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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황이 회복되고 있어서 한진중공업과 수빅조선소도 곧 좋아질 것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한진중공업에 알짜 부동산이 많은데 무슨 걱정이냐는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주주 입장의 '낙관이 섞인' 판단입니다. 빚쟁이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빚쟁이에게는 한진중공업이 좋은 회사로 거듭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게 원리금의 회수 가능성입니다. 올해 연말까지 빚을 갚든지, 빚을 갚을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주주는 손해를 감수하지만 빚쟁이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자식이 아니라 웬수 같습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이 도화선이 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 딱 10년이 되었습니다. 조선업과 해운업이 말 그대로 유사이래 없었던 초 호황기를 누렸습니다. 국내 Big3 조선사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한진중공업의 수주잔고가 2008년에 무려 8.2조원에 달합니다. 좋은 시절이 길어지다 보면 마치 그 시간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나 봅니다. 수빅조선소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한 것이 2006년 1월(자본금 20만 달러로 HHIC-PHIL 설립. HHIC-PHIL은 수빅조선소의 법인명)입니다.


2006년 이후 수빅조선소에는 매년 수천억원씩의 자금이 들어갑니다. 초기에 건설자금으로, 이후에는 회사를 운영할 돈이 부족하다며 계속 손을 벌립니다. 그렇게 지난해말까지 한진중공업이 현물과 현금으로 출자한 총액이 지난해말까지 1조9000억원이 좀 넘습니다.



수빅조선소의 올해 6월말 현재 자기자본은 약 8000억원 정도 남았습니다. 그동안 1조1000억원을 까먹은 겁니다. 한진중공업은 6월말 현재 수빅조선소에 약 1조원의 지급보증을 해 주고 있는데, 이중 RG 환급보증을 빼도 8000억원에 이릅니다. 수빅조선소에 대한 지분은 몽땅 은행에 담보로 잡혔습니다.처음에는 큰 꿈을 향한 투자였을텐데 지금까지의 결과는 참혹합니다.


그대로 두면 자본잠식에 빠지게 됩니다


한진중공업(이하 별도기준) 스스로도 6월말 현재 1.8조원의 차입부채(우발채무 제외)가 있습니다. 1.8조원 거의 전부 올해 말에 만기를 맞습니다. 이걸 갚은 현금도, 벌어서 갚을 능력도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조선부문이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 건설부문이 버는 걸로는 그 적자를 메우고 이자를 내는데도 버겁습니다.



한진중공업은 2015~2017년 3년 동안 연결기준으로나 별도기준으로나 약 1조원의(별도기준) 손실을 봤습니다. 그 중 약 7000억원이 수빅조선소에서 발생했습니다. 여기에 순금융비용(금융비용-금융수익) 3000억원이 보태집니다.



만약 한진중공업과 수빅조선소가 아무런 개선 없이 이 속도로 적자가 쌓여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위 그림을 보면 자기자본이 크게 줄면서 이제 자본금과 높이가 비슷합니다. 지난 3년 간의 속도로 적자가 쌓이면 2년 안에 완전 자본잠식에 들어갑니다. 적자 수준을 지난 3년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어도 2년 후에는 상장폐지 걱정을 해야 합니다.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자본금이 50% 이상 잠식되면 관리종목에 지정이 되고, 50% 이상 자본잠심이 2년 이상 지속되거나 완전 자본잠식이 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됩니다.)


영도에도 수빅에도 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조선업황이 개선되면서 국내 조선업계에도 봄바람이 불고 있다는데, 한진중공업에는 아직 봄기운이 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영도조선소의 상반기 신규 계약액은 영(0)원입니다. 영도조선소는 이제 상선을 접고 군함만을 취급한다고 합니다. 조선업황이 좋아져도 그 영향을 덜 받겠지요. 수빅조선소의 신규 수주는 다소 회복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규모가 크지 않아 아직은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영도조선소의 공사계약 잔액은 약 1조원 정도입니다. 수빅조선소는 4300억원 정도로 추정이 됩니다. 상반기 신규 수주가 조금 늘었는데도 잔액은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건조능력에 비해 수주가 충분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7~9개월 일감이라고 합니다.


올해 상반기 한진중공업의 적자는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력인 조선부문의 수주가 큰 폭으로 늘지 않는다면 벌어서 갚겠다는 말을 믿을 빚쟁이는 없을 겁니다.


부동산만 팔아도 2조가 넘는다. 그래서요?


증권업계에서는 한진중공업이 추진중인 인천북항부지 판매, 동서울터미널 재개발, 영도 조선소 이전 등이 총 2.9조원의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아마 회사측이 제공한 추정치이겠지요. 재읽사가 저 부동산들의 가치와 개발이익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죠.


