 총수익스왑(TRS) 계약 때문입니다.


SK㈜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KTB PE가 보유하던 SK실트론 지분 19.6%를 1600억원에 인수하는데, 직접 나서지 않고, NH투자증권이 설립한 장부상회사(SPC)와 TRS계약을 통합니다. 장부상회사가 전자단기사채 발행 등으로 1600억원을 조달해 SK실트론 지분을 사지만, 그 지분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과 손실이 SK㈜에 귀속되죠. 최태원 회장도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이 설립한 SPC와 TRS계약을 맺고 2535억원에 SK실트론의 남은 지분 29.4%를 사들입니다. 최태원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취득은 이후 회사의 사업기회를 가로챈 것이라며 공정위 제재를 받았지만, 올해 1월 고등법원이 정당한 지분 취득을 주장한 최태원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죠.


소송과 별개로 최태원 회장은 당시 보유한 금융자산으로 2000억원이 넘는 지분을 취득하기 어려워 TRS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SK㈜는 왜 추가 지분 19.6%를 현금으로 취득하지 않고 증권사에 비싼 수수료를 내야 하는 TRS계약을 맺었을까요? 보유 현금이 부족하더라도 신용등급이 AA+로 초우량기업에 속했기 때문에 회사채를 발행하면 쉽게 인수자금 조달이 가능했습니다.


SK㈜는 현금을 쌓아두는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현금과 금융상품을 합해 늘 2000억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회사 배당금이 주요 투자재원이었는데 연간 6000억원~7000억원 수준이었죠. 제한된 현금에 갑자기 막대한 투자를 하다보니 차입금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2년 연속 회사채 발행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섰고, 금융기관 차입금도 커졌습니다.


2017년에 자회사 배당금 6918억원을 포함해 영업활동에서 확보한 현금 7418억원에 회사채 발행 등으로 순차입한 1조1000억 여원 대부분이 M&A자금으로 쓰였죠. 특히 SK실트론 인수 다음 달에는 1억 달러 규모의 북미 G&P회사 투자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SK실트론 지분취득에 더 이상의 현금을 사용하기는 곤란했을 겁니다.


SK㈜은 2017년에 SK실트론 뿐 아니라 SK해운, SK이엔에스(SK E&S) 주식으로도 TRS계약을 체결했습니다. SK이엔에스는 그해 11월 464만주의 신주를 발행해 6778억원의 유상증자를 했는데요. 신주를 100% 지분을 보유한 모회사 SK㈜가 인수하지 않고, 미래에셋이 설립한 장부상회사인 엠디프라임제일차 및 엠디프라임제이차가 하고, SK(주)는 이 장부상 회사들과 TRS계약을 하게 됩니다. 이 역시 자금조달과 재무구조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엠디프라임제일차는 4000억원의 유동화전자단기사채(ATSTB)를 발행한 자금으로, 엠디프라임제이차는 2778억원의 유동화기업어음(ABCP)를 발행한 자금으로, 각각 274만주와 190만주의 SK이엔에스 신주를 인수하고, TRS계약에 따라 신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수익과 손실을 SK㈜에서 정산받는 대신 신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현금흐름(배당금 등)을 SK㈜에 지급하기로 합니다. SK㈜는 그 대가로 장부상회사에 고정된 수수료를 지급하는 계약이죠.


원래 TRS계약기간은 2022년까지였는데, 5년 연장돼 2027년 11월이 계약만기가 되었습니다. SK이엔에스는 그 동안 기업공개(IPO)를 추진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2년 신종자본증권을 대량 발행한 적이 있는데, 기업공개 수순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죠. 처음 2022년을 TRS 정산만기로 잡은 것은 그때까지 기업공개를 하겠다는 계획이 반영돼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TRS 정산을 위해서는 장부상회사들이 무려 464만주를 처분해야 하는데, 상장을 했거나 상장을 앞두고 있지 않다면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비상장사 주식을 대상으로 하는 TRS의 정산은 기업공개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TRS 정산을 위해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건 만기가 2027년으로 연장되었어도 바뀌지 않습니다. 스왑 계약 상 장부상회사들은 정산만기일 직전 일정기간 동안 SK이엔에스 주식을 공매 또는 블록 딜로 처분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장부상회사는 SK㈜에 매도를 할 수도 있고, SK㈜는 콜옵션을 행사해 장부상회사로부터 SK이엔에스 주식을 매입할 수 있습니다.



엠디프라임제일차와 제이차의 자금조달 구조도 좀 바뀌었죠.  ABCP와 ABSTB 중심이던 장부상회사의 자금조달이 ABCP와 ABL(자산담보대출)을 섞은 구조로 달라졌죠. ABL과 ABCP 등의 만기는 모두 2027년 11월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TRS계약을 또 다시 연장하지 않는다면 그 즈음에는 장부상회사가 SK이엔에스 주식을 매각하게 되죠.


그런데 만약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가 합병을 하게 되면 장부상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어떻게 될까요? SK이엔에스 주식을 SK이노베이션 주식으로 교환해 TRS계약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SK㈜에게 상당한 기회이거나 위험일 수 있습니다. 정산시점인 2027년 11월에 SK이노베이션 주가가 합병당시 교환가격에 비해 크게 오르면 SK는 이익을 얻겠지만,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 장부상회사의 손실이 고스란히 SK㈜의 몫이 됩니다.


SK온이 재무적 투자자들과 약속한 기업공개 시점이 2026년입니다. 그런데 SK그룹 측에 의하면 '1+1'옵션이 있어서 2028년까지 상장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SK온이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 때 상장할 수 있기를 바랄 겁니다. 불행하게도 SK온의 실적개선이 지연되면 SK이노베이션의 주가가 합병가격보다 높아질 가능성은 낮아지게 되겠죠.


SK㈜가 SK이노베이션과 합병 전에 장부상회사에게 콜옵션을 행사해 SK이엔에스 주식을 매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장부상회사는 고정수수료만 받으면 되니 문제가 없고, SK㈜는 장부상회사의 원금에 해당하는 가격에 매입해 SK이노베이션 주식으로 교환하면 됩니다. 수익과 손실의 정산 문제가 없죠. 하지만 이 경우에는 돈이 문제가 됩니다.


올해 3월말 현재 SK㈜의 연결재무제표상 현금성자산(현금과 금융상품)은 28조원에 달하지만, 대부분 현금은 자회사들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SK㈜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4299억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향후 1년동안 갚아야 할 단기성 차입금만 5조원이 넘습니다.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아닙니다.


그렇다고 TRS계약을 마냥 끌고 가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SK㈜는 엠디프라임제일차와 제2차에 3개월마다 고정이자를 지급하고 있는데 3개월 CD금리에 1.80%를 가산한 금리가 적용됩니다. 현재 3개월 CD금리가 3.60% 정도이니 5.4% 수준입니다. TRS거래 명목금액 6778억원에 연율 5%만 적용해도 340억원에 달합니다. 10년이면 3400억원, 원금의 절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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