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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티세미콘은 2014년 초 코스닥 상장사 아이테스트가 역시 코스닥 상장사인 세미텍을 흡수합병한 후 변경한 상호입니다. 두 회사는 모두 반도체 패키징 업체였고, 아이테스트가 세미콘의 경영권 지분을 168억원에 양수한 후 흡수합병했습니다. 당시 아이테스트의 최대주주는 반도체검사장비업체 프롬써어티였습니다. 프롬써어티의 최대주주는 임광빈 대표이사였죠. 에이티세미콘의 대표이사 역시 임광빈씨였고요.


프롬써어티는 이후 여러 차례 상호변경을 합니다. 2014년에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겠다며 에이티테크놀러지로, 2018년에 한국피엠지제약을 인수해 자회사로 두더니 피엠지파마사이언스로, 2019년에 모바일 악세서리를 만드는 위드모바일을 합병한 후 더블유아이(WI)로 바꾸었죠.



최대주주도 여러 차례 바뀝니다. 대표이사 부회장이던 임광빈씨가 2016년 8월 담보주식의 반대매매로 지분을 잃은 후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머큐리아이피테크가 12.61%의 지분율로 새로운 최대주주가 됩니다. 2017년 10월에는 감자 후 또 제3자배정 유상증자가 이루어지면서 변익성씨로 최대주주가 바뀝니다.


지금의 더블유아이, 과거의 프롬써어티를 언급하는 것은 에이티세미콘의 지배주주 김형준 대표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프롬써어티가 상호를 변경해 에이티테크놀러지가 된 시절(2014년 10월~2018년 6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엔 삼성 출신의 임광빈씨와 하이닉스 출신의 김진주씨가 에이티테크놀러지와 에이티세미콘의 소유와 경영 모두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임광빈씨는 에이티테크놀러지 지분 11.19%, 김진주씨는 7.2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임광빈씨가 두 회사의 부회장, 김진주씨가 두 회사의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에이티테크놀러지 지분에 대한 공동보유계약이 체결되어 있었습니다.



두 회사의 경영상태는 매우 나빴습니다. 적자행진이 이어지고 있었고 현금흐름도 악화됐습니다. 특히 매년 수백억 원의 차입금을 갚느라 보유 현금을 소진(에이티세미콘)하거나 유상증자를 반복(에이티테크놀러지)해야 했습니다.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죠.


그래서인지 2015년 하반기 이후 임정빈 부회장과 김진주 대표는 회사 매각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매각협상이 모두 실패하거나 철회됩니다. 에이티테크놀러지 매각이 여의치 않자 자회사인 에이티세미콘을 매각하려고도 하죠. 하지만 이 역시 이사회에서 부결돼 철회되죠.


자금사정이 안 좋았던 에이티테크놀러지는 에이티세미콘 지분을 몇 차례에 걸쳐 조금씩 매각하고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소규모의 유상증자를 하면서 유동성을 연명합니다. 에이티세미콘 지분은 금융회사에 담보로 잡혀 있었는데, 일부 지분이 담보권자인 골든브릿지투자증권(현 상상인증권)에 의해 반대매매를 당하기도 합니다. 에이티테크놀러지가 보유한 에이티세미콘 지분은 20%가 넘어갔었는데, 일부 매각과 반대매매 등으로 2015년 말에는 12%선까지 떨어지죠.


이듬해인 2016년 1월 에이티테크놀러지가 50억원의 전환사채를 발행하는데요. 인수자는 세종상호저축은행(현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이었습니다. 세종상호저축은행은 담보로 에이티테크놀러지 소유의 에이티세미콘 주식 거의 전부를 받아갑니다. 담보권이 전부 실행되면 에이티테크놀러지가 보유한 지분율은 0.07%로 떨어질 수 있었죠.


직후 임광빈 대표는 자신의 지분을 ㈜나앤우리라는 곳에 7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포포원이라는 개인회사를 설립해 에이티세미콘에 50억원의 출자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분 매각 계약은 철회되고 에이티세미콘에 대한 출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임광빈 대표의 지분이 매각되면 주주총회를 열어 새로운 이사진을 선임하려고 했죠. 주주총회 공고는 이미 이루어졌고 새로운 이사 후보도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매각이 무산되었으니 2016년 3월말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안이 대부분 부결되는데요. 부결된 후보 중 한명이 인스코비 대표이사를 역임한 강승곤씨입니다.


강승곤씨는 같은 날 열린 에이티세미콘 주주총회에도 이사 후보로 올랐습니다. 선임안은 부결되었죠. 무슨 이유에서 인지 임성빈 부회장의 이사 연임도 실패합니다. 그런데 이날 유일하게 사내 이사 선임안이 통과된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김형준 현 에이티세미콘 대표입니다. 김형준 대표는 당시 에버라인메디컬그룹 대표이사로 있었습니다. 이로써 에이티세미콘의 사내이사는 김진주 대표이사와 김형준씨 둘만 남게 되었죠.


그로부터 며칠 후 임광빈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에이티테크놀러지 주식 전부를 공평저축은행과 세종상호저축은행에 담보로 제공합니다. 바로 김형준씨가 100% 지분을 갖고 있고 대표이사로 있는 에버라인메디컬그룹의 운영자금 21억원 차입을 위한 담보였습니다. 임광빈 대표는 이 지분을 거의 전부 잃게 됩니다. 두 저축은행의 담보권 실행으로 대부분 주식이 반대매매 당하거든요.


