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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이 지난 7월17일 작성한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 합병비율 Review: SK그룹, 도시가스업 포기 방침 세웠나?'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두 가지는 첫째,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을 주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회사의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최대주주인 ㈜SK 외 일반 주주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점과 둘째, SK이엔에스가 3조원대 상환전환우선주의 현물 상환을 전제로 합병가액을 산정했는데, 이는 핵심 사업인 도시가스업의 포기 방침이 없고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합병 발표 이후 복수의 언론사에서 도시가스업을 글로벌 사모펀드 KKR에 양도해 상환전환우선주를 상환할 것인지를 취재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달 1일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SK이엔에스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한 처리 방침이 일부 공개되었습니다. 김지원 SK이노베이션 재무본부장이 'SK이엔에스가 지난달말 상환전환우선주의 보장수익률을 9.9%로 상향했는데, 이는 현금상환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며 '상환전환우선주의 최종 만기 시점에 현금상환을 결정하지 않는 한 보장 수익률의 상향이 SK이엔에스 혹은 SK이노베이션의 주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죠.


또 지난달 18일에는 SK이엔에스 박상규 사장이 '상환전환우선주는 합병이 완료되기 전까지 유상감자, 상환, 기타 여러 방안을 통해 소멸시킬 예정이고, 만약 소멸되지 않을 경우 합병을 위한 선행조건 불충족으로 합병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KKR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상환전환우선주를 소멸시키려면 KKR이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SK이엔에스가 현금 또는 현물로 상환해야 하죠. 그런데 합병안에는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 보통주로의 전환을 놓고 협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상환 방법과 시기에 대해 조율 중이라고 봐야겠죠. 결국 합병 전에 상환한다는 의미입니다.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의 합병기일은 11월 1일입니다. 이달 2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을 승인하게 되면 SK이엔에스는 합병의 선행조건 충족을 위해 10월말까지는 3조1350억원의 상환전환우선주를 소멸시켜야 합니다. SK이노베이션 재무본부장이 현금상환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도 했고, 약 2개월 남짓 남은 기간에 3조원 이상의 대규모 현금을 조달해 상환전환우선주를 상환한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으니 아무래도 현물 상환, 다시 말해 7개 도시가스 자회사를 KKR에 양도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입니다.



SK이엔에스의 합병가액인 주당 13만3947원은 자본시장법상 비상장사가 상장사와 합병할 때 적용하는 평가방법인 본질가치법으로 산출됐습니다. 자산가치의 40%와 미래 수익가치의 60%를 더한 값입니다. 본질가치법은 상속∙증여세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나 기업가치 평가방법의 하나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적당히 버무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건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다른 평가방법들과 비교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죠.


상장사와 비상장사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으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평가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자산가치법과 수익가치법은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들이지만, 자산가치로 평가하는 게 적절한 경우가 따로 있고 수익가치로 평가하는 게 적절한 경우가 따로 있죠. 가령, 자체 사업이 없는 지주회사나 사업초기인 벤처기업의 경우 자산가치로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엄연히 본업이 있고, 본업을 통해 수익창출을 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미래 수익가치로 평가하는 게 맞습니다. SK이엔에스가 비상장사라서 SK이노베이션처럼 주가로 평가할 수 없다면, 미래 수익가치로 평가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죠.


SK이엔에스의 합병가액을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버무린 13만3947원으로 하는 것보다는 수익가치인 16만8262원으로 보는 게 오히려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가치법을 적용한 것은 자본시장법의 잘못된 규정 때문입니다. SK그룹이나 외부평가를 맡은 회계법인을 탓하기는 어렵죠.



SK이엔에스의 자산가치 8만2475원은 상환전환우선주 3조1350억원을 현물상환, 다시 말해 도시가스업의 양도를 전제로 평가한 결과입니다. 합병을 위해 조정한 SK이엔에스의 순자산가액은 약 6조원이었고, 순자산 중 보통주주의 몫이 아닌 상환전환우선주와 신종자본증권(약 7275억원)을 차감한 3조8269억원을 보통주식 수로 나눈 값입니다.



현물상환을 전제로 한 상환전환우선주의 평가액은 1조4603억원이었습니다. 현물상환의 대상인 7개 도시가스 자회사의 가치가 1조4603억원이었다는 것입니다. 평가일 현재 각 도시가스 자회사의 장부상 순자산을 더한 값입니다. 각 사의 '장부상' 순자산이니 당연히 각사의 공정가치라고 할 수 없습니다.


SK이엔에스 수익가치 16만8262원은 SK이엔에스가 미래 창출할 것으로 전망되는 현금흐름의 가치와 비영업자산의 가치를 더해 기업가치를 우선 구한 다음, 부채와 상환전환우선주를 차감한 보통주 주주가치를 발행주식 수로 나눈 값입니다. 비영업자산의 가치는 SK이엔에스의 비영업자산과 투자주식(7개 도시가스 자회사를 포함한 자회사, 관계회사, 공동기업 등의 지분가치)의 가치로 나뉩니다.



그런데 수익가치를 산정할 때는 주주가치에서 차감할 상환전환우선주의 가치를 3조1335억원으로 산정했습니다. 자산가치를 산정할 때와 달리 상환전환우선주를 현물상환을 전제로 하지 않고 현금상환을 전제로 평가한 결과입니다. 상환전환우선주의 평가방법으로는 이항옵션평가모형 중 하나를 적용했는데, 옵션이 포함된 유가증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자산가치를 평가할 때는 현금상환보다 현물상환이 유리하다며, 현물상환을 전제로 상환전환우선주를 1조4603원으로 산정했는데, 수익가치를 평가할 때는 현금상환을 전제로 상환전환우선주의 가치를 산정한 겁니다. 현물상환을 전제했으면 수익가치를 구할 때도 상환전환우선주의 가치를 현물인 7개 도시가스 자회사의 가치로 산정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SK이엔에스의 수익가치 산정을 위해 7개 도시가스 자회사의 가치를 구할 때는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할인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그렇게 구한 7개 도시가스 자회사의 가치는 3조6457억원이었습니다. 현금상환을 전제로 한 상환우선주의 가치보다 5000억원 이상 높았습니다.


자산가치를 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환전환우선주의 현물상환을 전제로 했다면 SK이엔에스의 수익가치는 16만8262원이 아닌 15만7222원이 되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SK이엔에스의 합병가액 역시 13만3947원이 아니라 12만7323원이 되었을 것이고, 두 회사간 합병비율은 1.19가 아닌 1.32가 되었을 겁니다. SK이노베이션이 합병가액을 자산가치로 할 경우에 비하면 일반 주주의 피해가 훨씬 적기는 하지만, 이 역시 SK이노베이션의 일반 주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참고로,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을 자산가치인 24만5405원으로 하고, SK이엔에스의 상환전환우선주를 현물상환한다고 가정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구했다면, 합병비율은 1.19가 아닌 0.52가 되었을 것입니다. SK이노베이션 주식 1주와 SK이엔에스 주식 약 2주가 교환되는 비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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