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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 인수를 추진했던 기업은 여럿 있지만 결과적으로 변죽만 올린 셈이고, 실제 경기에 참여한 선수는 금호그룹과 STX그룹으로 압축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비록 단역으로 출연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진정한 승자인지도 모를 또 하나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외국의 한 투자그룹, 국내 한 증권사, 그리고 벤처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이 팀은 마치 대한통운 인수전이 어떻게 흘러갈지 미리 알았던 것처럼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한방을 준비합니다.


산업은행이 출자한 벤처기업이 있었습니다.


외환위기의 한 가운데에 있던 1998년 9월 설립된 오버넷㈜이라는 벤처기업이 있습니다. 벤처기업이기는 하지만 메가패스 가입자들에게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통신(현 KT)의 제휴업체인 점으로 볼 때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창업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창업한지 1년 만에 HyperDSL이라는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KT의 메가패스 공동 사업자로 선정되는 동시에 산업은행과 산은캐피탈의 지분 투자를 유치하는 등 초고속으로 사업이 안정화됩니다. 1999년까지 결손이 15만원밖에 되지 않았으니, 정말 복 받은 벤처기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대주주인 신창호 대표이사와 개인주주들이 대략 20억원 정도의 창업자본을 댄 것으로 보이고 산업은행과 산은캐피탈은 똑같이 2억8800만원(10.87%)씩을 투자했습니다. 산업은행과 산은캐피탈이 어떤 인연으로 이 회사에 지분투자를 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산업은행이 민간 벤처기업에 대출 지원을 해 주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지분 참여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죠.


'산업은행 정책자금'이라고 하는 것은 저금리 대출 지원을 의미합니다. 산업은행이 수 많은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전력이 있지만, 그건 대부분 위기에 빠진 대기업을 구하기 위한 공적 자금이지, 벤처기업의 성장을 돕기 위한 지분투자가 아닙니다. 궁금하기는 한데 파헤칠 방법도 별로 없고, 무지하게 중요한 것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설마하니 다른 꿍꿍이가 있었겠어요? 그래도 국책은행인데.


대한통운 지분 14.5%를 매집한 큰 손이 매출 100억원짜리 벤처기업이었습니다.


STX 팬오션이 2005년 10월 느닷없이 대한통운의 (경영권 없는) 대주주에 등극한 건, 장내 매매가 아니라 장외에서 누군가와 대규모 주식거래를 했기 때문이죠. 확보한 21%의 지분 중 6.5%는 외환은행 등에게 사온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14.5%를 STX 팬오션에 넘긴 당사자는 놀랍게도 연 매출액 100억원 남짓의 오버넷이었습니다.


오버넷은 대한통운 주식 160만주를 주당 7만원 받고 팝니다. 무려 1120억원, 연 매출액의 10배, 총자산(2004년말 338억원)의 3배가 넘습니다. 너무 큰 돈을 한꺼번에 벌어서 본업은 취미생활이 된 걸까요? 창업 초기부터 포장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오버넷은 아직까지 그저 그런 중소기업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해 연 매출 100억원짜리 회사입니다. 지난 19년간 올린 영업이익의 총합이 240억원에 그칩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오버넷은 2004년말까지 1년 정도에 걸쳐서 채권단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물량을 주당 평균 2만원에 사 모았다고 합니다. 대략 320억원 정도를 대한통운 주식 사는데 쓴 겁니다. 그렇게 14.5%의 지분을 확보했는데, 5% rule에도 걸리지 않아 공시 한번 한 적이 없습니다.


총자산이 338억원(순자산이 329억원이었습니다)인 기업이 무려 320억원이나 되는 돈을 대한통운 주식을 사는데 썼다? 그것도 1년간에 걸쳐서 소리 소문도 없이? 이게 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죠? 신창호 대표가 신이 내린 주식 천재라서, 대박이 날 것을 확신하고, 본업은 제쳐두고 회사가 가진 자산을 탈탈 털어 1년이라는 시간을 대한통운 투자에 몰두했던 건가요?


벤처기업에게는 대한통운 '초 대박'의 흔적이 없습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창호 대표는 주식투자에 미쳐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버넷은 대한통운 투자로 그렇게 큰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무대의 뒤에서 벌어진 일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오버넷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자산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높은 이자수익을 올립니다. 마치 자산 전체가 금융자산인 기업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2005년 대한통운 지분을 팔아 66억원의 목돈을 챙깁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320억원을 투자해 800억원(1120억원-320억원)의 차익을 거둔 대박은 오버넷의 재무제표에 없습니다. 더구나 2006년 이후에는 이자수익도 별로 없고, 이렇다 할 투자수익도 없습니다. 1120억원의 대부분은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죠. 총자산 338억원인 기업이 320억원을 주식 투자에 쓰고, 열 달간 때를 기다렸다가 대한통운 인수전에 나선 STX팬오션에 매집한 주식 전량을 넘겼다? 오버넷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진짜는 따로 있었던 겁니다.


2004년말 현재 오버넷이 직접 보유한 대한통운 지분은 1.4%, 취득원가는 36억원 정도였습니다. STX팬오션에 넘긴 14.5%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오버넷은 정체불명의 다른 회사와 함께 대한통운 지분을 나누어서 삽니다. 지분율 5% 이상이면 공시를 해야 하는 의무를 피해가기 위해 편법을 쓴 겁니다. 오버넷과 손을 잡은 회사들은 ㈜엘로우통신, 푸른컨셜팅(주), (주)메가샷이라는 곳들인데, 오버넷과는 지분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지금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곳들입니다. 이름도 뭔가 조금씩 이상하다는……(엘로우나 컨셜팅은 오타가 아닙니다)


대한통운 주식을 매집하고 STX에 팔기까지 약 2년 간은 저 이상한 이름의 기업들의 존재를 외부에서 알기 어려웠습니다. 엘로우통신 등 3개사는 외감법인이 아니라 공시 의무가 없었고, 오버넷은 이들과의 거래를 교묘히 숨겼으니까요.


3개사의 존재는 모든 상황이 종료된 200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오버넷의 감사보고서에 나타납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겠죠. 오버넷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을 겁니다.


초 대박의 주인은 벤처기업의 주주인 외국 투자회사였습니다.


오버넷의 공시를 근거로 추리한 이들 간에 이루어진 거래의 요강은 이렇습니다. 오버넷이 세 회사에 각각 82억원, 76억원, 87억원을 대여하고 그 돈으로 대한통운 지분을 나누어 삽니다. 오버넷은 세 회사에서 9%의 이자를 받기로 합니다.



그런데 세 회사가 대한통운 투자로 얻은 이익이나 손실은 엉뚱하게도 브로드밴드 인베스트먼트(이하 브로드밴드)라는 곳으로 귀속됩니다. 브로드밴드는 오버넷의 주주였습니다. 오버넷은 세 회사에 빌려준 주식투자자금에 대해 담보로 브로드밴드가 보유한 자사 주식을 받습니다.


대한통운 투자의 진짜 주체는 브로드밴드였습니다. 그래서 투자이익과 손실이 거기로 가는 겁니다. 브로드밴드가 오버넷에 자본을 출자하고, 오버넷은 그 돈으로 엘로우통신 등 3사와 함께 대한통운 주식을 사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