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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Hacor)매각을 출발선으로 해서 한진중공업그룹 안에서 이루어진 자금거래들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이 거래들은 당연히 한진중공업의 자율협약 종료에 대비한 것입니다. 사실은 훨씬 이전부터, 아마도 대륜E&S와 대륜발전/별내에너지 패키지 매각을 철회한 2017년 7월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되었겠지요.


어쩌면 본 게임은 지금부터일 것입니다. 대륜E&S(그리고 그 자회사인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의 재무구조 개선은 한진중공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석일테니까요.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산업은행의 큰 그림은 당연히 한진중공업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겠지요. 그래야만 원활한 대출회수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변수가 너무 많죠. 한진중공업이 아직 중환자실을 나올 때가 아니라는 것 말고는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본 편에서는 그간의 거래에 주로 등장한 4개사(한진중공업, 대륜E&S, 대륜발전, 별내에너지)의 재무상황에 어떤 차이가 발생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장부상으로 자본확충의 최대 수혜자는 대륜발전


註: 대차금액의 추정은 2018년 6월말 반기결산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대차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각 계정의 증감액만 추정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익은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생략했습니다. 물론 추정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현금 증자 350억원과 채권 출자전환 895억원으로 대륜발전의 보통주 자본이 1245억원 증가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산은 350억원(현금)이 증가했고요, 부채는 895억원 이상 감소하게 됩니다. 895억원+350억원=1245억원인데, 왜 895억원 이상이 되느냐면요. 895억원의 채권은 대륜E&S가 회계법인에게서 받은 평가액이지, 대륜발전의 장부에 적힌 채무의 액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륜E&S가 출자전환을 위해 양수한 채권의 취득가격은 669억원(252억원+417억원)이지만, 대륜발전의 6월말 장부에는 이 채무들이 930억원(252억원+678억원)으로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그 차이는 한진중공업이 반기결산에서 털어낸 대손상각액이죠.


註: 출자전환 대상 채권의 금액은 대륜발전의 6월말 반기결산 기준 장부가액으로 추정해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895억원이라는 숫자가 도출된 것에 대해 몇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대륜E&S가 양수한 채권만을 출자전환


이경우 출자전환한 채권은 재무적투자자가 갖고 있던 252억원과 한진중공업이 갖고 있던 공사미수금과 대여금 678억원(상각 전)이 됩니다. 결국 두 금액의 합인 930억원은 대륜발전의 장부에서 제거되는 부채의 최소값이 됩니다.


한진중공업이 678억원의 채권을 417억원에 대륜E&S으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252억원을 더한 게 895억원이 된 것이죠. 회계법인이 417억원에 넘긴 채권을 643억원으로 평가를 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회계법인의 평가를 한진중공업이 받았다면 417억원에 아니라 643억원에 팔 수 있었다는 거죠. 무려 226억원이나 손해를 본 겁니다.


한진중공업이 678억원짜리 채권을 매각 직전 결산에 417억원으로 상각해준 덕분에 대륜E&S는 226억원(643억원-417억원)의 처분이익이 생겼으며, 대륜발전은 35억원의 채무면제이익을 보게 된다는 결론이 됩니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닌데... 아무래도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너무 표가 납니다. 서로 뻔히 아는 사이인데, 고의로 싸게 사고 판 후에 회계법인을 이용해 가치를 높인다? 4편의 댓글에도 달았지만 한진중공업 주주 입장에서는 열 받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아는 회계법인 대표께서 말씀하시기를, 세무적으로 개피(?) 보는 케이스라고 하시더라고요. 세 회사가 모두 특수관계자이기 때문에, A의 대손상각은 손비인정을 안 해 줄거라는 거예요. B와 C의 처분이익과 채무면제이익은 익금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하고요.


(2) 대륜E&S가 자신이 보유하던 채권 일부를 출자전환에 포함시킨 경우


한진중공업이 상각한 후인 417억원의 채권과 재무적투자자가 갖고 있던 252억원을 합한 669억원에 대륜E&S가 약 200억~300억원의 채권을 추가해 출자전환을 해도 대략 895억원에 맞아떨어집니다. 그럴만한 채권이 있나 볼까요.


註: 2017년말 대륜발전 감사보고서 중 발췌한 것입니다. 붉은 박스는 재무적투자자와 한진중공업에 대한 차입금입니다. 한진중공업에 대한 차입금 497억원은 총액기준입니다. 6월말 현재 장부가액은 453억원입니다.


있습니다. 위 표에서 대륜E&S가 후순위로 대출해 준 500억원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300억원 짜리 보다는 200억원 짜리일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200억원은 만기에 일시상환해야 하는 조건의 차입금인데, 비유동부채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만기가 연내 도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현재가치할인차금을 뺀 장부가는 200억원 미만이겠지만 그정도 차이는 무시하기로 합시다.


