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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에스엠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가 다음달 주주총회 후 사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수만씨에게는 이제 욕심을 그만 부리고 용서를 구하라고 했고, 하이브에게는 적대적 M&A를 멈추라고 했죠. 에스엠 평직원 협의체도 현 경영진의 SM 3.0 계획에 대한 지지 표명과 함께 하이브로의 피인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그 말의 울림이 다르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회사를 생각하는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K-팝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에스엠이 후발주자인 하이브의 여러 레이블 중 하나로 전락하는 것 같은 현실이 에스엠 임직원에게는 누구나 자괴감으로 다가올 일입니다.


다만,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이수만씨가 개인회사를 통해 사익을 편취한 것은 사실이고, 불법 및 탈세 행위가 있었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수만씨가 지분을 매각한 것을 '도망쳤다'며 성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군림하는 선생님 이수만은 싫지만 최대주주 이수만은 좋은 걸까요. 아니면 이수만씨가 지분을 매각한 곳이 하이브라서 싫은 걸까요.


추론하자면 이렇습니다. 에스엠 경영진과 평직원 협의체(모든 직원의 생각이 같지는 않을 테니 굳이 이렇게 씁니다)는 얼라인파트너스의 주주제안에서 촉발된 회사의 변화(지배구조 개선 및 SM 3.0 계획)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최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에스엠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회복할 기회로 여겼습니다. 새로운 지배적인 최대주주를 맞이하기는 싫었습니다. 카카오는 9.05%의 지분만을 가진 협력자로 다가왔지만, 하이브는 이수만씨의 지분을 넘겨 받고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점령군으로 비쳐져 싫었습니다.


경영진과 평직원 협의체는 이수만씨가 지분을 팔지 않고 경영은 물론 프로듀싱 등 회사 업무에도 관여하지 않고 단지 주주로만 남아 주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카카오에 지분을 팔면 뭔가 언짢으면서도 받아 들였을 겁니다. 자신들이 모셔 온 협력자이니까요. 설사 카카오의 여러 레이블 중 하나가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기본적으로 지분 매각 여부는 소유자의 엄연한 권리라는 걸 알기에 크게 나무라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하이브는 이수만씨 지분을 인수하면서, 이수만씨와 에스엠과의 모든 관계 정리와 SM 3.0과 비등한 개선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약속대로 모두 이행된다면 에스엠은 이수만씨와 갈등을 빚으면서 얻으려 했던 것을 대부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에스엠 임직원들 입장에서 액면 그대로 믿어주기는 쉽지 않겠죠. 설사 믿는다고 해도, 스스로 이루는 것과 점령군에게 선물처럼 받는 것은 천지차이일 겁니다.


라이크기획을 대신한 이수만씨의 홍콩 개인회사 CT Planning과 해외 레이블사와 계약에 대해 역외 탈세 의혹을 제기하며, 에스엠 경영진은 하이브에 '모르는 것이냐, 묵인하는 것이냐'고 따져 묻습니다. 이렇게까지 의심하는 걸 보니 에스엠 경영진은 이수만씨와 하이브를 매도자와 매입자의 관계가 아니라 한패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하이브는 CT Planning이 이미 계약된 에스엠 아티스트와 관련된 수익을 받지 않기로 했고, 이수만씨가 에스엠 프로듀싱을 맡는 일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이 역시 에스엠은 믿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계약의 주체가 CT Planning과 해외 레이블사이지, 에스엠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의심입니다. 하이브가 아니라 이수만씨가 직접 CT Planning과 해외 레이블사의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약속하면 해소됐을 의심인 것 같은데 말이죠.


이성수 대표가 남긴 사임의 변 때문에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은 아이템 하나를 잃었습니다. 하이브가 밝힌 에스엠 개선방안이 하이브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사를 쓰려고 했거든요. 이성수 대표 말대로 하이브는 지금까지 배당을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은 분리되어 있지만 방시혁 의장이 사외이사는 아니죠.



에스엠 당기순이익의 30% 이상을 주주환원하겠다고 했으니, 하이브 스스로도 그에 준하는 주주환원정책을 수립해야 명분이 서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에스엠의 주주환원 확대 정책은 하이브에 최대 수혜가 돌아갑니다.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39.8%의 지분을 확보한 최대주주가 되니까요.


얼라인파트너스는 언제까지 싸움을 계속할까요. 여전히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을까요. 얼라인파트너스가 에스엠을 투자대상으로 낙점한 것은 하이브 등 다른 연예기획사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에스엠에 투자하고 어쩌다 보니 행동주의 펀드가 되었다 했습니다. 라이크기획으로 새는 돈을 막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주주제안 등의 방식으로 이수만씨와 에스엠 경영진을 압박했습니다.


현 경영진은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거의 받아들였습니다. 하이브 역시 얼라인파트너스가 에스엠에 요구한 것과 유사한 개선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주주환원정책의 경우 오히려 얼라인파트너스보다 강화된 방안을 내놓았죠. 행동주의 펀드로서 주주들에게 보여줄 건 다 보여준 셈입니다.


