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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습니다. 게임업체 넷마블이 렌탈회사인 웅진코웨이를 인수하다니. 뜬금없습니다. 그것도 입찰 무대에 등장한 지 3일 만에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무려 1조8000억원이라는 거액의 인수자금이 들어가는 일인데, 제대로 된 실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휴대폰 화면에 띄워진 상품설명서와 제품의 사진만 보고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는 온라인쇼핑을 하듯 말입니다.


그동안 다녀간 손님들이 웅진코웨이를 두 달 동안이나 요리보고 조리보고 한 끝에 하나같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마음에 차지 않았거나 너무 비싸다고 판단한 것이죠. 모두 소문난 큰 손들이었습니다. 예비입찰을 거쳐 웅진코웨이의 인수 후보로 추려진 네 곳이 칼라일, 베인캐피탈 등 세계적인 사모펀드와 SK네트웍스, 하이얼-린드면아시아인베스트먼트 등 국내외 대기업이었으니까요.


아마 대부분 비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웅진그룹이 웅진코웨이를 팔면서 받고 싶은 가격이 2조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웅진코웨이가 아무리 국내 렌탈업계 1위 기업이고 탄탄한 시장 기반을 갖고 있다고 해도 2조원을 쏘기는 무리라고 봤을 겁니다. 아니, 2조원은 희망가격일 뿐이고, 협상을 하기에 따라서는 그보다 몇 천억 정도는 싸게 살 수도 있었을 겁니다. 웅진그룹과 한국투자증권은 사정이 급했거든요. 급매로 내놓으면 아파트도 주변 시세보다 싸게 팔리듯 기업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넷마블이 1조8000억원을 부른 겁니다. 물건을 보지도 않고 단박에 구매를 결정한 통 큰 손님 넷마블 덕분에 웅진그룹과 한국투자증권은 '살았구나' 했을 겁니다.


웅진그룹은 자금난에 몰려 6년 만에 되찾은 웅진코웨이를 눈물을 머금고 시장에 내놓은 것이었죠. 한때 웅진의 미래로 불렸던 웅진에너지는 지난 5월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웅진그룹이 웅진코웨이를 되사올 때 인수자금을 사실상 전액(1조6000억원) 조달해 준 곳입니다. 이 중 1조1000억원은 금융시장의 다른 투자자들에게 넘겨(셀 다운) 털어냈지만, 5000억원의 전환사채를 자체 인수한 것이 있어 자칫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사정이었습니다.


어떤 언론은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이 희망가격인 2조원 보다 낮은 1조8000억원에 웅진코웨이를 팔기로 결정한 것이 놀랍다고 하더군요. 6년 만에 찾은 기업을 3개월 만에 되팔려면 사온 가격보다는 비싸게 팔아야 명분이 선다는 겁니다. 이건 좀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매물이 아니라니깐요. 그룹이 살아야 해서 웅진코웨이를 파는 건데 어떻게 제값 받기를 고집하겠습니까?


어쨌든 웅진코웨이는 또 다시 주인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극동건설 인수 등의 후유증으로 웅진그룹이 위기에 몰린 2012년에 그룹을 살리기 위해 MBK파트너스로 팔려가더니, 몸값을 크게 부풀려 돌아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이번엔 게임업체로 팔려가게 됐습니다.



2012년 웅진그룹이 MBK파트너스에 웅진코웨이를 매각한 가격이 지분율 28.4%에 1조940억원이었습니다. 주당 5만원에 거래가 됐습니다. 6년이 지난 지난해말 MBK와 웅진이 합의한 가격은 22.17%에 1조6849억원이었죠. 주당 10만3000원입니다. 기업가치가 그간 두배 정도로 뛴 겁니다.


여기에 웅진그룹이 싱가포르투자청(GIC)가 보유한 지분을 블록 딜로 사들이고, 시장에서 일부 지분을 추가 매수하면서 2000억원 정도가 더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웅진씽크빅이 올해 웅진코웨이를 재매입한 가격은 1조9000억원 남짓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넷마블이 사겠다고 제시한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죠. 불과 6개월 전에 거래된 가격과 비슷하게 사는 것이니 넷마블이 터무니없이 비싸게 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웅진그룹이 웅진코웨이를 되산 가격도 터무니없는 것이 되지요.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하면 어떨까요? 자본시장법에서 상장기업을 거래할 때 기준시가를 계산하는 방법을 정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최근 1개월의 주가, 최근 1주일의 주가, 최근일의 주가를 각각 거래량으로 가중평균해 구한 다음에, 그 셋을 산술평균합니다.


양측이 아직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니 기준일이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17일을 기준일이라고 가정하고 자본시장법에서 정한 대로 기준시가를 계산해 보면 아래와 같이 주당 8만4220원이 나옵니다.



이 기준시가대로 하면 웅진씽크빅이 보유하고 있는 25.08%의 지분(1851만1446주)의 시장가격은 1조5590억원이 나오는 군요. 기준시가가 얼추 비슷하게 형성된다고 가정하면, 웅진씽크빅은 주식시장의 개인 투자자들이 보유한 지분보다 2500억원 정도 웃돈(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기는 겁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경영권 지분을 거래할 때 주고 받는 프리미엄이 평균 30% 정도 됩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많은 프리미엄이 얹어지는 경우도 있죠. 지난 2016년에 현대상선이 KB금융지주에 현대증권을 매각할 때 경영권 프리미엄이 무려 200%가 넘었습니다. 소액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받은 게 주당 6637원이었는데, KB금융지주는 주당 2만3000원이 넘는 가격에 샀습니다. 대우증권을 미래에셋이 인수할 때도 100%가 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산업은행에 챙겨줬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넷게임즈에 적용된 프리미엄은 11% 정도였고, 2015년말 SK머티리얼즈는 기준주가보다 4% 낮은 9만3000원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웅진씽크빅이 1조8000억원에 지분을 넷마블에 매각한다면, 대략 15~16% 정도의 경영권 대가를 받는 겁니다. 시장의 평균인 30% 보다는 좀 낮은 편입니다만, 이례적으로 낮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나 웅진씽크빅이 억울해 할 가격은 아닌 걸로.



지난 3월에 웅진씽크빅이 MBK파트너스에서 웅진코웨이를 재매입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22.17%의 지분을 1조6849억원에 매입했는데 주당 10만3000원입니다. 이때 기준주가가 8만3948원이었습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22.7% 정도 됐던 거지요. 웅진그룹이 매입한 가격에 비해 약간 손해를 보고 파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물건 값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급매로 내놓는 바람에 프리미엄을 덜 받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주가가 늘 진리는 아니죠. 웅진그룹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가격에 판다고 볼 수 있지만, 넷마블 편에서도 괜찮은 물건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MBK파트너스로 매각된 후 6년 만에 기업가치가 두 배로 껑충 뛴 웅진코웨이는 실제로 그 전에 비해 두 배 이상의 돈을 보는 회사가 되어 있을까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넷마블은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선수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물론 넷마블이 인수한 후에 웅진코웨이를 훨씬 더 좋은 회사로 성장시킨다는 보장이 있다면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