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첫 기사입니다.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재읽사)'은 앞으로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만들 생각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상장기업의 공시정보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그 내용과 가치를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업무의 상당량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기업 공시에 숨겨진 이야기'는 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며, 가능하면 투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만한 공시를 중심으로 아이템을 선정하겠지만, 어떠한 의도나 방향성을 갖고 아이템을 선정하거나 작성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누구나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정보와 어느 매체나 써서 이미 상식이 되어버린 정보들은 가급적 배제하겠습니다. - 편집자 올림


한진중공업그룹의 2018년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더웠을 겁니다. 올해 말 예정인 한진중공업의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기한 만료에 대비하기 위해 계열사 간에 중요한 자금 거래들이 숨가쁘게 이어졌습니다. 어쩌면 기업의 생사와 직결돼 있을지도 모르는 거래들입니다.


금융감독원 공시 사이트(DART)에 올라온 모든 거래는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시간표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 듯, 여러 갈래의 전선이 연결된 시한폭탄을 해제하듯.


한진중공업그룹에게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룹의 본체라고 할 한진중공업은 2016년 초에 채권단과 맺은 자율협약을 올해 말로 끝낼지, 연장을 할 지 정해야 합니다. 한진중공업그룹의 운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신탁통치 하에 놓여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금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경영의사결정의 주도권을 넘겨주어야 합니다. 특히 사업에 대한 것이 아닌, 재무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실상 채권단이 지휘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진중공업그룹과 채권단은 이미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최근 이루어진 거래들은 어느 한 지점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계획한 대로, 기대하는 대로 끝까지 갈 수 있느냐 뿐일 것입니다.


하코 매각은 연쇄적 자금거래의 신호탄


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는 지난 7월25일 100% 자회사인 하코(Hacor)를 아워홈에 980억원을 받고 매각합니다. 하코는 조남호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고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내식 서비스업체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짭잘한 수익을 내는 알짜회사입니다.


註: 한진중공업홀딩스는 한진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조선/건설 부문과 대륜E&S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부문을 두 축으로 합니다. 그 외 자회사로 하코(Hacor)와 한일레저(솔모로CC 운영 회사)가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한국종합기술이라는 자회사가 있었지만, 지분을 우리사주조합에 매각한 바 있습니다.


하코가 팔린 날, 한진중공업홀딩스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또 다른 비상장 자회사 대륜E&S가 이사회를 엽니다. 그리고 아래의 두개 안건을 의결합니다. 


  ① 보통주 204,000주를 주당 500,000원(총 발행액 1020억원)에 주주배정방식으로 발행(납입일 2018년 7월 26일)

  ② 상환전환우선주(RCPS) 1,170,905주를 주당 64,000원(총 74,937,920,000원)에 제3자배정방식으로 발행(납입일 2018년 7월 27일)


둘 다 유상증자를 하겠다는 것인데 그 규모가 심상치 않습니다. 보통주와 우선주를 합쳐 총 1770억원. 기존 자기자본(2145억원)의 80%가 넘습니다. 한진중공업홀딩스가 인수할 보통주 1020억원은 한진중공업홀딩스 자기자본의 24%에 달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구국의 결단 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필이면 왜 하코가 팔린 그날 대륜E&S 이사회가 움직인 것일까요.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한진중공업홀딩스에게는 현금이 별로 없었습니다. 6월말 현재 현금성자산이 300억원 가량. 그 후에 뭉칫돈이 들어온 흔적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코의 매각 대금이 들어오는 것에 맞추어 유상증자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하코를 매각한 이유가 바로 대륜E&S에 출자를 하기 위한 것이었죠.


1020억원의 보통주 유상증자는 750억원의 우선주 유상증자의 필요조건이었을 것입니다. 상환전환우선주를 인수할 재무적 투자자들에게는 새로 발행된 보통주가 투자의 안전판 역할을 했을테니까요.


대륜E&S는 왜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했을까요.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한진중공업그룹은 대륜E&S와 그 자회사(대륜발전, 별내에너지)를 매각해 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에 쓰려고 했습니다. 채권단과 합의한 자구방안이었습니다. 그런데 2017년 매각 계획을 철회하고, 대륜E&S와 두 자회사의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방침을 바꿉니다.


사실 정상화가 필요한 곳은 대륜E&S가 아닙니다. 자회사인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가 대상이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집단에너지시설을 운영하는 발전 자회사인데, 시설자금으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었고 과도한 금융비용으로 적자가 누적되고 있었습니다.