그런데 부동산만 팔아도 차입원리금을 전부 상환하고도 남는다는 말은 지금 시점에서 하나마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동산, 언제 팔려서 돈 언제 들어오나요? 지금은 그게 중요합니다. 연내에 부동산 다 팔아서 빚 청산할 것 아니잖아요?


인천북항부지는 2012년부터 쪼개서 팔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까지 29만평을 팔고 21만평이 남았답니다. 올해 1분기에 또 일부를 팔아 1370억원이 들어왔습니다. 대략 3~4만평 정도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2분기 이후에는 부지 판매가 신통치 않은가 봅니다. 이렇다할 자산매각 공시가 없는 걸 봐도 그렇고, 2분기 실적을 봐도 그렇습니다.



인천북항부지는 용지로 판매됩니다. 재무상태표상 재고자산으로 분류됩니다. 부지가 팔리면 매출액과 영업이익에 반영됩니다. 실적에 다 녹아 있습니다. 따로 계산할 게 없습니다. 1분기에 깜짝 순이익을 기록한 것은 부지판매로 1370억원의 매출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한진중공업은 올해 안에 북항부지 판매를 완료할 계획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2분기 실적이 다시 적자로 돌아섰고 하반기에도 이렇다할 자산 매각 공시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연내 매각을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말은 부동산을 팔아 차입금을 대폭 줄이기는 어렵다는 뜻이 됩니다.


동서울터미날 개발은 지체되고 있다는 기사가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아무리 빨라야 내년 하반기나 돼야 개발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영도 조선소 이전은 이제 추진을 시작한 것이죠. 언제 될지 기약이 없습니다. 그런데 빚은 올해말에 갚든지 연장하든지 해야 합니다.


부동산은 현찰이 아닙니다.


자구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요?


차마 어디라고 공개하기조차 민망합니다. 모 경제매체는 한진중공업의 자산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올해 안에 자율협약을 졸업한다고 아예 못을 박았더라고요. 그 매체는 심지어 조선업계가 어렵지만 한진중공업은 예외라면서 수빅조선소가 노조 리스크를 줄인 신의 한 수라고 기사를 썼습니다. 美친 거 아닌지...


한진중공업은 2017년에 1조원 이상의 자산과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었습니다. 지분(대륜E&S, 대륜발전, 별내에너지)은 팔지 못했고, 자산을 팔아 6200억원의 현금만 손에 쥐었습니다. 달성하지 못한 계획은 올해로 넘어왔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북항부지 1370억원 외에 크게 띄는 게 없습니다. 어느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1880억원어치를 매각했다고 하는데, 나머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반기에는 모두 아시다시피 대륜발전의 지분과 채권, 별내에너지 지분을 대륜E&S에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차입금을 갚지는 못했고 충당부채 470억원을 장부에서 지우고 현금 500억원 정도를 남겼습니다. 그룹 안에서 돌고 도는 돈이지만 한진중공업 입장에서는 자산매각이 맞습니다. 이걸 다 더해도 올해 목표량의 25% 정도 됩니다.



대륜E&S의 기업공개는 선택과목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부동산은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저것만 팔리면 된다. 저것만 개발되면 된다' 그 생각을 한진중공업과 그 주주들도 하지만, 산업은행을 비롯한 빚쟁이들도 당연히 할 겁니다. 그런데 주주들은 기다림의 대가를 받지만(기업가치 상승), 빚쟁이에게는 대가가 없습니다. 이자요? 그건... 원금을 회수해서 다른 곳에 빌려줘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빚쟁이를 더 기다리게 하려면 성의표시를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빚쟁이는 둘로 나눌 수 있겠지요. 기다릴 수 없는 자와 기다릴 수 있는 자. 기다릴 수 없는 자에게는 원리금을 상환해 줘야 합니다. 그걸 안 하면 부도를 내는 겁니다. 기다릴 수 있는 자에게는 명분을 제공해야겠지요. 실적호전을 이루어 내든지, 자본확충을 해서 재무건전성을 회복시키든지 해야 합니다. 그래야 채권자들이 '그래. 한번 더 속는 셈 치고 기다려 줄게' 하지 않겠습니까. 부동산의 가치가 빛나는 시점은 버티기가 성공한 이후가 될 것입니다.


그럼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뭘까요? 네, 돈입니다. 한진중공업그룹은 대륜E&S를 상장하고 그 자회사를 매각해 그 돈을 마련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P.S. 한진중공업과 수빅조선소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아 예정에 없던 한편을 추가했습니다