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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켐이 상장할 때 신주발행대금이 950억원이었습니다. 증권사 인수수수료 등을 제하면 920억원 정도가 회사에 유입됐습니다. 공모희망가 기준으로는 680억원 정도였는데, 인기가 높아 공모가가 크게 높아지면서 증자액이 커졌습니다. 엔켐은 상장자금 중 가장 비중이 큰 370억원을 헝가리 공장과 중국 2공장에 투자할 계획이었고, 350억원 정도를 운영자금으로 쓸 예정이었죠.


하지만 상장자금만으로는 엔켐의 투자본능을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엔켐은 상장월 열린 이사회에서 중국 현지공장(엔켐케미칼 머티리얼즈)에 593억원을 출자하고, 그해 5월에 설립한 시다(Shida)와의 합작법인에 508억원의 증자를 결정합니다. 상장자금의 용도를 바꿔 전부 중국에 쏟아부어도 부족한 투자규모였죠.


결국 상장하자마자 대규모 자금조달에 나섭니다. 상장 당월인 11월 900억원 규모의 10회차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합니다. 900억원 중 275억원은 중국 공장 설립자금으로 배정됩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3월 모 일간지에는 엔켐의 대규모 자금조달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기사가 뜹니다. 상장한 지 반년도 되지 않는 엔켐이 무려 4000억원 규모의 전환상환우선주(RCPS)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시장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예정되어 있었다면 상장할 때 신주를 더 많이 발행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상장하자마자 추진할 투자였다면 예정이 되어 있었을테고, 그런 정보는 투자자들에게 제공되었어야 했습니다. 엔켐의 신규 상장주식을 매입한 기관투자가나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꼴입니다. 실제로 엔켐의 대규모 자금조달 계획은 주가 급락으로 이어집니다.



보도가 나온 다음달 엔켐은 실제로 대규모 전환상환우선주를 발행합니다. 다만, 시장의 불만을 의식한 것이었는지 몰라도 발행규모는 4000억원이 아닌 1015억원 정도였습니다. 600억원은 리튬염 공장 등 설비투자, 나머지는 리튬엽 매입을 위한 선급금 등의 운전자금 용도라고 했습니다.


엔켐의 신주인수권부사채와 전환상환우선주는 상장이전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사모 또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발행되었고, 신주인수권부사채는 405억원까지, 전환상환우선주는 50%에 대해 오정강 대표가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오정강 대표 입장에서는 꽃놀이패를 쥔 것과 같았습니다. 대규모 자금조달로 회사는 설비투자와 원부자재 등 운영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죠. 보통주로 전환될 수 있는 약 2000억원의 사채와 우선주는 오버행 이슈가 되어 주가를 하락시키는 악재였지만, 오 대표에게는 보통주로의 전환가액(행사가액)을 낮출 수 있으니 굿 뉴스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가령 10회차 신주인수권부사채의 경우 발행당시 행사가액은 11만2000원대였으나 7만8000원대까지 하락했죠. 또 상장 이전 발행한 전환사채의 경우 오정강 대표와 오 대표의 회사인 와이어트그룹이 올해 4월 2만원대에 주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엔켐의 주가는 20만원을 훌쩍 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오정강 대표는 취득한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취득할 자금이 있었을까요? 원래부터 재력가가 아니었다면 상장 후 상당기간 그렇지 못했을 겁니다. 엔켐은 배당할 능력이 없었고 오 대표는 상장 후 자기소유의 주식을 매각한 적도 없습니다. 도우미가 필요했죠. 오 대표는 콜옵션을 활용하기 위해 1억원을 출자해 개인회사 와이어트그룹을 설립하고 메리츠금융그룹을 비롯한 증권업계와 손을 잡습니다.


오 대표는 상장 당시 벤처금융의 소유주식 및 6개 투자자의 전환사채에 대해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지분율로는 9.6%에 달하는 물량이었습니다. 상장 후 엔켐이 900억원의 전환사채와 1015억원의 전환상환우선주를 발행하면서 콜옵션 계약은 11개로 늘어나고 그로 인한 잠재지분은 18.35%까지 높아집니다.


브라만피에스창인1호, 아르케피에스창인2호 등 벤처금융이 보유한 보통주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한 것은 오정강 대표의 개인회사 와이어트그룹입니다. 오 대표가 콜옵션을 와이어트그룹에 넘겼고 2022년 11월초 117억원을 들여 주당 1만6000원대와 1만7000원대에서 지분을 취득하죠. 또 역시 오정강 대표로부터 넘겨받은 콜옵션을 행사해 상장 전 발행된 전환사채를 인수합니다.



와이어트그룹이 2022년 전환사채와 보통주를 양수하는데 들어간 자금은 275억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와이어트그룹은 320억원 규모의 사모사채를 발행해 주식과 전환사채 양수자금을 마련했습니다. 결국 차입금인 셈인데요. 오 대표의 1억원 출자로 설립된 와이어트그룹에 무려 320억원을 쾌척한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엔켐은 그 차입처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와이어트그룹은 이달초에도 콜옵션을 행사해 약 37만주의 보통주를 주당 평균 2만7000원대에 확보했습니다.


메리츠증권은 엔켐이 상장직후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 중 25억원어치를 인수했는데요. 지난해 6월 브라만피에스창인1호와 아르케피에스창인2호로부터 120만주를 770억원에 장외매수하며 엔켐과 긴밀한 관계가 됩니다. 이 거래는 메리츠증권이 코스닥 상장사 광무와 맺은 총수익스왑(TRS) 계약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TRS 계약은 말 그대로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전체 수익을 맞바꾸는 것인데요. 주식의 매수주체는 메리츠증권이 되지만, 그 주식으로부터 발생하는 매매차익이나 배당금은 광무에게 귀속되는 방식입니다. 주식의 매각 또는 보유 여부도 광무의 지시에 따르게 되죠. 메리츠증권은 그 대가로 일정한 수수료를 받기로 했겠죠. 차명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광무가 메리츠증권과 TRS계약을 맺은 날은 바로 광무의 최대주주가 바뀐 날이었습니다. 새로운 최대주주는 아틀라스팔천 외 2인(어퓰런스투자조합, 씨에도어투자조합)이었죠. 아틀라스팔천은 바로 오정강 대표가 엔켐이 상장한 2021년 11월에 설립(지분율 53.01%)한 회사였습니다.


아틀라스팔천도 와이어트그룹과 마찬가지로 1억원의 출자금으로 설립되었는데, 엔켐 상장 직후인 2021년 12월 99억원을 차입해 광무가 발행한 100억원의 신주를 인수했죠. 여기에 특수관계자인 어퓰런스투자조합과 씨에도어투자조합이 40억원 신주를 인수하면서 광무의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메리츠증권은 광무와 TRS계약을 맺은 것과 별도로 약 30만주를 278억원에 매수하고, 전환상환우선주 15만주를 콜옵션을 행사해 확보한 뒤 보통주로 전환하기도 했습니다. 또 확보한 주식 중 119만주를 장내매도해 2096억원을 회수하고, 3만여주를 장외매도했습니다. 1000억원에 육박하는 막대한 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차익의 대부분은 계약상 광무에 귀속되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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