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제표를 읽는 사람들의 기사는 작성 후 최소 1주일 경과된 시점에 무료 공개되고 있음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SK E&S)가 합병하면 SK이엔에스의 재무적 투자자들이 대박을 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박을 예상하는 건 SK이엔에스가 2021~2023년 세 차례 발행된 상환우선주의 보통주 전환가격 주당 29만4000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2017년 주당 14만6066원에 제3자 배정으로 신주를 받은 10% 지분의 주주들이 100%가 넘는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지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주는 장부상 회사인 엠디프라임제일차와 엠디프라임제2차이고, 장부상회사들은 SK㈜와 총수익스왑(TRS) 계약을 맺고 있어서 합병 후 그 주식들이 매각되어도 시세차익은 SK㈜에 귀속됩니다. 또 계약상 주식 매각 시점을 TRS계약 종료 직전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합병이 올해 이루어진다고 해서 바로 매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합병후 SK이노베이션의 주가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특히 SK㈜가 TRS계약으로 시세차익을 얻을 '기회'를 갖게 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TRS계약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고, 상환전환우선주의 전환가격을 SK이엔에스 주당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건 현 시점에서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합병 논의나 기업가치와 관련해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건 발행규모가 무려 3조원이 넘는 상환전환우선주입니다. 이 상환전환우선주야말로 합병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고, SK이엔에스의 기업가치 평가에도 큰 변수가 됩니다. 우선주는 전량 글로벌 사모펀드 회사인 KKR이 보유하고 있는데, 보통주로 전환할 경우 18.7%에 달합니다. 게다가 자본으로 봐야 할지, 차입금으로 봐야 할지 헷갈립니다.


일각에서 SK이엔에스가 주주간 계약으로 다른 회사와 합병시 KKR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KKR이 반대하면 합병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주주간 계약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상법 상으로는 회사의 분할 또는 합병으로 종류주주에게 손해를 미치게 될 경우 주주총회 이외에 종류주주총회 결의를 거쳐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보통주주인 SK㈜에 비해 합병비율 등이 KKR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KKR의 동의를 얻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다만, SK이엔에스가 SK이노베이션와 합병을 하게 되면, 상환전환우선주의 보통주 전환가격은 합병비율에 따라 바뀌게 됩니다. 당연히 계약에도 합병이나 분할, 포괄적 주식교환이나 이전, 주식의 분할이나 병합, 자본감소 등의 경우 전환가격을 조정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KKR이 합병에 반대할 권리가 있는지, 있다면 정말 반대할 것인지는 예측할 수 없으니 논외로 하기로 하고,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한 내용부터 점검해 보기로 하죠. 우선주는 2021년 11월에 2조4000억원, 2023년 1월과 10월에 각각 3675억원씩 총 3조1350억원 규모로 발행되었고, 발행 주식 수는 534만여주에 이릅니다. 우선주 1주당 보통주 2주로 전환이 가능하니 보통주로 환산하면 약 1069만주가 됩니다. 전환가격은 2021년 발행분이 29만3090원, 2023년 발행분이 29만4000원입니다.


우선주는 비참가적, 누적적 조건으로 발행되었고 발행가액에 연율 3.99%의 우선배당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연간 1250억원에 달합니다. 2022년 이후 SK이엔에스의 배당금지급이 크게 늘어난 데는 SK㈜의 현금창고 역할에 더불어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한 배당 부담이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상환우선주에 대해 SK이엔에스는 조기상환권(콜옵션)이 있고, KKR에게는 보통주로의 전환청구권이 있고 상환요구권(풋옵션)은 없습니다. 투자자에게 풋옵션을 부여하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죠. 조기상환은 발행일로부터 5년 후 6개월간 또는 KKR이 전환청구예정통지를 한 날로부터 2개월간 가능합니다. 그런데 KKR의 전환청구는 발행일로부터 5년 6개월이 지난 후 만기(30년)까지 가능하죠. 어쨌든 특별한 다른 숨은 약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5년 및 5년 6개월이 지나야 상환이든 전환이든 청구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최초 발행일인 2021년 11월 5일을 기준으로 2026년 11월 5일까지는 SK이엔에스가 조기상환을 청구할 권리도, KKR이 전환청구를 할 권리도 없습니다.


상환시 상환가격은 투자자의 내부수익률이 2021년 발행분은 7.5%, 2023년 발행분은 9.5%가 되는 금액입니다. 발행 후 5년이 되었을 때 조기상환을 한다고 가정하고 어림잡아 계산하면, KKR이 얻는 총 회수액은 4조6000억원이 되고, 연간 우선배당으로 1250억원씩 5회를 수령하면, 조기상환 때 약 3조9776억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SK이엔에스로서는 보유 현금으로 상환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죠. 다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거나, 보통주 우선증자를 하거나, 회사채 발행 등 차입을 통해 순차적으로 상환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입니다. 총 상환액은 SK이노베이션과 합병하더라도 달라지지 않으니, 2026년 11월이후 합병법인은 신종자본증권 상환으로 큰 고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2026년 11월 2조4000억원의 상환전환우선주에 대한 SK이엔에스의 조기상환 청구는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습니다. 발행조건 상으로는 옵션, 즉 권리이지만 조기상환 청구를 하지 않을 경우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죠. SK이엔에스의 조기상환 청구가 없으면, KKR은 전환청구를 할지 말지 저울질하게 될 텐데요. 합병 등의 다른 조정사항이 없다면 우선주 1주당 보통주 2주(주당 29만4000원)를 받게 되니, 당시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크게 높다면 전환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통주로의 전환을 선택하기 곤란할 수 있습니다.


