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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말 현재 삼성전자 연결실체의 현금성자산(현금과예금 및 금융상품)은 104조원에 이릅니다. 하지만 종속회사를 제외하고 삼성전자만의 보유 현금성자산은 17조원에 불과합니다. 국내에는 삼성디스플레이 외에 이렇다할 종속회사가 없으니 대부분 현금이 해외 종속회사에 있는 겁니다.


2010년대초만 해도 연결실체 현금의 약 절반 정도가 삼성전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8년 이후에는 연결실체의 현금이 늘어나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 개별실체의 보유 현금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고 이건희 전 회장의 사망 이후 21조원의 특별배당이 있었던 2021년 20조원선이 무너지고 나서는 현금유동성이 급속도로 증발해 2022년 4조원, 2023년 6조원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매출 300조원, 자산 300조원에 달하는 연결실체의 모회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삼성전자 연결실체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부문의 부진으로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매출은 14% 하락하며 300조원을 크게 밑돌았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85%와 72% 급감했습니다. 모회사인 삼성전자 역시 매출이 200조원 아래로 떨어졌고 충격적인 영업적자를 시현했습니다. 실적 악화는 현금유입의 축소로 이어졌고 투자와 배당의 부담이 줄지 않은 삼성전자의 현금은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관점은 흐름을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접근 가능합니다만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삼성전자의 현금은 왜 대부분 해외 종속회사에 있는 걸까요? 해외 종속회사들은 잘 버는데, 국내의 삼성전자는 벌이가 시원치 않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적이나 업황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삼성전자의 사업구조는 현금이 해외에 쌓일 수밖에 없게 짜여 있습니다. 그것이 삼성전자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인지, 아니면 글로벌 기업이 처한 환경과 제도의 영향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삼성전자 연결실체의 매출액이나 현금흐름에서 모회사 삼성전자의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연결실체의 연매출은 약 300억원, 모회사 삼성전자의 연매출은 약 200억원입니다. 연결실체가 연간 영업에서 벌어들이는 현금은 약 65조원이고 모회사 삼성전자는 영업에서 연간 약 45조원을 벌어들입니다.


회사가 벌어들인 현금은 투자, 배당 또는 차입원리금 상환 등으로 유출됩니다. 그러고도 남으면 보유 현금이 늘어나고, 그러기에 모자라면 보유 현금이 줄어듭니다. 그런데 삼성전자 연결실체에서 투자와 배당을 담당하는 곳은 모회사 삼성전자입니다. 상환할 차입원리금은 모회사이든 종속회사이든 많지 않습니다. 결국 모회사 삼성전자는 벌어들인 현금으 투자와 배당으로 대부분 소진하고 있는 반면에 해외 종속회사가 벌어들인 현금은 고스란히 사내에 남아 마치 우물에 물이 고이듯 보유 현금을 늘립니다.


숫자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2010년부터 올해 9월말까지 14년 9개월동안 삼성전자가 종속회사들과 함께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현금흐름표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718조원에 이릅니다. 같은 기간 유∙무형자산 순취득에 508조원을 썼고, 배당금으로 99조원을 지급했습니다. 그 외 자기주식 순매입(23조원), 관계회사 출자 등 지분 취득(7조원), 차입금 순상환(1조원) 등을 포함해 총 638조원을 썼습니다.



2010년 이후 718조원을 벌어 638조원을 지출했으니 약 80조원 정도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2010년초에 보유하고 있던 현금과 금융상품이 약 21조원이 있었으니 보유 현금유동성은 101조원입니다. 올해 9월말 현재 삼성전자 연결실체의 현금과 금융상품은 104조원입니다. 얼추 비슷합니다.


모회사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에 영업활동에서 464조원을 벌었습니다. 연결실체가 벌어들인 718조원 중 약 65%가 모회사 삼성전자로 흘러들어온 셈입니다. 464조원 중 345조원이 삼성전자의 유∙무형자산 취득에 사용되었고 97조원이 배당금으로 지급되었습니다. 종속기업 및 관계회사 출자에 23조원, 자기주식 순취득에도 23조원이 들었습니다. 총지출액이 487조원으로 벌어들인 현금 464조원보다 23조원이 많습니다. 그래서 27조원을 순차입했습니다. 2010년초 10조원의 현금과 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던 삼성전자의 2024년 9월말 현재 현금과 금융상품은 16조원이 되었습니다. 차입을 하지 않았으면 통장은 텅텅 비었을 겁니다.



삼성전자 연결실체와 삼성전자 개별실체의 현금흐름을 통해 종속회사들, 특히 해외에 있는 수 많은 생산 및 판매자회사들의 현금유동성 상황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종속회사들은 14년 9개월동안 254조원을 벌어 유∙무형자산 취득에 164조원을 썼지만, 배당에 대한 부담이 사실상 전혀 없었고(삼성전자가 2022년까지는 거의 배당을 받지 않았음) 지분투자에 대한 부담도 적었습니다. 물론 자기주식을 매입할 일도 없었죠. 차입금 29조원을 갚고도 76조원의 현금이 늘었습니다.


삼성전자는 2023년에 국내 종속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2조원을 차입했고, 해외 종속회사(베트남에 있는 SAPL, SEVT, SEV 등으로 추정됩니다) 등에서 29조원이 배당을 받았습니다. 만약 종속회사에서 차입과 배당으로 현금을 끌어오지 않았다면 예정했던 투자를 연기하거나 포기했어야 했을 것이고, 종속회사가 보유한 현금은 지금보다 50조원 많았을 겁니다.