저 200억원을 출자전환에 포함시켜도 895억원에 좀 모자랍니다. 하지만 회계법인이 약간의 평가증만 해줘도 극복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417억원을 643억원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417억원을 450억원쯤로 평가증하고 200억원 짜리를 얹어주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때 대륜발전의 장부에서 제거되는 채무는 대략1130억원이 됩니다. 대륜E&S는 손익이 발생하지 않지만, 대륜발전은 261억원(678억원-417억원)의 채무면제이익이 생기겠습니다.


진실이 어느 쪽인지는 모릅니다. 이게 뭐라고 출자전환 대상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대륜발전의 재무구조는 크게 개선됩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530%에 달하던 부채비율이 200%대 초반까지 떨어집니다.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신주발행이 액면가 미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본잠식을 해소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현금도 350억원이 들어왔기 때문에 올해 만기도래하는 PF차입금을 넉넉히 상환할 수 있겠습니다.


자본잠식 한방에 탈출한 별내에너지


註: 별내에너지는 대륜E&S가 100% 주주가 되고 유상증자를 한 것 외에 장부상으로는 바뀌는 것이 없습니다.


유동성 측면에서 가장 좋아진 건 별내에너지입니다. 대륜발전에는 출자전환 중심으로 유상증자를 했지만, 별내에너지에는 770억원의 현금을 꽂았거든요.


부분 자본잠식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별내에너지는 6월말 현재 납입자본금 1050억원, 자기자본 485억원으로 54% 자본잠식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액면가 대비 9900%의 할증률을 적용해 주당 50만원에 신주를 발행하면서 납입자본은 거의 그대로인데, 자기자본은 1255억원으로 크게 증가합니다. 한방에 자본잠식에서 탈피했습니다.(이래서 자본금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진중공업과 대륜E&S,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


註: 한진중공업과 대륜E&S의 충당부채 감소액이 다른 것은, 한진중공업이 대륜발전 주식을 지분법으로 평가하는 것과 달리, 대륜E&S는 대륜발전의 경영권을 위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원가법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진중공업은 보유하고 있던 대륜발전 및 별내에너지 주식과 채권을 사실상 모두 대륜E&S로 넘겼습니다. 장부가액으로 넘겼기 때문에 매각으로 인한 이익이나 손실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대륜발전에 대한 대여금 등을 넘기기 전에 대규모 대손상각충당금을 적립한 것은 있습니다. 별내에너지 지분도 6월말 장부가보다 싸게 넘겼는데요. 이는 7월 이후 지분법 변동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륜E&S는 재무적투자자와 한진중공업이 보유하던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 지분을 모두 양수했고, 대륜발전에 대한 채권도 양수해 출자전환해 주식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로 인해 별내에너지의 100% 주주, 대륜발전의 사실상 100% 주주가 되었습니다. 새로 생긴 모든 주식을 기존 주식들과 마찬가지로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하기는 했지만요.


대륜E&S는 한진중공업홀딩스의 보통주 유상증자와 재무적투자자의 상환우선주 투자로 1770억원의 현찰이 생겼지만, 다 쓰고 남은 게 없습니다. 지난해 말 한진중공업홀딩스가 증자해 준 300억원까지 털어서 다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룹의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종합기술과 Hacor를 매각한 돈 전부 대륜E&S에 털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유용하게 잘 썼죠. 2000억원이 조금 넘는 돈이 대륜E&S를 경유해 다른 계열사로 흘러들어가면서 두 집단에너지 자회사의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이 되었습니다. 대륜E&S 스스로도 부채비율이 6월말 현재의 절반 수준인 60%대로 뚝 떨어질 것 같습니다.


한진중공업의 경우에는 현금이 500억원 정도 생긴 것 말고는 재무구조 개선이랄 게 장부상으로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드디어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에 대한 부양의무에서 벗어났습니다.


아마도 한진중공업의 9월말 기준 또는 연말 재무제표 주석의 상당 부분이 다시 쓰여지게 될 것입니다. 한진중공업이 지던 담보의무는 두 회사의 주식과 함께 등기에서 사라졌겠죠. 대륜발전의 재무적투자자에 대한 우발채무도 해소되었습니다.


한진중공업은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의 재무구조개선 특별약정의 당사자였습니다. 그런데 지분을 모두 해소하면서, 아마 약정사항의 해당 문구가도 바뀌게 되지 않을까요. ①대륜E&S와 연대해 별내에너지에 300억원의 유상증자를 해야 하는 의무가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주주가 아닐뿐만 아니라 대륜E&S가 770억원을 통크게 쐈죠. ② 대륜발전(450억원), 별내에너지(500억원)의 차입원리금에 대한 상환자금보충약정을 한진중공업에 계속 요구할 명분이 채권단에 없습니다.


이제 대륜발전과 별내에너지에 대한 권리와 의무는 한진중공업에 없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대륜E&S가 홀로 짐을 지든지, 최상위 지배회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에게 물어볼 문제가 되었습니다.


한진중공업이 법적으로 대륜E&S 및 그 자회사와 남남이 되었다는 것은 비로소 자기자신과 자신의 골칫덩이 자식인 수빅조선소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산업은행이 대륜E&S 및 그 자회사를 신경쓰지 않고 한진중공업에 보약을 먹이든 칼을 대든 할 수 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그 역도 성립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