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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개미 김성진씨가 화천기계 지분을 인수하면서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경영권 확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표 대결에서 승리해서 자신의 인물들로 이사진을 구성한다고 해도 화천기계를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없어 보이거든요. 이사 후보로 내세운 분들이 대부분 김성진씨 회사인 보아스에셋과 원옥의 임원들인데, 이 분들이 전문적인 경영능력을 검증 받았거나 공작기계업에 정통한 분들일 리도 없죠. 무엇보다도 화천기계가 독립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실적을 꾸준히 유지할 수 없습니다.



화천그룹은 권영열 회장 일가가 그룹의 모태 격인 화천기공 지분을 48.78% 보유해 확고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화천기공을 통해 상장사인 화천기계와 비상장사인 서암기계공업 및 에프앤가이드를 지배하고 있죠. 이중 금융정보 회사인 에프앤가이드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권 회장 일가가 경영에 깊게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상 그룹과 독립적인 회사이고 사업 측면에서도 다른 계열사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대주주인 화천기공 측 지분율이 34.54%에 달하고 있어 김성진씨가 임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에 승리해 자신의 인물들을 이사진에 합류시킨다고 해도 회사의 미래를 바꿀 만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뜻대로 관철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보통 적대적 M&A 후에 기업가치를 높인다며 첫 번째로 하는 일이 정관을 변경해 신성장동력이 될 만한 사업을 추가하는 건데요. 정관변경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입니다.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 2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화천기공 측 의결권이 전부 주총에 참여한다고 가정하면(당연히 그렇게 되겠죠), 정관 변경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정관 변경 외에 특별결의 사항에는 자본의 감소(유, 무상 감자), 회사의 합병 또는 분할, 중요한 영업의 양수 또는 양도, 이사 또는 감사의 해임이 있습니다. 김성진씨가 우호 세력의 표를 모아 경영진에 입성할 가능성은 있지만, 화천기공 측의 이사들을 해임할 수는 없습니다. 이사회의 주도권을 놓고 양측이 끊임없이 싸우게 되겠죠. 한 마디로 난장이 벌어지는 겁니다. 시간은 현재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대주주 편이 될 겁니다. 절대적인 지분율에서 크게 앞서는 데다 화천기계가 계열사인 화천기공 및 서암기계공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화천기공은 CNC선반 등 공작기계와 주물을 포함한 소재부문을 영위하고 있고, 서암기계공업은 공작기계용 기계부품을 제조 및 판매합니다. 화천기계는 선반 밀링 등 공작기계와 자동차엔진용 부품을 만들어 팝니다. 서암기계공업은 화천기공에서 부품의 주물작업을 하고 화천기공과 화천기계에 부품을 납품합니다. 전체 매출(2021년 449억원)에서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화천기공은 연간 매출이 2021년 기준으로 2040억원(연결 재무제표) 정도 되는데, 공작기계 매출이 1,626억원이고 소재매출이 413억원 가량입니다. 소재부문은 직접 판매하는데 공작기계부문의 경우 해외에는 독립 판매법인들이 있지만 국내 판매를 담당하는 조직이 없습니다. 관계회사인 화천기계와 국내 판매 라이선스 계약(물품공급 및 총판계약)를 맺고 있어서, 화천기계에 독점 공급하고 있습니다. 2021년 화천기공의 공작기계 국내 매출이 778억원입니다. 화천기계에 대한 매출이 760억원으로 사실상 전부입니다.



화천기계는 연 매출이 2021년 기준 1760억원인데, 자동차엔진용 부품 매출을 제외한 공작기계 매출은 1200억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상품매출이 843억원으로 제품매출 367억원을 훨씬 웃돕니다. 직접 만들어 파는 범용 선반이나 밀링이 주력이 아니라 화천기공에게 공급받아 독점 판매하는 CNC선반 등이 공작기계 부문 매출의 대부분인 셈입니다.


화천기공은 화천기계의 34.54%(특수관계자 포함)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회계상으로는 모회사-자회사 관계가 아닙니다.  화천기공이 화천기계를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지분율이 50%를 밑돈다는 이유로 연결대상 종속법인에서 제외했겠죠. 국제회계기준(IFRS)에 어긋나지 않지만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분율과 관계없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연결대상 종속법인에 포함시키는 것이 IFRS의 취지입니다.


화천기계가 종속기업으로 분류되었다면, 화천기공의 2021년 연결매출액은 3040억원 가량이 되었을 겁니다. 화천기계 매출이 1760억원에 달하지만 연결 매출액에 더해지는 건 1000억원에 그치죠. 화천기공이 화천기계에 판매한 공작기계 760억원은 내부매출이기 때문이죠.  화천기계를 관계기업으로 분류하면서 국내 공작기계 매출이 더블 카운팅 되는 셈입니다.


마치 셀트리온그룹이 셀트리온(생산)과 셀트리온헬스케어(판매)를 연상시킵니다. 생산과 판매를 떼어 회사를 세우고, 더블 카운팅을 통해 매출을 부풀리고, 두 회사를 모두 기업공개하는 스킬을 화천그룹이 훨씬 먼저 시전했군요. 화천기계와 화천기공은 지분율이 50%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회계분류상 지배-종속 관계에 있지 않지만, 사업적으로는 서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34.54%라는 지분율 수치로는 그 존재의 의미를 제대로 담아낼 수 없죠.


김성진씨가 목표로 삼는 것이 경영권 인수와 지배구조 및 사업개편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라면 화천기계가 아닌 화천기공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천그룹 전부를 바꿀 수 있죠. 화천기계나 화천기공이나 사세가 하락 추세인 건 마찬가지이고, 시가총액도 엇비슷합니다. 하지만 권영열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50%에 육박하니 지분율 경쟁에서 승산이 희박하죠.


만약 김성진씨가 화천기계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그 여파로 화천기공과 화천기계의 독점공급계약이 깨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2021년 매출로 설명을 하면, 화천기공의 연결기준 매출은 1280억원 수준으로 감소하고, 화천기계 매출은 반 토막이 납니다. 매출 감소의 충격이 매우 크겠지만, 단순히 매출 감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제품의 생산기술이나 공정, 연구개발, 마케팅 등에서 두 회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더 있을 테니까요.


화천기공과 결별은 두 회사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이걸 제3의 주주나 이해관계자들이 찬성할 리가 없잖아요. 결국 김성진씨가 이사회를 장악한다고 해도 기존의 대주주를 마냥 적으로 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가능한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현 대주주에게 매출의 절반을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김성진씨가 화천기계 지분을 인수하는 목적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도 낮춰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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