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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액 주주의 권익을 무시하고 지배주주 중심의 경영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두산그룹과 SK그룹을 저격했는데요. SK그룹의 경우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의 합병비율을 문제 삼은 것이 확실하지만, 두산그룹의 경우 두산밥캣의 분할합병 비율만을 지적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두 사례는 확실한 차이가 있는데, SK그룹의 경우 SK이엔에스가 비상장사이며 사실상 100% 주주가 ㈜SK인 반면에 두산그룹의 두 당사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모두 상장사입니다.
㈜SK가 SK이엔에스를 매각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조금 싸게 판다고 해도 ㈜SK 주주입장에서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SK는 싸게 팔지만 SK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회사가 싸게 사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SK이엔에스를 비싸게 팔면 문제가 됩니다. SK이노베이션의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셈이니까요.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30.39%를 보유한 최대주주입니다. 연강재단과 오너일가 등 특수관계자를 모두 합하면 30.67%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걸 바꾸어 말하면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69. 33%를 소액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산에너빌리티 연결법인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자회사 두산밥캣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두고 있느냐, 떼어 내느냐 자체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인 셈이죠.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한 다음 좋은 가격에 매각한다고 해도 두산에너빌리티의 소액주주들이 당장의금전적 이득보다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둔 두산에너빌리티의 장기적인 전망이 더 낫다고 판단한다면 인적분할을 원하지 않겠죠. 결국 두산에너빌리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하는 것이 자회사로 계속 보유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회사의 성장과 수익창출에 유리한가'입니다.
결국 공시에 담겨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은 두산밥캣의 분할합병이 두산그룹 전체 또는 두산로보틱스 입장에서 왜 필요한지 뿐만 아니라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 두산밥캣 인적분할이 유리한가'입니다. 기존에 공시에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없죠. 두산밥캣 분할 이후 두산에너빌리티는 기존 사업 및 두산퓨얼셀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하나마나한 계획만 있을 뿐이죠.
두산그룹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은 세 단계로 나뉩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인적분할, 분할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포괄적 주식교환이 그것입니다. 첫 단계인 인적분할의 최대 이슈는 분할비율입니다. 이는 두산밥캣 사업부문의 기업가치를 얼마로 책정할 것인지와 직결됩니다. 분할합병비율의 시작점인 셈이죠.
두산에너빌리티를 1로 볼 때 두산밥캣 46%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의 분할비율은 0.2474030(대략 0.25)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순자산의 약 25%가 분할되었다는 뜻인데요. 신설법인으로 옮겨진 두산밥캣 지분 46.11%와 7200억원 상당의 차입금입니다. 그런데 두산에너빌리티 소유 두산밥캣 지분의 가치를 얼마로 보았길래 분할비율이 0.25가 됐을까요? 정확히 2조1980억원이고, 이는 두산에너빌리티의 두산밥캣 지분 취득원가입니다.
그런데 두산에너빌리티에게 두산밥캣이 단지 '투자주식'이 아니잖아요? 재테크용으로 보유하는 주식이 아니라 두산밥캣을 지배하기 위해 보유하는 주식이죠. 이는 곧 두산밥캣 지분은 투자주식이 아니라 '사업부문 또는 영업부문'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그래서 두산밥캣을 자회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고, 두산에너빌리티와 한 몸으로 보고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죠.
투자주식을 떼내는 것이 아니라 사업부문을 떼내는 관점이라면 분할비율은 전혀 다른 값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의 가치는 그 회사의 수익창출능력을 숫자로 표현한 것인데,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 매출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의 사실상 전부를 창출하기 때문이죠. 현재 두산에너빌리티를 먹여 살리고 있는 사업이 바로 두산밥캣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두산에너빌리티 영업이익에서 두산밥캣의 기여율은 거의 80%에 달합니다. 당기순이익 기준으로는 100%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두산에너빌리티의 기업가치는 두산밥캣에서 나온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죠.
인적분할 비율이 0.25이니,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분할로 인해 두산에너빌리티 75주와 신설법인 주식 25주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수익창출에 대한 두산밥캣의 기여도를 생각하면 거꾸로 두산에너빌리티 25주와 신설법인 75주로 바뀌는 것이 오히려 더 합당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그룹이 인적분할 비율을 0.25로 정할 수 있었던 것은 현행법 상 기업분할 비율을 개별 재무제표의 순자산을 기준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산밥캣의 실제 기업가치가 얼마이든, 두산밥캣의 주가가 얼마이든 관계없이 두산에너빌리티의 개별 재무제표에 두산밥캣 지분이 얼마로 기록되어 있는지가 분할비율을 결정한다는 겁니다.
개별 재무제표가 두산밥캣의 지분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다행입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전술한 것처럼 두산에너빌리티 장부에는 두산밥캣의 지분이 취득원가로 기록되어 있거든요. 공교롭게도 현재 주가수준으로 보면 취득원가와 시장가치가 2조원 남짓으로 얼추 비슷합니다. 하지만 두산밥캣의 지분은 '주식 값'이 아니라 '사업의 가치'로 평가해야 합당하겠죠.
두산에너빌리티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있다고 가정을 해 보죠. 하나는 두산밥캣 지분 및 관련 차입금을 인적분할한 뒤 신설법인의 지분을 주주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산밥캣 지분을 매각한 후 관련 차입금을 갚고 나머지 현금을 주주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주주들에게 유리할까요?
단연코, 밥캣 지분을 팔고 현금을 나누어주는 두 번째 방법일 것입니다. 두산밥캣을 지배할 수 있는 경영권 지분을 최대한 비싸게 팔려고 시도할 테니까요. 두산밥캣은 글로벌 상위 건설기계 업체이고,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창출하는 높은 수익성을 자랑합니다. 섣불리 가격을 매길 수는 없지만 상당히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할 의향을 가진 인수자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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