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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리튬이온 2차전지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LG에너지솔로션, 삼성SDI, SK온)의 매출도 지난해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3사가 만드는 K-배터리 매출은 전년 34조원에서 지난해 53조원으로 55% 증가했습니다. 후발주자인 SK온의 매출은 무려 151%나 증가했습니다.
물론 세 회사가 전기차용 2차전지만 판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ESS용 대형전지와 스마트폰 등의 소형전지도 함께 생산하고 있고 삼성SDI의 매출에는 반도체 소재나 편광필름 같은 전자재료 매출(2조5578억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SK온은 현재 전기차용 중대형 2차전지만 생산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전지 시장은 세계 각국의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에 힘입어 올해도 39%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외국의 경쟁업체들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다면 K-배터리의 높은 매출증가율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죠. 아마도 2차전지 매출의 성장률로만 보면 SK온이 가장 높을 것 같습니다. ESS와 소형전지 시장은 자동차전지 시장의 규모에 비해 훨씬 작거든요.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은 매출 확대와 함께 영업이익 흑자기조에 들어섰습니다. 삼성SDI의 자동차전지 부문은 2021년부터 흑자로 돌아섰고 지난해부터는 전 부문에서 흑자를 달성했죠.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영업이익1조2137억원으로 전년 대비 58%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이 삼성SDI는 7.9%에서 9.0%, LG에너지솔루션은 4.3%에서 4.7%로 개선되었습니다.
시장진입 초기라고 할 수 있는 SK온은 아직 적자가 커지고 있는 국면입니다. 지난해 영업적자가 1조원을 넘어섰습니다. 2017년 이후 누적 영업손실이 3조3000억원정도 됩니다. 다만 손실률은 22.5%에서 14.1%로 크게 낮아진 것은 흑자전환의 기대를 갖게 합니다.
회사는 올해까지는 영업적자가 불가피하겠지만 내년부터는 영업흑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원래 지난해 흑자전환을 목표로 했는데 후퇴한 셈이죠. 미래에셋증권에서는 올해 2분기부터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을 올해부터 받게 되고 북미 공장 신설로 판매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죠.
신용평가사에서는 좀 보수적으로 봅니다. IRA 보조금과 매출 증가의 효과가 적자요소를 모두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미국내 대대적인 설비투자는 고정비 증가로 이어질 것이고, 초기 가동비용이 막대하게 발생할 것입니다. 전기차업체들은 가격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배터리 원재료인 소재가격은 크게 올랐고, 인건비 상승 부담도 적지 않습니다.
또 하나 큰 악재가 있는데요. 바로 수율 문제입니다. 키움증권은 현재 SK온의 헝가리 공장과 미국 공장의 수율이 70%이하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수율은 90% 이상이라고 하니, SK온의 수율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지난해 손익에도 수율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매출원가는 83.2%인데, SK온의 매출원가율은 99.9%에 달합니다. 매출 마진이 거의 없죠. 이걸 좀 더 분해해 볼까요? 제조원가명세서 등이 공시되지 않으니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공시되는 재무제표만으로도 얼추 비슷하게 짐작해 볼 수는 있습니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의 매출원가 중에서 인건비와 감가상각비 등 가공비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원재료와 상품의 사용액을 뽑아내면 16조8540억원입니다. 대략 매출액의 66% 정도 됩니다. SK온은 가공비를 제외한 매출원가가 6조3415억원입니다. 원재료와 상품의 사용액만으로 이미 LG에너지솔루션의 매출원가율 83.2%와 같습니다. 배터리를 LG에너지솔루션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수율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SK온이 영업흑자를 달성하려면 인건비 절감 등 비용축소로는 답이 안보이고 손익분기를 달성하는 판매량은 LG에너지솔루션보다 훨씬 많아야 할 것이니 역시 요원합니다. 원재료가 되는 소재 등의 구매가를 후려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시장 지배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 않은 SK온에게 그 정도 교섭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나중에 더 큰 문제를 만들겠죠.
결국 수율을 경쟁자들 수준으로 끌어 올리지 않고서는 SK온의 영업이익이 흑자기조로 돌아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SK온이 2024년 영업흑자 달성을 전망하는 것은 기존 공장의 생산라인 안정화로 수율 문제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지난해 흑자달성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했듯이 말 그대로 가봐야 알 수 있는 문제 같습니다.
수율 하락 문제가 중국 유럽 미국 등 세계 각지로 생산지를 넓히면서 불거졌고, SK온이 2025년까지 배터리공장을 대대적으로 지을 계획임을 감안하면 수율 이슈가 단기간에 근본적으로 해소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SK그룹의 신용위험을 경계하는 이유는 그룹 내 최대 자산인 SK하이닉스의 실적 및 재무안정성 악화와 더불어 SK온의 엄청난 '빚투'에 있습니다. 자체적인 자금조달 능력을 가진 SK하이닉스의 경우 신용등급이 하락해도 다른 계열사의 지원을 받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룹 신용도 관점에서는 가산점이 사라지는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K온은 그룹 신용도에 명백한 위험요소입니다. 신용평가사들은 SK온의 실질적인 자체 조달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등 계열의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죠. 대대적인 투자계획을 감안할 때 2025년까지 SK온의 차입금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Pre-IPO를 통해 유상증자를 추진하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하기 때문이죠.
만약 SK온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SK온에 대한 자금지원이 크게 늘어난다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도 위험해집니다. 여기에 SK하이닉스의 실적부진마저 장기화된다면 최상위 지배회사인 SK㈜의 신용등급도 안전하지 않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SK온은 그룹 신용도를 흔들 수 있는 트리거인 셈입니다.
SK온의 대규모 투자와 그로 인한 차입금 증가가 예정된 수순이라면, 신용평가사는 SK온의 수익창출능력을 주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입금 증가를 용인할 만큼 수익창출능력이 개선되거나 머지않아 개선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준다면 신용등급 하락을 피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신용평가사의 인내도 끝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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