최초 상환우선주 발행 후 5년 6개월이 되는 2027년 5월까지 조기상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KKR은 전환청구 의사를 전달할 수 있죠. 아니, 틀림없이 하게 될 겁니다. KKR은 꽃놀이패를 쥐고 있거든요. KKR의 전환청구를 받은 SK이엔에스는 2개월 안에 상환우선주를 갚아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만한 돈이 없어서 갚지 못했다고 해도 상환우선주가 무조건 보통주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KKR은 다시 한번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매우 높다면 전환을 선택해 시세차익을 누리겠지만, 특정 기준가격보다 아래라면 정식 전환청구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때 기준가격이란 KKR의 내부수익률이 17.5%가 되게 하는 금액입니다. 5년 6개월 후 지체없이 전환청구 예정통지가 이루어진다면, 정식 전환청구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은 5년 8개월이 될텐데요.


전체 상환우선주에 대해 이때까지 내부수익률이 17.5%가 되는 금액을 어림잡아 계산하면 배당금을 차감하고 7조1096억원이 되고, 이를 주가로 환산하면 보통주 1주당 67만원이 됩니다. 결국 SK이엔에스가 조기상환에 나서지 않으면 KKR은 보통주 1주당 67만원 아래에서는 전환의사를 번복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우선주주로 배당을 받아먹으면서 상환을 요구하거나 전환을 요구할 기회를 여전히 갖게 되죠.


그런데 이 경우 우선주의 조건이 달라집니다. 우선배당률이 기존 3.99%에 5%포인트를 더해 8.99%가 되고, 보통주에 배당이 이루어질 경우, 보통주식으로 환산한 지분율만큼 배당에 참가하는 참가적 우선주로 바뀝니다. 총 상환우선주에 대해 최소 연간 280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지급해야 하고, 추가로 보통주 배당금도 나누어 주어야 하죠.



SK이엔에스 상환전환우선주는 상환시점이 늦어질수록 상환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KKR에게 제공해야 하는 IRR은 7.5%아 9.5%인데, 우선배당률이 3.99%이니, 그 차이만큼 상환시점에 상환금액이 적립됩니다. KKR이 전환의사를 통지했는데 회사가 상환하지 않았고, 그때 보통주 주가가 IRR 17.5%를 충족하지 못하는 수준이라서 KKR이 전환의사를 철회하면, 우선배당률은 8.99%로 높아지는데, KKR에게 제공해야 하는 IRR은 그대로 7.5%와 9.5%를 유지할까요? IRR이 7.5%인데 우선배당률이 8.99%가 되면 KKR이 받은 배당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계산이니 그럴 리가 없겠죠? 공시되지 않은 정보라 확인할 수 없지만, IRR 역시 높아진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17.5%가 그래서 나온 숫자인지도 모르죠.


이런 가혹한 조건으로 우선주가 발행된 이유는 사실상 조기상환을 강제하기 위함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비록 회사에 상환의무가 없는 우선주로 발행되어서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5년 후 조기상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설계된 상환전환우선주인 셈입니다.


만약 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 합병이 이루어진다면, 두 회사의 합병비율에 따라 KKR이 보유한 우선주의 조건도 달라질 것입니다. 가령 SK이엔에스 1주당 SK이노베이션 0.5주가 교환(합병비율 0.5)된다면 KKR의 전환가격은 29만4000원이 아니라 58만8000원이 될테고, SK이엔에스 1주당 SK이노베이션 2주가 교환(합병비율 2)된다면 전환가격은 14만7000원이 되겠죠. 배당은 똑같이 받아갈 테고, 합병법인이 조기상환을 하지 않으면 KKR은 합병법인의 주가가 134만원 아래(합병비율 0.5) 또는 33만55000원 아래에서는 보통주로 전환하지 않고 한껏 높아진 배당수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SK온, 나아가 SK이노베이션을 살리기 위해 SK㈜가 현금창고인 SK이엔에스 배당을 포기하는 건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 기업공개를 통해 구주의 상당부분을 매각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합병 후 SK이노베이션의 자금과 재무구조 문제가 확실히 개선된다면, 지주회사가 당연히 감수해야 비용이라고 할 수 있습닏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다른 주주들은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선주 배당금과 상환 부담을 우리 회사가 지게 된다'는 생각이 들면, SK이엔에스가 보약이 아닌 독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합병 덕분에 SK온이 상장에 성공하고 SK이노베이션이 재무적 안정을 찾을 지 몰라도, SK온 IPO의 과실이 SK이엔에스 상환전환우선주 때문에 상당부분 KKR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합병에도 불구하고 SK온의 정상화가 지연된다면, SK이엔에스의 상환우선주는 비관적 시나리오의 마지막 퍼즐이 될지도 모르죠.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