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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본시장 역사에서 셀트리온만큼이나 독특한 기업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2002년 우회상장으로 갑자기 주식시장에 등장한 바이오 기업이 열광적인 팬덤 집단을 형성하며 단시간 내에 코스닥 대장주가 되더니, 2018년에는 무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대표 선수인 현대차마저 누르고 코스피시장 시가총액 3위에 오릅니다.
40조 현대차가 1조 셀트리온에 무릎을 꿇다니…
현대차 자산총액이 대략 70조원(이하 개별재무제표 기준), 매출액은 40조원이 넘습니다. 최근 2~3년 비록 부진하지만 1년에 5조원의 흑자를 내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투톱(삼성전자와 함께)입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는 자산총액 180조원, 매출액은 100조원에 육박합니다.
셀트리온은… 물론 국내 대표적인 바이오시밀러 기업이죠.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국내 의약품의 해외 수출에 성공한 사실상 유일한 기업이고요. (한미약품처럼 기술 수출한 곳은 몇 되고, 코오롱의 인보사도 있지만, 비록 복제 의약품이라고 해도 신약을 개발해 직접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회사는 아직 셀트리온 뿐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셀트리온의 자산총액은 자회사를 모두 합한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도 3조5000억원, 매출액은 1조원이 채 안되죠. 각각 현대차의 5%, 2.5%에 불과합니다. 창사 이래 최대를 기록했던 2017년 당기순이익은 3800억원, 현대차의 10% 미만입니다. 비교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셀트리온 시가총액이 현대차를 넘어선 2018년 6월 15일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충격에 빠집니다. 그리고는 한국 경제에 엄청난 변화가 오고 있음을 직감하죠. 아니, 엄청난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휴대폰과 반도체를 이어 한국을 이끌 새로운 산업은 바이오다. 그리고 그 맨 앞에 셀트리온이 있다"
셀트리온이 일군 성과는 실로 놀랍습니다. 2015년 세계 최초로 단일클론 항체 바이오시밀러이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램시마'를 유럽에 출시합니다. 2016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에 허가를 받고요. 2018년 1월 기준으로 미국을 비롯해 83개국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습니다. 램시마의 유럽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답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예견하지 못했던 항체 바이오시밀러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선점한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 이런 기업이 있었던가요?
공매도 세력은 왜 셀트리온을 공격했을까.
셀트리온의 신화는 '공매도와의 전쟁'과 늘 함께였습니다. 셀트리온에 열광하는 팬덤이 존재하는 것처럼 셀트리온의 실패를 확신하는 공매도 세력(?)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정진 회장은 2011년 "소액주주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투기적 공매도 세력과 싸우려고 합니다." 라고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공매도 세력에 대응해 자사주를 매입, 주가를 끌어올린 혐의로 약식 기소될 정도로 '소액 주주를 위해' 엄청난 정성을 쏟습니다.
셀트리온이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것도 공매도에 지긋지긋해진 소액주주들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코스피200지수에 편입되면 기관투자가들이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물량이 있어서 공매도에 대한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성공합니다. 코스피 이전 상장 후 주가가 급등하자 공매도 세력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공매도를 했으면 언젠가는 반대로 주식을 사서 빠져나와야 하는데(이걸 '숏 커버링'이라고 부릅니다), 주가가 급등할수록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견딜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런데 팬덤들이 셀트리온의 미래를 확신했던 것처럼, 공매도 세력들에게도 셀트리온의 미래를 밝게 볼 수 없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존재였죠.
아시겠지만, 셀트리온은 생산만 하는 기업입니다. 지난해까지 전 세계 시장에 대한 판권은 셀트리온헬스케어가 갖고 있었습니다.(국내 판권을 지난해 셀트리온에 넘깁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자체가 셀트리온이 개발한 의약품의 전담 판매법인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서정진 회장이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한 2011년 이후 셀트리온의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합니다. 2012년에는 3000억원을, 2014년에는 4000억원을, 2015년에는 무려 5000억원을 넘깁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와 독점판매계약을 맺은 사이니 일부 자투리 매출을 제외하고는 전부 셀트리온헬스케어에 판 겁니다.
그런데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매출액은 좀처럼 늘지 않습니다. 게다가 셀트리온의 매출액에 비해 턱없이 적습니다. 셀트리온에서 수천억원의 원료의약품(램시마)을 사오는데 판매는 2012년까지 거의 미미합니다. 2014년에도, 2015년에도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매출액은 셀트리온의 절반에 그칩니다.
이 말은 곧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셀트리온에서 사온 의약품을 거의 팔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아래 표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2012년(전기) 헬스케어는 셀트리온에서 3273억원의 의약품을 사옵니다. 이미 재고가 3806억원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확보한 물량은 총 7000억원어치가 넘습니다. 그런데 그해 판 건 고작 288억원(원가 기준)어치의 재고 뿐이었습니다. 2013년에도 3311억원을 추가로 사오지만, 판매한 물량은 776억원어치(원가 기준)에 불과합니다. 물론 2012년보다는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긴 합니다만…창고에 쌓아둔 재고는 2013년말 9300억원이 넘게 됩니다.
