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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지난 2006년 신한 LBO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했습니다. ⓛ 피인수기업에게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할 위험을 초래한 것만으로도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고 ② 나중에 피해가 회복되었더라도 배임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③ 피인수기업의 자산이 담보로 제공한 것에 대해 인수기업이 별도의 담보를 피인수기업에 제공했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의 취지는 ‘피인수기업에게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할 위험을 초래했느냐’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한 사건 이후 담보형 LBO가 자취를 감추고 SPC를 설립해 대상기업을 인수한 뒤 SPC와 대상기업을 합병하는 합병형 LBO가 대세를 이루었는데, 합병형 LBO로 피인수기업에 재산상의 손해가 실질적으로 발생한 사례들이 즐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임죄가 인정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합병형 LBO 소송 중에서 가장 유명한 한일합섬 LBO의 경우 인수자인 동양메이저와 그 계열사들이 규모가 크고, 한일합섬 인수를 위해 상당한 자본을 투입했기 때문에 한일합섬에 손해를 끼칠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SPC와 한일합섬의 합병으로 인수차입금을 한일합섬이 떠안게 되었지만, 합병은 인수 이후에 발생한 고도의 경영행위로 LBO와는 별개의 거래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합병형 LBO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 없었죠.


인수자가 SPC를 통해 인수자금을 차입하고, SPC와 피인수회사를 합병한다고 해서 피인수기업에서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합병형 LBO의 경우 대부분 SPC와 피인수기업의 합병을 전제로 하거나 합병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인수가 완료된 이후에 합병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합병을 ‘경영상의 판단’으로 보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인식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인수기업의 규모가 충분히 크다거나, 인수자가 상당한 자기자본을 투입했다고 해서 배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관대한 시각입니다. 합병형 LBO의 경우 인수자가 자기자본을 투입했다고 해서 그 자본이 피인수기업에 유입되지 않는 반면, SPC가 조달한 차입금은 피인수기업이 떠안게 되는데, 그 차입금의 규모가 크고 금리가 높을 경우 피인수기업에서 심각한 자산의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수기업이 크고 많은 자기자본을 투입했다는 것으로 그 가능성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인수에 나섰던 지난 2016년 홈플러스의 기업가치는 약 7조 2000억원, 주식가치는 약 5조8000억원 정도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러나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인수를 위해 지불한 가격은 그 절반 수준인 약 3조원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사실상 피인수기업이 홈플러스가 외부에서 차입해 전 주인인 테스코그룹에 제공했습니다. 자기 몸값의 절반을 자기가 치른 격이었죠.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MBK파트너스는 매우 창의적인 인수구조를 짰습니다.


MBK파트너스는 우선 장부상회사인 한국리테일투자 등을 설립한 뒤 홈플러스의 100% 자회사인 홈플러스베이커리를 12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다음으로 홈플러스베이커리에 3조 500억원을 유상증자로 출자(우선주 7000억원 포함)한 뒤 홈플러스의 또 다른 자회사 홈플러스테스코를 8500억원에 인수한 뒤 2조4000억원을 유상증자하고 약 3조원을 차입했죠. 홈플러스테스코는 유상증자와 차입을 통해 확보한 5조4000억원의 자금으로 홈플러스 지분 100%를 테스코홀딩스로부터 인수했습니다. 홈플러스의 자회사를 인수한 뒤 자회사가 자금을 차입해 모회사인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구조를 짰던 셈입니다.


이 거래를 통해 테스코그룹은 지분 매각의 대가로 약 5조8250억원의 현금을 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수자인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지불한 대가는 홈플러스베이커리 인수자금 120억원과 유상증자 대금 3조 500억원뿐이었고, 홈플러스베이커리 인수자금 120억원과 홈플러스테스코 인수자금 8500억원의 절반인 4250억원은 홈플러스로 유입되었으니 사실상 인수자금으로 쓰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MBK파트너스가 테스코그룹에 실제로 지급한 대가는 약 2조6250억원뿐이었죠.


오히려 홈플러스가 테스코그룹에 지불한 대가가 더 컸습니다. 홈플러스테스코가 홈플러스 인수자금으로 약 5조4000억원을 테스코홀딩스에 지불했는데, 이중 2조2000억원만이 MBK파트너스로부터 온 것이고, 약 3조원은 홈플러스의 금융권 차입, 약 2000억원은 홈플러스 계열사들의 내부 보유자금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홈플러스는 자신이 팔리는 대가의 절반 이상을 자신이 지불하는 형국이었습니다.



엄밀하게는 인수자금 중 2000억원이 홈플러스 내부자금인지, MBK파트너스측의 출자자금인지 불확실합니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베이커리에 실시한 약 3조원의 유상증자가 주로 달러화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환율변동에 따라 원화기준 환산금액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홈플러스테스코가 주식 및 부동산담보대출로 차입한 3조원은 LBO로 인한 홈플러스의 자산 유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MKB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자회사인 홈플러스베이커리와 홈플러스테스코를 순차적으로 인수했고, 그 순간 홈플러스베이커리와 홈플러스테스코는 더 이상 홈플러스의 자회사가 아니게 되었죠. 거래의 구조로 볼 때 홈플러스에서 자산의 유출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런 주장은 인수기업이 SPC를 내세워 대상기업을 인수한 뒤 합병하는 것은 LBO와는 별개인 고도의 경영상 판단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합병으로 인해 SPC가 외부조달한 차입금이 피인수기업에게 떠넘겨지는 것이나, 홈플러스테스코가 외부차입한 자금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것이나 거래구조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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