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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경제는 게임업계에서 이미 화두입니다. 방준혁 회장이 웅진코웨이를 인수하면서 '스마트 홈 구독경제' 운운한 것이 아예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닙니다. 게임업계의 구독경제는 월 1만원 정도의 구독료를 내고 특정 회사의 게임을 무제한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이런 게임 구독 서비스를 닌텐도,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콘솔 플랫폼 홀더들이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MS에게 게임 구독 서비스는 사업에 큰 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Xbox 게임 패스'의 성공으로 매출 100억 달러의 벽을 깼습니다. Xbox 게임 패스의 매출이 이미 하드웨어 판매로 올리는 매출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올해 3월에는 애플이 게임 구독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유비소프트도 100여종이 게임을 구독할 수 있는 '유플레이 플러스'라는 서비스를 시작했죠. 다운로드 없이 콘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인 구글 '스태디아'도 게임 구독 서비스 '스태디아 프로'를 출시했습니다.


콘솔 게임 중심으로 게임 구독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콘솔 플랫폼이 상대적으로 고가인데다 애프터서비스의 필요도 있고, 게임 타이틀을 바꿔 끼워가며 이용하는 방식이 정기적으로 필터를 갈아주어야 하는 정수기 렌탈 서비스와 이미지가 닿습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게임 구독 서비스를 모바일 게임업체들이 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죠. 우리는 모르는 제약 조건이 있겠지만 모바일 게임이라고 '구매 대신 구독'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넷마블이 웅진코웨이 인수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실물 구독경제'이지요. 웅진의 렌탈 서비스 노하우와 코디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게임 구독경제를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고요. 하지만 이건 좀 넌센스일 것 같습니다. 게임 구독 서비스를 위해 코디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아무래도 주부들이 중심일 코웨이의 고객 기반이 넷마블의 게임 이용자들과 겹칠 것 같지도 않고요. 정수기를 점검하러 온 코디가 게임 구독 서비스를 권하는 팜플렛을 건네는 모습을 상상해 봐도 뭔가 매우 어색합니다.


그러니 아마도 넷마블 말대로일 겁니다. 코웨이를 통해 게임을 더 팔 생각은 아니고, 인공지능(AI)이 기반이 되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가전제품에 도입하는 '스마트홈 구독경제'로 정수기와 침대 매트리스를 훨씬 더 많이 팔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제품 포트폴리오도 더 늘려야겠죠? 정수기, 비데, 매트리스를 넘어 냉장고, TV, 에어컨까지… 말을 하다 보니 넷마블은 웅진코웨이를 우선 삼성전자나 LG전자와 맞먹는 종합 가전회사로 탈바꿈 시켜 놓아야 스마트홈이든 뭐든 하겠다 싶은 생각도 드네요. 말도 안되는 소리죠?


넷마블의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고도 했는데, 이것도 참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웅진코웨이의 정수기를 파는데 20~40대 남성 비중이 높은 게이머들의 데이터가 어떤 도움이 될는지 상상이 안됩니다. 넷마블의 IT기술을 접목한다거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소리는 웅진코웨이 인수를 화려하게 포장하려는 의도 이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AI와 IoT라면 웅진코웨이가 이미 4년 전부터 하고 있습니다. 고령의 고객이 정수기를 48시간 사용하지 않으면 정수기가 자녀들에게 알림 메시지를 보냅니다. 공기청정기에는 AI 스피커가 연결되어서 필터의 수명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교체 시기가 되면 자기가 알아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합니다. 스마트홈 구독경제는 이미 웅진코웨이가 가고 있는 방향일 뿐 아니라 LG나 SK, 청호 등의 경쟁회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웨이는 이런 서비스를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기업인 아마존과 하고 있고요. 애플이나 구글의 AI플랫폼과 연동됩니다. 국내 통신사와 네이버와도 협력 중입니다. 이미 스마트홈 구독경제의 트렌드에 올라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넷마블이 인수를 했다고 웅진코웨이의 스마트홈 구독경제의 차원이 높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방준혁 회장이 웅진코웨이를 인수한 목적은 역시 현금흐름, 즉 재무적인 측면에서 찾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넷마블의 성장은 중국 시장의 문이 닫히면서 급브레이크가 걸렸고, 국내 시장에서도 중국 게임업체들의 약진에 국내 게임사들이 고전하고 있습니다. 중국시장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경쟁력이 장기간 지속될 거라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같은 매출을 올려도 넥슨이나 엔씨소프트와 달리 외부 IP에 거액의 라이선스를 지불해야 해서 남는 게 별로 없고,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늘 새로운 게임 개발업체 인수에 큰 돈을 써야 합니다.



방준혁 회장이 2017년에 한 미디어 행사에서 그랬다죠? 2020년 매출 목표를 5조원으로 잡고서요. 방 회장은 분명 글로벌 게임업체로서 지속가능성 성장을 말했을 겁니다. 5위 안에 드는 시장 지배력을 갖추지 못하면 언젠가는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방 회장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게임회사로서 넷마블은 이미 더 이상 성장 기회가 없습니다. 넷마블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조원입니다. 2017년 2.4조원으로 고점을 찍고 주저 앉은 지난해 수준입니다. 영업이익률은 2017년 21%에서 지난해 12%로 반절이 되었고, 올해 상반기엔 다시 6.7%로 또 반쪽이 되었습니다. 내년이 2020년인데, 연 매출 5조원에 글로벌 5위 게임사가 되려면 기적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게임사로서 지속성장 가능성보다 기업으로서 지속가능성부터 찾아야 할 것입니다. 넷마블의 약점을 채워줄 수 있는 '조각'이 필요해졌죠. 그런 측면이라면 웅진코웨이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웅진코웨이는 렌탈의 판매방식과 코디라는 방문판매 유통채널을 갖고 있는 매우 독특한 구조의 환경가전업체로 확고한 내수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중국 시장에서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가 아닙니다. 게다가 국내 가전 렌탈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웅진코웨이의 매출 증가로 그 효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넷마블의 최대 약점인 실적과 현금흐름의 불확실성을 웅진코웨이는 확실히 보완해 줍니다. 웅진코웨이는 넷마블의 두 배 이상인 7000억원대의 현금창출능력(EBITDA 기준)을 보여주고 있고, 그 규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넷마블 주식의 시가총액이 7조5000억원 정도입니다. 웅진코웨이는 6조7000억원으로 더 낮습니다. 물론 직접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넷마블의 주가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프리미엄으로 얹어져 있다고 봐야죠. 그러나 더 이상의 성장 기회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면, 넷마블을 팔고 안정적인 시장과 매출, 훨씬 크고 지속적인 현금창출능력을 확보한 웅진코웨이를 사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방준혁 회장이 넷마블에서 코웨이로 갈아타는 것도 아니고, 코웨이를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지분의 4분의 1 정도를 사는데 보유 유동성 전부를 쓰는 겁니다. 과연 이 정도로 넷마블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