한진중공업그룹 자금사정 정말 좋아졌을까.


일부 언론은 한진중공업홀딩스의 하코 등 계열사 매각(총 1764억원), 한진중공업의 부동산 매각(총 3000억원) 등으로 그룹의 자금사정이 좋아져 대륜E&S 등 계열사를 매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한진중공업홀딩스는 지난해 말 한국종합기술 지분을 500억원 남짓에 팔았습니다. 그 돈은 대륜E&S에 유상증자(300억원)와 대여금(300억원)으로 다 썼습니다. 하코를 매각한 980억원음 처음부터 대륜E&S에 출자하기 위한 것이었고요. 그룹의 자금사정이 좋아져서 대륜E&S 등을 팔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니라, 팔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한국종합기술과 하코를 팔았던 것입니다.


한진중공업 역시 현금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기 전인 2015년부터 계산을 해 봐도 올해 상반기까지 3년 반 동안 투자부동산, 유/무형자산, 종속/관계회사 주식, 기타 금융자산을 팔아 회수한 돈이 총 4149억원입니다. 여기에는 지난해 토지와 건물 등을 팔아 마련한 1900억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돈은 한푼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절반 가량은 그룹의 문제아인 수빅조선소에 유상증자대금과 대여금으로 지출됐습니다. 그외 유형자산, 보증금 등 다른 자산을 취득하는데 쓴 것을 더하면 5000억원이 넘습니다. 회수한 돈보다 투자에 지출한 게 더 많았습니다.


개선된 점은 한진중공업의 현금흐름 창출능력입니다. 당기순손익은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약 7800억원의 영업현금흐름(연결기준)을 창출했습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부쩍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에 약 1조원의 빚을 갚을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자산을 팔아 현금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고무적이죠.

(수정합니다. 1편을 작성할 때까지 한진중공업의 영업현금흐름에 인천북항부지 판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영업현금흐름의 상당 부분은 토지(용지)를 매각한 것이었습니다.)


한진중공업의 보릿고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산매각으로 들어온 돈은 빚 갚고 자회사 수발하는데 다 썼습니다. 보유현금은 6월말 현재 1440억원입니다. 그런데 올해말까지 갚아야 하는 차입금이 장부상으로만 2조원이 넘습니다.


한진중공업의 차입금은 대부분 공동관리를 하고 있는 채권단에게서 빌린 겁니다. 그리고 채권단 차입금은 전액 올해 말로 만기가 맞춰져 있습니다. 외부의 도움없이 한진중공업그룹 자체적인 능력만으로 해결(차입금을 0으로 만드는 걸 뜻하지는 않습니다)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룹 입장에서도, 채권단 입장에서도 뭔가 수를 낼 때가 되었습니다. 이별을 하려면 막대한 돈이, 자율협약을 연장하려면 분명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대륜E&S는 정상화 후 기업공개(IPO)에 나설까


대륜E&S가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해 짚어 봅니다. 이 상환우선주는 단순히 자금조달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닙니다. 향후 대륜E&S의 행보에 관한 힌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상환전환우선주를 인수한 곳은 농협은행과 저축은행, 그리고 디알파이프제일차(주)라는 장부상 회사(SPC)입니다. 이 SPC는 DB금융투자가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DB금융투자가 직접 우선주에 투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SPC에 돈을 댄 전주(錢主)는 따로 있을텐데 노출이 안되어 있습니다. 정체를 드러내기 싫은 누구(들)인지, 제3의 곳에서 일단 돈을 대고 DB금융투자가 자산유동화증권(ABCP 등)을 발행해 투자자를 모집했는지, 아직은 모릅니다.


상환전환우선주이니, 당연히 일정 조건에 따라 상환과 전환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재밌습니다.

우선주 발행 후 한달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이 가능합니다. 또 상환 만기인 5년 후에 대륜E&S가 상환하지 않을 때도 자동적으로 보통주로 전환됩니다. 대륜E&S가 언제든지 일시에 상환할 권리도 있지만, 이건 별로 의미를 둘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보통주로 전환을 하면 우선주 1주당 보통주 4주를 받습니다. 만약 모든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의결권 지분 34%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경영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입니다. 그러나 저축은행이나 농협 등 재무적 투자자들이 대륜E&S의 경영에 참여할 목적으로 우선주를 받지는 않았겠지요. 보통주로의 전환권은 자금회수(exit)의 장치라고 보는 게 상식적일 것 같습니다.


