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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과 SK이엔에스의 합병비율은 1.19(SK이엔에스1주와 SK이노베이션 1.19주를 교환)로 결정되었습니다만, 선택가능했던 경우의 수는 몇 가지나 될까요? 그리고 그 중 기업공개가 되어 있는 SK이노베이션의 일반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합병비율은 무엇이었을까요?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가장 적정한 방법은 두 회사의 가치를 동일한 방법으로 평가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같은 잣대로 치수를 재야 비교의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수익가치법 또는 현금흐름 할인법( 두 방법은 결국 같은 방법입니다)으로 평가하는 것이 기업가치의 본래 의미에 가장 적합하고 두 회사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방법입니다.



기업의 가치는 미래의 수익창출능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를 충실히 반영하는 이 방법은 영업에 투입되는 자산은 미래 수익창출능력으로 평가하고, 영업에 투입되지 않는 비영업자산은 자산의 가치로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미래 수익의 현재가치와 비영업자산의 가치를 더해 기업가치가 결정되고, 기업가치에서 보통주주의 가치 외의 것, 이를테면 차입금이나 우선주의 가치를 차감하면 보통주주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죠.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수익가치를 산정하지 않았고, SK이엔에스의 수익가치는 주당 16만8262원이 나왔죠. 물론 이 방법도 허점이 많습니다. 어떤 기업이 미래에 얼마나 많은 현금흐름을 창출할 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떤 전문가가 어떤 경제 및 경영상황을 가정하고, 회사의 향후 경영활동과 실적에 대해 어떤 가정을 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값이 나올 수 있죠. 평가자의 주관이 상당히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서 어쩌면 믿거나 말거나인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SK그룹이 이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미래 현금흐름 추정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본시장법의 규정 때문입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 176조의 5에 의하면,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할 경우 상장사의 합병가액은 기준주가 또는 자산가치 중에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비상장사의 가치는 본질가치법에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법을 충실히 따라 합병가액을 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여러가지 선택이 가능한 사례였습니다.


우선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기준주가인 11만2396원과 주당 순자산가치인 24만5405원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SK이엔에스의 합병가액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본질가치법으로 산정을 한다고 할 때 글로벌 사모펀드 KKR이 소유한 3조1350억원(발행액 기준)에 이르는 상환전환우선주를 현물인 7개 도시가스 자회사로 상환할 것이냐, 현금으로 상환할 것이냐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현재의 합병비율 1.19


SK이엔에스 보통주 약 1주를 SK이노베이션 1.19주와 교환해 주는 현재의 합병비율은 SK이노베이션 보통주를 기준주가 11만2396원으로 평가하고 SK이엔에스 보통주의 본질가치를 13만3947원으로 평가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SK이엔에스의 본질가치는 자산가치의 40%와 수익가치의 60%를 더해서 결정했는데, 자산가치를 구할 때는 상환전환우선주를 현물상환한다는 전제 아래 1조4603억원으로 평가한 반면 수익가치를 구할 때는 상환전환우선주를 현금상환한다고 가정할 경우의 값인 3조1335억원으로 평가했습니다.



상환전환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현물상환이 현금상환보다 유리하다면서 현물상환을 기정사실화하고 평가를 했으면서도 수익가치를 구할 때는 그 전제를 무시했던 겁니다. 그래서 SK이엔에스의 자산가치는 주당 8만2475원, 수익가치는 16만8262원이 나왔고, 본질가치는 13만3947원이 되었던 것이죠.


SK이엔에스 상환전환우선주의 현물상환 시


SK이노베이션의 합병가액은 기준주가로 하고, SK이엔에스의 3조1350억원짜리 상환전환우선주를 현물상환한다고 전제해 본질가치를 구할 경우에는 어떤 합병비율이 나올까요? SK이엔에스의 본질가치 중 자산가치는 8만2475원으로 같습니다. 하지만 수익가치는 달라지죠. 수익가치 관점에서 현물상환을 한다면, 기업가치에서 차감할 상환전환우선주의 가치는 SK이엔에스 장부에 적힌 7개 도시가스 자회사 지분의 가치도 아니고, 상환전환우선주를 현금상환할 때의 가치도 아닙니다. SK이엔에스의 수익가치에 포함된 7개 자회사의 가치이죠.