임광빈 대표가 담보주식 반대매매로 지분의 거의 다 잃고 난 후 에이티테크놀러지는 21억원의 운영자금과 21억원의 기타자금 조달 목적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이를 ㈜머큐리아이피테크와 김형준씨가 인수합니다. 머큐리아이피테크는 8억원 규모로 발행된 전환사채도 인수하죠.


또 임광빈 대표의 지분 상실 직전 3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가 발행되는데요. 이 전환사채를 인수한 곳은 ㈜에버시버리라는 곳입니다. 후에 에이티테크놀러지의 주인이 되는 변익성씨의 가족 회사로 알려진 곳이죠.


다시 주주총회가 열리고 이사진이 새로 꾸려집니다. 이미 에이티테크놀로지 총괄사장을 꿰차고 있던 김형준씨와 신한금융투자 출신의 변익성씨가 경영진에 합류하죠. 김형준씨가 대표이사를 맡게 됩니다. 변익성씨는 그로부터 약 1년 후 김형준씨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가 됩니다.


머큐리아이피테크는 강성혁이라는 분이 2억원을 출자해 만든 회사였는데요. 40억원을 티에스컨설팅유한회사라는 곳에서 차입해 에이티테크놀러지의 지분과 전환사채를 매입합니다. 그런데 지분 취득 후 공시에는 김형준씨가 최대주주(34%), 변익성씨가 대표로 나옵니다. 두 사람이 공동 설립한 회사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변익성씨가 에이티테크놀러지 대표가 된 후에는 변익성씨가 머큐리아이피테크의 최대주주 겸 대표가 되죠. 변익성씨의 가족 회사 중 하나로 알려진 ㈜루멘파트너스의 최대주주(62.5%)이기도 하죠. 김형준씨가 에이티세미콘의 주인이 된 시점과 겹칩니다.


임광빈 대표의 에이티테크놀러지 주식을 담보로 저축은행에서 21억원을 차입한 에버라인메디컬그룹은 2017년 3월 에이티세미콘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20억원을 출자합니다. 그리고 그해 말 다시 제3자배정 유상증자때 12억원을 출자해 에이티세미콘의 최대주주가 되죠. 에버라인메디컬그룹은 사명을 제이앤에이치테크로 바꿨다가 다시 더에이치테크로 변경합니다. 김형준 대표의 개인회사이자 지금의 에이티세미콘 최대주주인 곳입니다.


에버라인메디컬그룹은 처음 설립될 때 최대주주가 김진주씨(30%), 대표가 김형준씨(30%)였습니다. 나머지 30%는 누구 몫이었을까요? 혹시 에이티테크놀러지 주식을 담보로 준 임광빈 대표 아니었을까요?


에버라인메디컬그룹이 이름을 바꾼 더에이치테크는 에이티세미콘 최대주주가 될 때까지 투입한 32억원을 전액 차입으로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에이티테크놀로지의 주인이 된 변익성씨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에이티세미콘의 남은 지분 4.1% 전부를 더에이치테크에 장외매도합니다. 더에이치테크는 인수자금 15억원을 김형준 대표에게 빌려 오죠.


더블유아이의 최대주주가 올해 10월말 바뀌었습니다. 무려 405억5000만원에 달하는 대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리튬인사이트라는 회사가 그 중 300억원 규모의 신주를 인수해 27.69%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나머지 신주는 엘리노어앤케이라는 업체가 인수했습니다.


전형적인 무자본 M&A 사례입니다. 리튬인사이트는 지난해 11월 설립된 법인이고, 지난해말 현재 자본금 6700만원, 자산총액 6600만원짜리 회사였습니다. 가족으로 보이는 전유미(20%), 전유라(20%), 전웅(10%, 대표이사) 등 7명이 출자했더군요.. 엘리노어앤케이 역시 김지수라는 분이 100% 출자해 설립한 회사입니다.


리튬인사이트의 더블유아이 인수자금 300억원은 전액 차입금입니다. 1회차와 2회차 전환사채를 발행해 300억원을 마련했거든요. 정확히는 300억 259원이 신주인수에 들어간 돈인데, 259원만 자기자금으로 납입했습니다. 더블유아이는 공시에서 리튬인사이트와 엘리노어앤케이를 신주 배정자로 정한 경위에 대해 '투자자의 의향 및 납입능력, 시기를 고려하여 선정'했다고 했습니다만, 자본금 1억원도 되지 않는 신설회사에 300억원이 넘는 자금 조달능력이 있을 리 없잖아요. 두 회사는 미리 설계된 인수구조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회사 간판도 바꾸어 달았습니다. 지난달 2차전지용 수산화리튬 등 리튬 소재 제조를 사업목적에 추가하고 어반리튬으로 상호를 바꾸었습니다. 더블유아이는 과거 반도체 검사장비업체였지만, 지금은 휴대폰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아동복에서 약간의 매출(올해 3분기까지 3억원)이 발생하지만 미미한 수준입니다. 반도체 검사장비 사업은 완전히 접었습니다.


그 동안 했던 사업이나 지금의 사업은 2차 전지용 리튬 제조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본업을 매각한 에이티세미콘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계획인 셈입니다. 공교롭게도 에이티세미콘 역시 2차전지사업에 진출을 선언했죠.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고, 기존 사업 대신 신규 진출하는 사업이 2차 전지 관련업인 것까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김형준과 변익성의 의기투합이 재연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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