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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그룹 송영숙 회장의 지분 매각과 임주현 사장의 주식스왑을 중개한 게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 파트너스라고 합니다. 지난 3년간 한미그룹의 투자유치와 경영자문을 수행해 왔고, 한미사이언스와 OCI홀딩스의 지분 거래를 제안한 장본인도 라데팡스파트너스의 김남규 대표라고 합니다.


두 그룹이 '통합'이라고 부르는 거래를 선언하고 난 뒤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입장문을 통해 '선진 지배구조의 완성'을 위해 통합을 주도했다고 스스로 밝혔죠. 언론에 보도된 라데팡스파트너스 관계자의 주목할 만한 발언이 있습니다. ① 수많은 금융기관과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② 삼성, 현대기아차, LG그룹 등 국민의 힘으로 키워 온 기업들마저 60%에 달하는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 국내 자본이 아닌 해외 자본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고, ③ 미국, 유럽, 일본 기업들이 어떠한 형태로 국가 자본 소유로 지배구조를 지켜나갔는지를 분석했고 ④ 그 결과 한미그룹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화학그룹인 OCI를 선택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한미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이 추진되는 작은 단서와 함께 의구심도 갖게 됩니다. 우선 통합의 명분이 한미그룹이 해외 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국내 다른 재벌그룹을 선택했다는 점, 수많은 국내외 금융기관과 협의를 한 결과 국내 금융자본과는 만족할 만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을 거라는 점, 수많은 협의를 한 이유가 한미그룹 오너 일가의 상속세 문제 때문이라는 점 등입니다.


그런데 상속세 때문에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해외 자본의 손에 넘어갈 것이라는 결론은 어떻게 내리게 된 걸까요? 국내 자본과 거래하면 꼼짝없이 거액의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해외 자본과 거래하면 상속세를 크게 줄이거나 아예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뜻인 걸까요? 그렇다면 한미그룹의 상속인들은 거액의 상속세를 내더라도 한미그룹을 해외에 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거나, OCI그룹과의 통합으로 상속세를 아낄 묘수를 찾아냈다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아도 시민단체에서 OCI그룹과 통합이 상속세 절감을 위한 꼼수라고 지적하자, 한미그룹 측은 이미 확정된 세금을 절감할 방법은 없으며, 5400여 억원의 상속세 중 절반을 납부했고, 나머지 절반도 3년 내 납부할 예정"이라고 밝혔죠.


이런 말도 했습니다. ①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을 위해 지주회사체제 밖 계열사 문제를 해결하고, 선진적인 기업문화 정착을위해 전문경영인을 통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조언했고, ② 재무적투자자를 상대로 한 단순 지분매각이나 파킹 딜보다 전략적 파트너와의 공동경영이 선진 지배구조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수 많은 금융기관을 만났을까요? 라데팡스파트너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매각을 위해 MG새마을금고, IMM인베스트먼트, KDB인베스트먼트 등과 프로젝트펀드 결성을 추진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재무적 투자자이거나 파킹 딜을 위해 만났습니다.


지난해 5월초 한미그룹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사장은 11.78%의 지분을 3132억원에 라데팡스파트너스로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습니다. 절반가량 남은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21년 설립된 라데팡스파트너스가 무한책임투자자(GP)로 나선 데뷔 거래였습니다.


라데팡스는 2022년 8월부터 이 거래를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지는데, 군인공제회 등 4개 금융기관과 클럽딜을 추진했는데, 마침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자금시장이 경색된 터라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초 MG새마을금고가 전주(錢主, LP)로 나서면서 일이 잘 풀리나 싶었죠. 하지만 새마을금고가 뱅크런 사태를 겪으면서 신규 대출이 전면 중단되는 바람에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이 거래중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인수하는 6.26%의 지분 매각은 6개월 후에 매입가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였고, 풋옵션 행사가격은 원금에 연율 10%의 이자를 더한 금액이었습니다. 또 지분매입으로 한미사이언스 주주가 될 라데팡스파트너스와 코러스는 송영숙 회장과 공동 보유 약정을 맺었습니다. 진정한 매매(True Sale)이라기보다는 파킹에 가까웠습니다.