그 값은 이미 한영회계법인이 작성한 외부평가기관의 평가의견서에 나와 있습니다. 강원도시가스 등 7개 자회사를 현금흐름할인법에 의해 평가했고, 그 결과는 7개 자회사의 지분가치를 모두 더한 가치는 3조6457억원이었습니다. 실제 차감된 상환전환우선주의 가치 3조1335억원보다 많았죠. 이 경우 SK이엔에스의 수익가치는 주당 16만8262원이 아닌 주당 15만7222원이 되고 본질가치도 기존의 13만3947원보다 낮은 12만7323원으로 낮아집니다.



SK이엔에스의 합병가액이 낮아졌으니 SK이노베이이션 기준주가와 비교한 합병비율도 당연히 낮아집니다. SK이엔에스 보통주 1주와 교환할 SK이노베이션 보통주는 1.19주가 아니라 약 1.13주가 됩니다. 기존의 합병비율에 비해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 조금 더 나은 조건이죠.


 SK이엔에스 상환전환우선주의 현금상환 시


SK이엔에스의 상환전환우선주를 평가할 때 고려하지 않았지만, 만약 상환전환우선주를 현금상환한다고 가정했으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에게 보다 유리한 합병비율이 나왔을 겁니다. SK이엔에스의 본질가치를 구성하는 자산가치가 완전히 달라졌을 테니까요.


상환전환우선주의 가치는 채권으로서 가치, KKR이 행사할 수 있는 전환권의 가치 그리고 SK이엔에스가 행사할 수 있는 조기상환청구권의 합으로 결정이 되는데요. 전환권도 옵션이고 조기상환청구권도 옵션이죠. 외부평가기관의 평가의견서에서 이항옵션평가모형을 적용해 평가한 상환전환우선주의 가치는 3조1335억원입니다. 상환전환우선주를 현금으로 상환할 경우의 가치라고 할 수 있죠.


지난달 말 SK이엔에스는 상환전환우선주의 보장수익률을 기존 7.5%/9.5%에서 9.9%로 상향조정했습니다. 조건이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바뀌었으니 상환전환우선주의 가치는 3조1335억원보다 높아졌을 겁니다. 하지만 합병비율이 결정되던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를 해야 하니 이는 무시하기로 합니다.


현금상환한다고 가정할 경우 SK이엔에스의 순자산가치에서 차감할 상환전환우선주의 가치는 1조4603억원이 아니라 3조1335억원이 되겠죠. 이 경우 SK이엔에스 보통주의 자산가치는 8만2475원에서 4만6416원으로 크게 낮아집니다. 상환전환우선주를 현금상환할 경우 주당 수익가치는 16만8262원이니 본질가치는 기존의 16만8262원이 아닌 11만9254원으로 낮아지고, SK이노베이션와 합병비율은 1.0634가 됩니다. 대략 SK이엔에스 보통주와 SK이노베이션 보통주가 1대1로 교환되는 비율이죠.



물론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건 SK이노베이션 보통주를 기준주가가 아닌 주당 순자산가치 24만5405원으로 평가했을 때죠. 그랬다면 SK이엔에스 상환전환우선주를 현물상환할 경우 합병비율은 0.5188, 상환전환우선주를 현금상환할 경우 합병비율은 0.4870이 되었을 겁니다. 대략 SK이엔에스 2주당 SK이노베이션 1주를 받아가는 조건이죠.


SK이노베이션을 기준주가로 평가했더라도 SK이엔에스를 상환전환우선주의 현금상환을 전제로 평가했다면 현물상환을 전제로 할 경우보다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 유리했습니다. 현금상환이라는 게 엄청 무리해 보이지만 결국은 상환전환우선주를 현재가치 3조1335억원짜리 차입금으로 본다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SK이엔에스가 회사채, 은행 차입금, 신종자본증권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 상환전환우선주를 상환할 때와 같은 상황이죠.


상환전환우선주의 현물상환은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 더 불리한 조건이지만, SK이엔에스의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산정에 일관되게 현물상환을 전제했으면 현행 합병비율보다는 조금 나았을 겁니다. SK이노베이션 주주에게 현행 합병비율 1.19는 가장 불리한 결과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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