얼라인파트너스가 원하는 건 경영진의 퇴진도, 최대주주의 교체도 아닙니다. 주가를 높여 높은 투자 수익을 얻고 엑시트를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에스엠이 본업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돈을 잘 버는 회사가 되고, 지배구조를 개선해 경영이 투명해지고, 배당 확대 등의 주주환원정책을 강화하라고 하는 건 투자의 명분이자 펀드의 성격입니다.


에스엠의 최대주주가 이수만씨가 아닌 하이브로 바뀌는 게 얼라인파트너스에게 싸울 일인가요. 현 경영진을 하이브로부터 지키는 것이 중요할까요. 카카오가 에스엠의 최대주주가 되거나 강력한 사업 파트너가 되는 걸 도와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사회와 위원회를 사외이사 중심으로 바꾸고, 이수만씨가 개인회사를 통해 사익편취하는 것을 막고, 회사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회사와 비영업자산을 매각하고 배당을 늘리면 얼라인파트너스는 할 일을 다 하는 겁니다.


얼라인파트너스의 선택은 목표 주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얼라인이 에스엠 주식을 매입한 평균 단가가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회사 설립이 2021년 9월이고 지난해 2월말 주주제안을 할 보유 주식이 21만1694주(특수관계자 포함)인데, 그 이후 추가 취득이나 처분 공시가 없으니 대략 주당 7만원 근방일 것 같습니다. 에스엠 주가가 오늘(17일) 종가로 13만100원이니 이미 80% 이상의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양에 차지 않는 모양입니다. 하이브가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 12만원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고 일갈을 한 걸 보면 말이죠. SM 3.0이 성공하면 영업이익이 3배 늘어날 것이고 주가는 30만원이 갈 수도 있다고 했죠. 영업이익이 3배 늘어나면 지금의 하이브 수준이 됩니다.



하지만 공개매수 가격을 30만원으로 올리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그건 말도 안되는 얘기죠.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매수하는 것이니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서 사라는 겁니다. 이게 에스엠 일반 주주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는데, 하이브 입장에서는 아닙니다. 12만원은 이수만씨 지분을 매입한 가격으로 이미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졌으니까요.


얼라인파트너스는 당분간 현 경영진과 연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 경영진과는 1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 하며 신뢰를 쌓은 반면 하이브는, 에스엠 저평가의 근본 원인이라고 얼라인파트너스가 믿고 있는 이수만씨가 에스엠의 다음 주인으로 선택한 곳이니까요. 게다가 하이브 역시 방시혁 의장이라는 개인의 영향력이 막강한데다 지금까지 배당 한번 해 본 적이 없는 회사잖아요.


3월 주주총회 이후 얼라인파트너스가 에스엠의 감사나 사외이사 중 한 자리를 차지하며 계속해서 경영에 관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봅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더 이상 회사의 경영진을 좌지우지할 물리적 영향력이 없으니까요.


얼라인파트너스의 에스엠 지분율은 고작 0.91%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주총에서 자신들이 내세운 후보를 감사로 선임 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은 일반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에서 나왔습니다. 현 경영진과 에스엠 직원들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대부분 주주들의 대변자로 인정 받았기 때문이죠. 라이크기획 문제를 포함한 이수만씨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그 힘을 얻게 해 주었습니다.


이수만씨와 현 경영진의 경영권 싸움은 이제 하이브와 현 경영진, 또는 현 경영진과 카카오 연대로 바뀌었습니다. 이수만씨는 싸움의 당사자가 더 이상 될 수 없습니다. 라이크기획 문제는 일반 주주들을 끌어 모을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없습니다. 하이브가 일반주주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 이상 얼라인파트너스가 현 경영진을 지켜줄 힘이 없습니다.


일반주주들은 이미 하이브와 카카오 중 누가 더 나을까 저울질 하고 있습니다. 카카오가 공개매수를 선언하고 하이브에 맞불을 놓는다면 현 경영진이 승리를 얻어낼 수도 있겠죠. 얼라인파트너스가 카카오 연대에 함께 하더라도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남을 것입니다.



얼라인파트너스가 더 이상 에스엠 사건의 주역이 될 수 없다고 해도 단기 차익만 얻고 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스스로를 장기투자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자원배분을 선진화하면(예를 들어 SM 3.0의 성공) 에스엠의 주가가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판단해 투자를 결정했을 텐데, 그게 단기간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잖아요.


얼라인파트너스는 또 가격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여러 기업에 분산투자하는 것보다는 소수의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장기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투자를 지향하고 있죠. SM 3.0이 제대로 정착되면 주가가 30만원까지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그 믿음이 틀렸다고 판단되거나 SM 3.0이 실패작이라고 판명날 때까지 투자를 유지하거나 확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언행이 다른 가짜 행동주의 투자자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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