두 계열사의 사정은 정말이지 극명하게 갈립니다.셀트리온은 다소 부침이 있지만 매년 1000억원 이상의 흑자행진을 이어갑니다. 영업 현금흐름 역시 흑자입니다. 회계상으로만 만들어낸 이익이 아니라 진짜 현금이 들어오고 있는 겁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현금으로 결제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죠.
반면,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위태위태합니다. 매년 적자 행진에다가 현금이 계속 빠져나갑니다. 팔지는 못하고 사기만 하니까 당연히 그럴 밖에요. 창고에 재고만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셀트리온헬스케어의 재고와 함께 공매도세력의 의심도 커집니다.
'셀트리온은 만들고, 셀트리온헬스케어는 파는 곳이니 두 회사를 합해야 완전체인데, 만들기만 하고 팔지는 못하면 결국 둘 다 망하는 거 아닐까"
두 회사는 한 몸일까, 딴 몸일까?
물론 법적으로 두 기업은 다른 몸입니다. 서정진 회장이 양쪽 모두 대주주이기는 하지만, 셀트리온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주식을 갖고 있지 않고, 셀트리온헬스케어 역시 셀트리온의 주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계열사이기는 하지만 모회사와 자회사 관계도 아니고, 관계회사도 아닙니다.
그런데 원래 셀트리온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자회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지배회사가 되고 그 아래에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이 있었습니다. 지분율이 10%대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다른 계열사들이 보유하 지분을 더하면 40%가 넘었고 최대주주는 셀트리온헬스케어였습니다. 게다가 사업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관계이니 자회사라고 주장하면 수긍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2010년 11월25일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인적분할을 합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모아 셀트리온홀딩스를 만들고, 나머지(셀트리온 의약품 판매 전담 법인)를 셀트리온헬스케어로 존속시킵니다.
이걸로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친척일 뿐 가족은 아닌 사이가 됩니다. 연결재무제표에 포함되지도 않고, 지분법적용 대상이 되지도 않습니다. 법적으로나 회계적으로나 딴 몸이 됩니다. 아래 그림처럼 셀트리온 지분은 서정진 회장의 개인회사인 셀트리온홀딩스가 보유하고, 셀트리온헬스케어는 또 다른 서정진 회장의 개인회사가 됩니다.
2013년 셀트리온헬스케어 매출 왜 늘었나
그리고 여기, 또 하나 주목할 회사가 있습니다. 그림에서 빨갛게 표시된 셀트리온헬스케어헝가리라는 회사입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의 100% 자회사인 이 회사는 2010년 5월에 설립됩니다. 기업분할을 몇 달 앞두고 세운 해외 판매법인입니다. 유럽의 제약사 등을 상대로 램시마 등의 판매 및 유통권한을 부여하는 계약을 이 회사가 맡습니다. 해외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회사는 셀트리온이 매출실적을 올리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013년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매출이 급증합니다. 무려 5배 가까이 증가합니다. '헬스케어는 셀트리온의 창고일 뿐'이라고 비아냥대는 공매도 세력에게 강력한 한방을 먹인 셈입니다.
그런데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매출 급증은 숫자놀음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2013년에 셀트리온으로부터 2231억원어치를 사와 1453억원의 매출을 올립니다. 그런데 이 중 78%가 바로 셀트리온헬스케어헝가리에 판 겁니다. 셀트리온이 생산한 램시마 등의 의약품이 셀트리온헬스케어로 갔다가 다시 헝가리로 넘어간 거죠. 금액의 크기로 보면 대~충 계산해서 절반은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나머지 절반은 셀트리온헬스케어헝가리가 가져간 셈입니다.
자, 이제 2013년의 셀트리온 매출액이 진정한 매출로 인정받으려면, 셀트리온헬스케어헝가리가 자신의 창고가 아니라 진짜 유럽의 고객에게 팔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혀 팔지 못한 모양입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2013년 감사보고서에 공시한 헝가리 법인의 실적을 보면, 자산이 1227억원, 부채가 1222억원이고 매출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매출이 없었다고 해석하는 게 맞겠죠? 당기손익이 4억원 정도 되는데, 이게 어떻게 발생한 건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자산과 부채 규모는 거의 차이가 없고, 셀트리온헬스케어가 헝가리법인을 상대로 일으킨 매출 1134억원과 유사합니다. 매출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자산은 램시마 재고이고, 부채는 셀트리온헬스케어에서 외상으로 사온 매입채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얼추 맞아떨어집니다.
자산과 부채가 원래 있었던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실 수 있습니다. 헝가리법인은 2012년에 자산이 1700만원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면 아무 것도 없었다고 봐도 됩니다. 사무실 보증금 같은 게 아닐는지…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기업공시에 숨겨진 이야기' 색동날개 꺾인 금호그룹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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