라데팡스와 코러스는 주주간 계약에 따라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씨 보유 지분에 대해 동반매각요구권을 갖기로 했습니다. 라데팡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제3자에게 넘길 때 모녀의 나머지 지분도 함께 팔 수 있었던 겁니다. 아마도 동반매각에는 어떤 '조건'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만, 어쨌든 두 모녀는 한미사이언스의 나머지 지분, 어쩌면 모든 지분을 매각할 의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해도 한미그룹을 지킬 자신이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주주로서 회사에 대한 미련은 크지 않았던 걸까요?


또 라데팡스가 동반매각요구권을 행사하게 되면 임주현씨의 자녀 김원세, 김지우의 보유 주식도동반매각의 대상이 되는 확약을 맺습니다. 송영숙 회장이 OCI그룹과 처음 지분매각 계약을 할 때도 가현문화재단이 아닌 두 손주를 동반 매도자에 포함시켰었죠. 이때부터 그 구조가 이어져 왔던 셈입니다.


지난해 11월 중순 새마을금고 대신에 IMM인베스트먼트와 KB인베스트먼트가 새로운 공동 GP후보로 등장합니다. 라데팡스와 함께 프로젝트펀드 조성을 검토했죠. 당시 송회장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담보로 농협은행과 교보증권에서 1160억원을 대출했었고 만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160억원은 라데팡스에 지분을 넘기고 송 회장이 받기로 한 금액과 같습니다. 라데팡스파트너스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죠.


IMM인베스트먼트 등과의 협의가 언제 결렬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IMM인베스트먼트 등과 프로젝트펀드 조성을 검토한다는 것이 언론에 노출된 지 두달도 되지 않은 올해 1월 12일 한미사이언스는 송 회장의 주식 매각과 임주현 사장의 주식스왑, 그리고 한미사이언스의 유상증자를 골자로 하는 OCI그룹과 통합방안을 공개하죠. 같은 날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송 회장 및 임주현 사장과 맺은 주식매매계약을 해제합니다.


그러니까 OCI그룹과 한미그룹의 통합 논의는 길어야 두달, 어쩌면 한달 내외에 초고속으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새마을금고 또는 IMM인베스트먼트 등과 거래를 검토하는 중에 OCI그룹과도 물밑 협상을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라데팡스파트너스가 맡은 역할은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 개인 차원의 지분 매각이었습니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현금 마련이 목적이었죠. 송 회장의 두 아들인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 가족이 빠졌어도 이상할 게 없었죠.


그런데 OCI그룹이 상대방으로 등장하면서 그룹 통합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진화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 회장은 두 아들을 논의에서 제외시켰죠. 한미그룹을 통째로 OCI홀딩스에 자회사로 넘기는 조건으로 송 회장은 현금을, 임주현 사장은 현금과 OCI홀딩스의 각자 대표이사 자리를 받았습니다.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선진 지배구조에 대해 '전문경영인을 통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내세웠습니다. 이사회 중심의 경영은 주주 중심의 경영과 상대되는 말입니다. 두 명의 각자 대표만 두 그룹의 오너들이 맡고, 실제 경영의사결정은 이사회가 하게 된다는 뜻 같습니다. 그런데 각자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이사는 양 그룹이 동수의 사외이사를 추천한다고 하네요.



통합그룹의 지주회사가 될 OCI홀딩스의 이사회는 백우석 의장, 이우현 대표이사 회장, 서진석 대표이사 사장 등 3인의 사내이사와 4인의 사외이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중 통합 지주회사에는 이우현 회장만 사내이사로 남게 되고, 임주현 사장이 한미그룹을 대표하는 또 다른 사내이사가 되죠. 화학그룹과 제약그룹의 결합이니 사외이사도 화학사업 전문가와 제약사업 전문가로 새로 구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는 최대주주의 간섭을 막고 대표이사의 전횡을 견제하는데 매우 적합한 지배구조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기업에서 자주 목격되는 '선진' 지배구조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국내 많은 기업에서 사외이사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죠. 통합 그룹의 지배구조가 한국적 현실을 극복하고 진정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실현해 기업지배구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지, 그 실험을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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