우선주주들은 연복리 5%의 이자를 받습니다. 이중 3.5%는 배당금으로 받고, 나머지 1.5%는 상환때까지 쌓아두었다가 원금과 함께 받습니다. 한진중공업그룹의 신용상태에 비해 금리가 좀 낮아 보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우선주주들이 발행 후 1.5년에서 2.5년까지 6개월 단위로 한진중공업홀딩스에게 풋옵션(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과 풋옵션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한진중공업홀딩스가 보유한 대륜E&S 지분 100%(향후 발행될 주식까지 포함)를 담보로 제공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6개월마다 되팔 수 있고, 되팔 수 없으면 회사를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우선주주들에게 있는 겁니다.


한진중공업홀딩스가 콜옵션(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우선주 발행 후 2년 6개월이 되는 날부터 언제든지 우선주를 되사올 수 있습니다. 발행 후 2년 6개월까지는 풋옵션이, 그 이후에는 콜옵션이 존재하는 셈입니다. 풋옵션이 콜옵션보다 먼저입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우선주주의 풋옵션을 무효화시킬 방법이 있습니다. 대륜E&S가 기업공개(IPO)를 해서 주식을 상장하면 됩니다. 상장시 주당 공모가가 우선주의 보통주 전환가격보다 높으면 풋옵션은 사라집니다. 풋옵션이 존재하는 2년 6개월, 그러니까 2021년 1월까지 상장이 돼야 합니다.


우선주 발행가가 64,000원이고 보통주 4주로 전환되니 우선주 발행 당시 전환가격은 16,000원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추정일 뿐입니다. 인수계약서에 전환가격이 얼마로 적혀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16,000원이 가이드라인이 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


대륜E&S를 정말 상장을 할지, 한다면 언제 할지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그룹 입장에서는 베스트 시나리오일 겁니다. 상장에 성공하면 상환우선주는 갚지 않아도 되고, 한진중공업홀딩스는 구주 매각으로 상당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위기의 한진중공업'을 구하는데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관전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향후 2년 반 동안 풋옵션이 행사되지 않도록 우선주주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한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대륜E&S를 돈 버는 회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륜E&S는 최근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 1월까지 상장을 하려면 2020년이 아니라 올해 늦어도 내년에는 흑자로 돌아서야 할 겁니다. 일단 올해 상반기에는 88억원의 흑자를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가 열쇠를 쥐고 있다


대륜E&S에게는 두 자회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입니다. 두 회사 모두 집단에너지기업입니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열과 가스를 공급하고 전기를 생산해 한국전력에 팝니다.


이 두 회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코 매각 후 이루어진 한진중공업의 연쇄 자금거래의 중심에 두 회사가 있습니다.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의 지분은 한진중공업과 대륜E&S가 똑같은 비율로 나누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륜E&S의 종속회사로 분류됩니다. 한진중공업이 대륜E&S에 의결권을 위임했습니다.


그런데 대륜E&S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IFRS를 채택하고 있지만 별도재무제표만 작성합니다. 대신에 최상위 지배회사 한진중공업홀딩스가 두 손자회사에 대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대륜E&S는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에 대해서는 지분법이 아닌 원가법을 적용합니다. 대륜E&S의 실적에 두 회사의 실적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올해 상반기 대륜E&S가 기록한 88억원의 흑자는 두 집단에너지회사와 무관한 숫자라는 것이죠.


IFRS를 도입했고 종속회사가 있는데 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은 걸까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더라도 대륜E&S는 흑자를 기록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대륜E&S가 상장을 준비한다면 그래도 지금처럼 별도재무제표만 작성해도 되는 걸까요. 또 하나 올해말로 끝나는 한진중공업의 채권단 공동관리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여기까지가 2018년 여름 한진중공업그룹의 뜨거운 자금거래 중 서막에 해당합니다.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한진중공업 그룹의 숨가쁜 자금거래와 그 이면(2)'에서 계속하겠습니다.


(사족: 한진중공업홀딩스가 100% 인수한 대륜E&S 보통주는 주당 50만원에 발행되었습니다. 우선주는 하루 뒤에 주당 64,000원에 발행되었고, 보통주 4주로 전환이 가능하니 보통주 1주당 16,000원 꼴이라고 했습니다. 한진중공업홀딩스가 무려 31배나 비싸게 준 셈이네요. 물론 전환이 된다는 가정하에 그렇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