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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2022년 2월 주주들을 대상으로 1조원대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했습니다. 채무상환자금 5000억원과 가스터빈, 풍력, 수소 및 차세대 원자력 등 신성장 투자자금 6478억원을 구하기 위해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죠. 2020년 12월에도 1조2000억원대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했었죠. 전액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서 빌린 차입금을 갚는데 사용됐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유동성 위기에 빠져 2020년 3월 산업은행에 긴급 자금지원 요청을 했고, 2022년 2월까지 채권단의 관리를 받았습니다. 산업은행의 관리 하에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거쳐 지금의 슬림(?)한 두산그룹이 된 셈이죠. 두산에너빌리티의 유동성 위기를 막은 1등 공신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라고 한다면, 차입금 상환과 신성장 자금 등을 수혈해 두산에너빌리티를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한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일반 주주들이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4년 반동안 창출한 현금흐름은 8346억원(개별 기준)입니다. 같은 기간 순차입금은 4조4600억원에서 2조9300억원으로 약 1조5300억원가량 감소했습니다. 차입금 상환자금은 대부분 일반 주주들이 납입한 증자대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유상증자를 통한 주주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그 현금흐름 전부를 부채 상환에 썼어도 여전히 막대한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을 지 모릅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두산에너빌리티에게 생긴 자회사가 두산밥캣과 두산퓨얼셀입니다. 두산밥캣은 원래부터 두산에너빌리티의 손자회사였는데,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분할돼 두산에너빌리티에 합병되었고, 두산퓨얼셀은 오너 일가의 지분 증여와 ㈜두산의 현물출자로 자회사가 되었죠.


두산밥캣은 최근 2년 연속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고 1000억원 안팎의 배당금을 두산에너빌리티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가장 확실한 현금 수입원이자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두산이 현물출자한 두산퓨얼셀은 향후 두산에너빌리티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 지 몰라도 아직 두산에너빌리티의 현재에 도움이 되고 있지는 못합니다. 영업이익은 지난 2020년 260억원을 기록한 후 매년 크게 감소해 지난해 16억원에 그쳤고, 지난 4년간 영업활동에서 4660억원의 현금 순유출이 발생했죠. 자본적 지출까지 더하면 같은 기간 약 7100억원가량의 현금 부족이 생겼고, 이를 메우기 위해 지난 2년간 약 3000억원의 순차입이 이루어졌죠. 당연히 배당은 아직 한 푼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밥캣 분할합병의 목적으로 '차세대 원전(SMR), 가스터빈 등 친환경 성장사업 및 대형 원전을 비롯한 기존 에너지사업에 더욱 집중해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를 제고'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두산밥캣 인적분할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요?



두산밥캣 인적분할로 ㈜두산을 비롯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두산밥캣 지분 46%를 보유하고 차입금이 7200억원 있는 비상장회사이 주식을 받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고의 자산을 넘기는 대신 차입금 7200억원을 줄이는 효과 밖에는 얻지 못하죠. 회사로서는 엄청난 희생을 하면서 최고의 자산을 주주들에게 환원(?)한 셈입니다. ㈜두산 외의 주주들은 비자발적으로 두산로보틱스의 주주가 될 기회를 얻은 셈이고요.



두산에너빌리티에게 두산밥캣은 보약 같은 존재이지, SMR 등 친환경 사업을 추진하는데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친환경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처분해야 할 자산이 아니라는 것이죠. 친환경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두산밥캣을 처분해야 했다면, 두산에너빌리티 경영진이 내렸어야 할 경정은 인적분할해 그 주식을 주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두산밥캣을 매각한 현금으로 SMR, 가스터빈 등 친환경 성장사업에 투자를 했어야 합니다.



두산밥캣의 경영권 지분을 제값 받고 팔거나, 분할을 한다고 해도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이 필요성에 부합하는 선택이었죠. 인적분할을 하면 ㈜두산이 두산로보틱스와 주식교환 거래를 하게 되지만, 물적분할을 하면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로보틱스에 100% 소유한 신설회사 지분을 매각해야 합니다. 그랬다면 두산밥캣 주식 값을 시세대로만 쳐도 1조원이 훨씬 넘는 현금이 두산에너빌리티에 유입됐을 겁니다.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였을 가능성은 있어도 회사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금은 확보했다는 명분을 챙길 수는 있었죠.


물론 이런 방식을 택했다면 두산로보틱스가 신설회사 지분 매입을 위해 막대한 현금이 필요했겠죠. 당장 그 만한 현금이 없는 두산로보틱스는 유상증자나 대규모 차입 등 무리한 자금조달에 나서야 했을 겁니다. 두산로보틱스에 현금 동원이 필요 없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물적분할이 아닌 인적분할이 유일한 선택지였나 봅니다.


그런데 이건 지주회사인 ㈜두산이나 두산그룹 최대주주 일가의 고려사항일 수는 있어도 두산에너빌리티나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고려할 이슈는 아니죠. 두산에너빌리티나 두산의 일반 주주들에게는 남의 사정일 뿐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 경영진은 회사와 대다수 주주의 사정 대신 남의 사정을 우선 고려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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