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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계속해서 판돈을 대준다면 베팅을 자신 있고 강하게 할 수 있겠죠. 그렇지 않다면 있는 판돈을 지키는 게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겠고요. 도박만 그런 게 아니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자본이 충분하고 자금조달도 쉽다면, 다시 말해 돈줄이 튼튼하다면 당장의 적자를 감수하고 긴 승부를 노려볼 만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수익을 내는 게 경영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쿠팡의 '계획된 적자'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자금조달에 있습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쿠팡의 무모해 보일 정도의 적자행진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이하 SVF)를 통해 2015년에 10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쿠팡의 자본은 2년만에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2018년말에 다시 20억달러 투자를 약속하지요. 실제로 쿠팡의 자본에 들어온 건 1조3500억원입니다.


아마도 이럴 겁니다. 쿠팡의 대주주는 미국 법인 쿠팡엘엘씨(Coupang.LLC)입니다. SVF의 투자는 모기업인 쿠팡엘엘씨로 이루어집니다. 그 돈이 다시 쿠팡의 자본으로 들어오는 거지요. 쿠팡엘엘씨의 자본구성이나 지배구조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그 간의 투자유치를 감안할 때 SVF가 과반 이상의 최대주주일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2018년에 쿠팡엘엘씨가 유치한 추가 자본은 SVF의 20억 달러를 포함해 총 22억3000만 달러인데, 그 중 절반 정도가 한국의 쿠팡에 유상증자 형태로 들어온 겁니다. 나머지 절반은 모기업에 그냥 있거나 다른 곳에 투자되었을 수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손 회장은 2015년과 2018년에 걸쳐 총 30억 달러를 쿠팡에 투자한 것인데, 쿠팡이 2018년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냈고 2019년에도 이렇다할 반전이 없다면 비슷한 정도의 손실을 예상할 수 있으니 그 동안 투자한 모든 판돈을 거의 잃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도 쿠팡이 금방 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죠. 손 회장이 또 다시 막대한 뒷돈을 대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도 그렇게 믿습니다.



2018년 11월에 손정의 회장이 한 말입니다. 20억 달러를 추가로 쏜 그때입니다. 더욱 강도 높게 뒷받침하겠다는 게 20억 달러를 의미하는 것이겠지만, 그 20억 달러가 마지막 판돈이 될 거라고 손 회장이 생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쿠팡의 적자는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수익성이 개선될 조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20억 달러를 다 쓰게 되면 판돈을 더 대주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합니다.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쿠팡이 한국 e커머스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회사인가, 또는 압도적인 1위 회사에 접근하고 있는가. 전자는 '아니다'가 정답이고, 후자는 '글쎄요'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한국 e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이 1위 회사가 되면, 아마존처럼 순이익이 극적으로 커지는 드라마틱한 반전이 가능할까요? 그것 만으로 손 회장이 앞으로 몇 조원이 더 들어가야 할지 모르는 투자를 결정한 걸까요? 재읽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쿠팡이 한국의 아마존이 될 거라고 손 회장이 확신하고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한국 e커머스 시장의 1등 업체가 된다고 해서 쿠팡의 기업가치가 대박을 선사할 정도로 커질 거라고도 손 회장이 생각하고 있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2020년 2월 현재 롯데쇼핑의 시가총액이 3조5000억원이 안됩니다. 신세계는 3조원이 채 안되고, 이마트는 3조원이 살짝 넘습니다. 손 회장이 SVF를 통해 앞으로 2조원 정도를 더 투자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쿠팡에 5조원이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다른 투자처에서 받은 자본까지 더하면 앞으로 6조원이 될지 8조원이나 10조원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대체 쿠팡의 기업가치가 얼마까지 올라가야 투자수익을 낼 수 있을지 가늠이 안됩니다.



위메프의 판돈은 쿠팡에 비해 보잘 것 없습니다. 손정의 회장이 쿠팡에 1조원을 쏜 2015년에 넥슨 등으로부터 1100억원을 출자 받은 게 최근 6년간 자금조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메프가 2015년에는 쿠팡에 맞불 작전으로 대응을 했었죠? 그런데 2016년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수익성 위주의 전략으로 선회했죠? 넥슨의 창업자 김정주 NXC 대표는 손정의 회장이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확실한 돈줄이 있는 것도 아니니 판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위메프의 주주는 허민 대표가 이끄는 모기업 (유)원더홀딩스 등 외에 김정주 회장의 NXC와 벤처캐피탈 IMM인베스트먼트가 조성한 펀드입니다. 두 곳의 지분율 합계가 11.3%이고 게다가 보통주가 아니라 상환전환우선주로 투자를 했습니다. 좀 특별한 우선주이긴 합니다. 2025년까지 언제든지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고 의결권도 보통주와 동일하게 갖습니다. 상환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기 회수는 어렵습니다. 배당가능이익의 범위 안에서 상환을 할 수 있는데, 이익이 나야 배당가능이익이 생기죠.


김정주 대표가 손정의 회장과 마찬가지로 위메프를 더 강하게 뒷받침하지는 않을 것 같고, IMM이 조성한 펀드는 회수를 전제로 투자가 되었을 테니 역시 판돈이 계속 나올 화수분이 아닙니다. 더구나 투자여력이 그렇게 크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위메프가 쿠팡의 전략을 따라할 수는 절대 없지요. 투자자에게 회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흑자로 빨리 돌아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 대신 수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넥슨과 IMM이 추가로 3700억원을 위메프에 투자했죠.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재읽사는 다시 공격적으로 쿠팡을 따라잡자는 취지는 아닐 것으로 봅니다.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자금 성격이라고 판단합니다. 수익이 날 정도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할테니까요.



티몬 역시 재원이 그리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규모(?) 자본을 증자한 것은 2016년 771원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차입금과 전환사채로 이루어졌습니다. 최근 3년간 1136억원을 전환사채로 조달했습니다. 그 중 275억원은 상환이 되었죠. 적자행진인 기업이 추가 차입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니 향후 자금조달도 전환사채로 이루어질 공산이 큽니다.



티몬의 소유권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창업자인 신현성씨가 사모펀드 KKR을 끌어들여 그루폰이 보유한 지분 59%와 경영권을 확보했고 이후에 NHN엔터테인먼트, 싱가포르투자청, 시몬느자산운용 등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역시 확실한 돈줄이 없고 일정기간 투자 후 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처들일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현재 티몬의 상황으로 상장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가장 유력한 방법이 지분매각일테죠. 그래서 티몬 매각설이 자꾸 도는 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도 롯데그룹이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롯데측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죠.


티몬은 부족한 자금조달 능력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쿠팡을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입채무 결제가 쿠팡이나 위메프보다 훨씬 길어지게 되었을 겁니다. 현금유출을 최대한 막기 위해 매입채무 결제를 극단적으로 늦춘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