연결실체가 유무형자산 취득에 사용한 508조원 중 거의 70%를 삼성전자가 지출했습니다. 연결실체의 배당금 지급 99조원 중 97조원이 삼성전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삼성전자가 모회사이니 설비투자나 지분투자가 집중되는 게 당연하고, 연결실체 중 유일한 상장사이니 배당 부담도 오롯이 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회사들로부터 정기적으로 배당을 받아 보유 현금을 늘리는 게 좋을텐데, 삼성전자는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베트남의 기본 법인세율은 20%인데 글로벌 기업들에게 각종 세제혜택을 제공했습니다. 구글, 삼성전자 등은 최저 10% 수준까지 낮추어 주었습니다(올해부터는 최저 법인세율 15% 적용). 국내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구간별로 적용이 달라지는데 최저 9%, 최고 24%이고, 삼성전자처럼 조 단위로 이익이 나면 대부분 24% 가까운 세율을 적용받는다고 보면 됩니다. 삼성전자에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베트남 법인에 이익을 남기는 것이 세금측면에서 유리합니다.


게다가 국내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소득은 익금불산입되어 과세되지 않지만, 해외 자회사로부터 배당소득에는 익금불산입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2022년 12월 세법 개정으로 2023년부터는 해외 자회사의 배당금도 익금불산입됩니다. 공교롭게도 세법이 개정되자마자 삼성전자가 해외 종속회사에서 대규모 배당을 받아 통장 잔고를 늘렸습니다.


삼성전자의 제품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생산됩니다. DX 부문의 TV, 모니터 등은 멕시코, 베트남, 브라질, 헝가리 등에 공장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한국(구미), 베트남, 인도, 브라질 등에서 생산됩니다. DS 부문의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화성, 평택 등)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고, Harman의 디지털 콕핏은 주로 멕시코, 헝가리, 중국 등에서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의 패널은 한국(천안, 아산) 등에서 생산 중입니다.


매출은 대부분 해외에서 이루어지죠. 올들어 9월까지 삼성전자의 내수판매는 17조원이 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반도체, 가전 모두 국내에서 생산되었든 해외 생산법인의 제품이든 대부분 해외에서 판매됩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이 전부 직접 판매되는 건 아닙니다. 상당부분 국내 삼성전자를 거쳐 다시 해외에 수출됩니다. 삼성전자의 주요 해외 고객은 삼성전자가 100% 지분을 보유한 해외 판매법인입니다. 무수히 많은 해외 판매법인들이 각 지역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죠.



올들어 9월까지 삼성전자는 종속회사로부터 약 72조원을 매입했습니다. 같은 기간에 161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종속회사를 향한 매출이 151조원입니다. 삼성디스플레이향 매출 6조원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 해외 종속회사에 수출한 겁니다. 최대 매입처는 베트남의 휴대폰 공장과 가전공장으로 타이응옌 법인(SEVT), 박닌 법인(SEV), 호치민 법인(SEHC) 등 3개 법인에서 33조원의 매입을 기록했습니다. 최대 매출처는 미국 법인인 SEA와 SSI, 상하이 법인인 SSS 등 3개 해외 종속회사로 삼성전자 전체 수출액의 절반인 73조원에 달합니다.


물론 해외 생산법인은 마진을 남기고 삼성전자에 판매하고 해외 판매법인은 마진을 붙여 판매합니다. 그렇게 올해 9월까지 삼성전자의 연결매출액이 225조원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외 생산법인으로 삼성전자의 현금이 이동하고, 해외 판매법인의 마진은 현금으로 잔류합니다. 삼성전자는 설비투자와 배당으로 현금의 대부분을 소진하지만, 설비투자 부담이 적고 배당으로부터 자유로운 해외 종속회사들에는 현금이 점점 쌓입니다.


삼성전자가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약 48조원)의 자본적 지출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투자와 배당, 최근 발표된 10조원의 자사주 매입에 삼성디스플레이와 우리은행 차입금 30조원까지 거의 100조원이 필요합니다. 최근의 현금창출능력을 생각하면 삼성전자가 벌어서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외부로부터의 조달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역시 해외 종속회사들로부터의 배당입니다. 2023년에 벌어졌던 일이 내년에 재연될 수 있는 것이죠.


삼성전자의 투자규모를 감안하면 현금부족 사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해외 법인으로부터 배당을 일정규모 이상 매년 받는다면 투자재원 문제와 유동성 부족에 대한 대비를 모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배당금수입은 순이익에도 가산되고 영업활동 현금흐름에도 포함됩니다. 배당을 받는 만큼 잉여현금흐름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깁니다.



삼성전자는 3년마다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하는데요. 6년간 그 수준이 같습니다. 잉여현금흐름의50%를 주주환원한다는 정책이고, 연간 배당규모는 9조8000억원입니다. 자사주 매입은 사실상 하지 않았으니, 연간 잉여현금흐름을 약 20조원으로 추정한 셈입니다.


그런데 해외 종속회사로부터 배당을 대거 늘린다면, 가령 매년 10조원의 배당을 받는다면 잉여현금흐름의 50%를 주주환원하는 정책을 유지한다면 연간 배당금 지급을 5조원 늘려야 합니다. 물론 잉여현금의 50%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주주에게 약속한 지침을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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